꼭 이 몸이 나서야 하겠니

겨울 속초 반달살이(4)

by 공존

뒤늦게 군대를 가 전역을 하고 나오니, 먼저 복무를 마친 고등학교 동창들, 다시 말하여 죽마고우들은 벌써 돈을 벌고 있었다. 여름과 겨울 차 한대에 다섯명이 낑겨타서는 한번씩 휴가여행을 다녀왔는데, 내가 함께 간 첫번째 여름휴가에서 사건이 터졌다. 서해바다로 놀러가던 중에 식사를 하기 위해 아무곳이나 차를 세웠는데, 내가 보기엔 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뜨내기들 눈탱이 치는 전형적인 관광지 식당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극구 만류하며 제발 저곳은 가지 말자고 했지만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은 두 친구, 각각 월급을 받고 있는 녀석들에게, 아직 졸업까지 1년 반이나 남은 내 말은 먹히지 않았다. 그렇게 복날 개처럼 끌려들어갔고 전형적인 관광객 눈탱이 치는 해물뚝배기라는 메뉴에 내 회비를 투여했다.


그 일이 있고부터 나는 여행을 가든, 평소에 술자리를 갖든 맛집을 찾는 일을 주로 맡아서 하게 되었다. 일단 엄마의 음식 솜씨가 좋았고, 나도 이미 20대에도 꽤나 요리를 잘 했으며, 나름 어릴 때부터 좋다는 음식 이것저것 먹어보고 언제쯤엔 어디가 맛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결정적으로 입맛에 편견이나 고집이 없다는 성격까지 합쳐져 맛있는 음식을 잘 구별하면서도 이것저것 누구랑 만나도 잘 먹는다. 새로 어딘가 여행을 가기로 했으면 지도부터 블로그까지 여러가지 출처를 통해 맛집을 찾는다. 알려진 맛집보다도 아직 세상에 안알려진 맛집이 여전히 많기는 하다.


그런 나에게 1년 중 360일 외출을 하시는 바깥양반과의 삶이란,




바깥양반이 이중창을 여닫으며 일출 사진을 찍는 분주한 소리와 기색에 눈이 띄였다. 1월의 일출은 늦구나. 속초해변을 배경으로 몇 채의 건물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매일 아침 볼 수 있어 좋다. 며칠 있어보니 이런 집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숙소로 사용중인 오피스텔 아래는 속초해변 앞 아주 낡은 집들이 하나하나 허물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고, 그 너머로 곳곳이 공사장이 되어 하늘로 솟아오를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도 언제인가는 빌딩의 숲이 되겠지. 코로나로 국내여행 수요가 늘어나 생겨난 풍경들이, 해외여행이 완전히 풀리게 되면 또 어찌될지. 삼삼하고 감감한 풍경이다.


일출을 보고 나서 천천히 준비하기 시작해서 아침부터 나름 일찍 나왔다. 월요일 일정은 분주하게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속초에서 반달살이를 하는 동안 꼭 가봐야 할 맛집들이 있고, 알뜰하게 일정을 짜서 가보려면 분주히 음직여야 한다. 양양으로 향한다.

양양의 감나무집은 친구에게 소개받았다. 이렇게 잘 구운 가자미까지 한상차림이 황태국밥 가격 1인 8천원에 마련된다. 아는 사람은 아는 빼어난 맛집인지라 예전엔 멋모르고 갔다가 2시간이나 대기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야 이거 옛날 스타일이네! 하며 양양을 한바퀴 돌고 나서 대기시간에 맞춰 식사를 했었다. 진한 황태 육수에 콩나물과 밥에서 우러난 국물까지 뽀얗고 담백한 것이, 단군할아버지 시절부터 유전자에 각인된 미각세포가 반응을 하는 느낌이랄까. 여기에 다진 오징어와 견과류가 들어간 날치알 젓갈을 한숟갈 넣어서 잘 저어 먹으라는 것이 친구에게 배운 베스트 레시피다. 가자미는 잘 구워져 지느러미 뼈까지 씹어먹어도 고소하고 맛이 난다. 깻잎절임을 국밥에 얹어먹어도 맛나다.


다행히 월요일 10시에 갔을 때 딱 우리 뒷 순번부터 대기열이 생겼다. 우리는 바로 들어가 아이를 먼저 눕힐 수 있었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해장에 그만이라는데 아이와 바깥양반을 두고 혼자서 술을 마실 일도 아니기에 나는 그냥 맨속에 온다. 그래도 맛있지.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집에서 감나무식당까지 딱 두시간남짓이다. 언젠가는 금요일에 술을 푸지게 먹고 토요일 아침에 와서 해장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아 그러면 안되겠구나.

이어서 점심을 먹기 위해 파머스키친에 갔는데 아니나 달라 이번엔 한시간 대기다. 잘 됐다 하고 동백이와 우리 부부 셋이서 모두 차에서 눈을 붙였다. 화창한 햇살이 감은 눈을 따스히 데우는 기분. 이따금 추우면 잠시 시동을 걸어 히터를 돌리기도 하면서 휴식을 취하니 한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파머스키친은 워낙 유명한 맛집이기도 하고 이번에 오게 된 것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맛집프로에 나와서 바깥양반에 홀릭을 했기 때문이다. 햄버거도 맛집투어를 할 가치가 있는 음식이다. 이곳의 경우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쓴 덕인지 패티가 몹시 촉촉하고 부드럽다. 대신에 소스에 육즙까지 질질 흘러, 손으로 들고 먹기 어렵다. 이런 부분은 개선되기 어려운 지점이다. 냉동패티를 쓰거나, 패티를 좀 태워서 육즙을 빼거나 하는 게 아니면 말이지. 소스가 흘러서 손에 많이 묻어나고, 운이 없으면 팔목으로 타고 흐를 수 있다는 점 정도를 제외하고는 만족스레 식사를 마쳤다. 다만 감자튀김을 먹을 필요는 없다. 음료도 그렇다. 차라리 볕 좋은 날 햄버거 단품만 받아서 포구에 앉아서 콜라 정도를 따로 사와서 먹으면 좋겠다.

파머스키친 맞은 편 바닷가 카페에 들렀다. 서퍼들이 이 추운 겨울에도 너울너울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보며 한가롭게 차를 마실 수 있다. 양양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카페인데 여기쯤에서 동백이가 칭얼거리기 시작을 하면서 육아노동이 조금 빡세지긴 했지만.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는 육아일기 그림을 그려 하나 올릴 수 있었다.


손으로 그림을 그려 스캔을 하고, 그걸 다시 포토샵으로 편집을 하던 공정에 비해서는 타블렛에 그리는 일이 훨씬 쉽다. 그러나 저렴함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장비는 아니기 때문에 손그림 수준으로 타블렛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려면 몹시 시간이 필요할 성 싶다. 문제는 내 생활여건이 그 수준이 안된다는 것이고, 게다가 그런 생활여건의 빡셈은 나날이 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곧 기게 될 것이고, 뛰게 될 것이고, 더 많이 말을 걸 것이다. 그때가 되면 부모의 모든 행동은 아이의 교범이 된다. 아이에게 좋은 본을 보이기 위한 일을 더 해야 할 것이고, 그 전에 일단 대학원 졸업이나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기 근데 왜 왔어? 너 왔던 곳 또 안오잖아."

"그러니까. 근데 찾아도 잘 없어."


그림을 그린 뒤 기지개를 켜고 바깥양반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두 해 전에 온 카페다. 카페 콜렉터인 바깥양반은 어지간한 좋은 곳이 아니면 두번은 가지 않는다. 게다가 우린 지금 여행 중 아닌가. 세상에, 속초, 양양에, 와서는, 글쎄, 새로 카페를 발굴하지 않고, 굳이 왔던 곳에 또?


"찾아줘?"

"응."


이 몸이 꼭 나서야겠니 싶지만, 나는 바깥양반을 위해 의자에 등을 깊이 묻고 카페 검색을 시작했다. 내 나름의 요령으로,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비교적 신상 카페가 5분만에 10여곳 찾아졌다.


우선 여행의 거점인 속초의 경우 전형적인 관광지 개발의 루트를 타고 있다. 10년전쯤엔 속초에서 고성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해변 카페 말고는 갈만한 카페가 잘 없었다. 닭강정과 물회, 막국수에 대구탕 등 속초의 맛집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그제서야 펜션과 카페가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치 공식처럼 바닷가 카페들이 먼저 생겨났고, 그 다음으로 교통의 요지나 낡은 주택가 사이로 카페들이 침투하기 시작한다. 오션뷰를 즐기기 위해 속초에 왔다가, 그냥 속초가 좋고, 그래서 또 찾게 되고, 그래서 이번엔 다른 분위기를 찾는 사람들이 또 생기고, 그런 사람들이 이제 분위기 있는 카페를 찾고, 그에 부응하여 새로운 카페들이 생기는 수순.

몇군데 찾아준 곳 중 하나를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해 들렀다. 새로운 카페를 찾는 발길이 설악산 관광단지 진입로에 생겨나나보다. 원래는 속초와 양양을 잇는 동해대로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카페들이 자리잡고 있었으나, 이제 더 많은 관광객 방문에 따라 위로 위로, 그래서 설악산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까지 왔다.


괜찮은 소식은 여기 아메리카노가 좀 괜찮다. 덜 태우고, 덜 단순하다. 층고가 높고 2층에서는 더 좋은 뷰를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오면 딱 좋을 분위기다. 그냥 슥 검색해서 찾아서 슥 들른 곳인데 이런 마운틴 뷰를 즐길 수 있는 한가로움이라.


맛집이나 카페를 찾을 때 나는 검색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여행은 본질적으로 지리를 탐험하는 일이므로, 지도를 보는 일이 가장 기본이 된다. 서울같은 대도시야 건물 한채에 식당이 수십개 붙어있고, 그 사이에서 옥석을 가리는게 어렵지 속초 정도만 되어도 지도를 슥 보고 이쯤에, 카페가 있고 그 카페 이름이 괜찮아서 탭을 해보면 별점이 뜬다. 그래서 리뷰까지 보면 대강 갈지말지 확신은 든다. 이렇게 찾아낸 비밀스런 맛집이 제법된다.


그리고 우린, 저녁으로 단순히 검색을 해서 찾아낸 맛집들에서 테이크하웃을 해와 저녁을 마쳤다. 바깥양반이 주도한 오전과 점심, 내가 주도한 오후와 저녁. 괜찮았어 오늘도. 내일은 더욱 즐거울 거야.



감나무식당

로컬맛집. 주말이든 평일이든 10시 넘으면 대기해야 한다고 봐야함. 7시 오픈 3시 마감. 로컬맛집다운 교통과 주차의 편의, 로컬맛집다운 붐빔과 아쉬움이 조금씩 곁들여진 찐 맛집이다. 황태구이도 맛은 있었지만 황태해장국이든, 황태국밥이든 국물이랑 어울리는 음식이 아니라서 굳이 같이 먹을 필요는 없는 편이다. 자고로 황태구이는 흰 쌀밥에 먹어야지.


파머스키친

생각보다 가격에 비해 햄버거 크기도 크고 재료도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가게 안에서 먹을 필요가 정말 없는 집이라서, 그냥 단품 테이크아웃이 언제든 최선으로 보인다. 물티슈와 냅킨을 넉넉히 받아서 나올것.


솔티캐빈

오션뷰+파도뷰+서핑뷰


다온

여기 커피가 맛있다. 층고도 넓고 내부에 테이블 간격도 널찍 널찍 해서 느적함 그 자체인 신상카페.


신유네 회포장

이틀 먼저 속초 수산시장에서 5만원에 포장해 온 회보다 이곳에서 3만원에 포장해 온 회가 구성이나 양이 조금 더 많고 좋다. 속초에서 회를 사서 포장해서 먹는다면 여기인데...문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맛집이라 100% 예약제라는 점이다. 6시에 마감하니 방문 예정이 있다면 일주일 전엔 예약을 잡아둬야 함.


요기국수김밥,반찬

회와 함께 먹기 위해 김밥 두줄 테이크아웃. 그런데 지도 앱에선 매장 평가를 블라인드해놨다. 맛있는녀석들 출연맛집이라는데 후기를 감출만한 이유가 있는 걸까? 먹어본 결과 진미채 김밥은 가성비가 나쁘지 않았고 홍게김밥은 무난무난했다. 나쁜 인상은 아니어서 별 생각없이 또 들를 수도 있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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