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시간이 쏜살과 같아
언제부터인가 밤이 되면 어깨가 욱신, 다리가 쑤시곤 한다. 아이가 10kg이 넘어가는데 눕혀둘 수도 없고 풀어둘 수도 없으니 내내 안고서 놀아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건, 아이가 호기심 가는 물건을 발견해 내 품에서 빠져나가겠다고 요동을 치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이가 손톱으로 내 볼을 쥐어뜯으며 내려달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어깨가 아니라 다리와 허리가 아플 차례다. 아이가 집는 물건은 빼앗고, 던지는 물건은 받거나 주워서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 우왕좌왕 하다보면, 아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의 휴식은 그저 꼬리에 불 붙은 강아지 잡기나 마찬가지의 중노동이다.
14개월이 지난 아이는 두 팔을 휘두르며 균형을 잡고는 얼추 뛰어다니는 흉내를 낸다. 아직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어휘라곤 세개 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손가락질 하나로 스무가지 정도 의사표현을 하고, 양 팔을 접은 채로 휘두르는 날갯짓으로 강한 거부와 부정의 뜻까지 표현할 줄을 안다. 이제 장난을 이해하고, 자기가 먼저 숨바꼭질 놀이도 하고, 애착과 분리를 인식하여, 오늘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이불 빨래를 한다고 걷어서 세탁기에 넣었다가 아주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도 외출 직전이라, 바로 차에 실어서 바깥 풍경을 보여주니 아이는 안정을 찾긴 했는데, 엄마 아빠가 오랫동안 사용한 여름용 침대 패드를 빼앗아서는 자기 애착이불로 쓰고 있어서 조금 곤란한 부분이 있다. 어린이집에 아이 애착이불을 보내줘야 한다는데, 우리 애 애착이불은 이거인데요? 네? 모시 요 아닌가요? 네 모시 요라기보단 침대 패드로 쓰긴 했습니다만, 아이는 이것에 애착을 붙였습니다. 이럴 것 아닌가.
애착과 분리, 흥미와 거부, 장난과 혼냄을 학습해나가고 있는 이쯤, 우리는 마침내 식탁 위에 늘 올라와있던 분유 전용 물끓이개를 치웠다. 식탁이 넓어졌다. 넓어졌다고 좋아했는데, 이 놈이 이제는 식탁 위에 올라와서 두 발로 서기 시작한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사람에게 먹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를 깨우치게 된다. 아이의 요란과 소동을 피해가며 겨우 밥을 차리면, 그 다음엔 먹는 게 큰일이다. 아이는 식탁에 같이 앉아서 자기도 먹겠다고 벌써 난리를 피운다. 내 허벅지 위에 아이를 앉혀, 겨드랑이에 고정시키고, 국에 밥을 말아 조금 떠먹이다보면 식사 시간은 두배가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14개월 짜이 아이라고 하는 물상은, 밥을 선선히 먹는 호의를 발휘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원래부터도 시간을 많이 소모하는 우리의 식사는 부부의 상과 아이의 상이 따로 갈라지면서 한정없이 길어지곤 한다. 그래도 물론 이것도 모두 복이다. 오늘은 아이가 황금색 변을 네번이나 쌌으니. 섬유질과 유산균을 어디서 그리 주워먹는지 잘 먹는 모양.
아이가 무섭게 자란다. 14개월이 지났다고, 이쯤 되어 아이가 한 구비를 넘는다고 느끼니, 벌써 열 네달이나 아이를 길렀고, 지나 온 시간은 쏜살과 같이 가뭇이 없다. 그냥, 정말, 흐르는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갔다. 그리고 여느 부부가 첫 아이를 낳아 고생고생을 하면서도 둘째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과 같이, 우리 역시도 지난 날의 아이의 모습들- 사과 두개 만한 무개의 핏덩이 같은 아이, 두 볼이 빵빵하게 차오른 백일 무렵의 아기, 막 뒤집기를 시작해 미소 짓는 아이의 모습 등,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시절들을 그리고 있다. 아무리 사진을 수천장을 박아도, 하루 하루 우리 눈에 박혀 들어오는 모습들이 늘 새롭기만 한 것이라 예전의 그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된 것은, 무어라 말하기 어려운 상실의 기쁨이다.
밤에 아이를 달래다가 잠결에 기지개를 할 때 무심히 놀라곤 한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어 몸을 펴는것이, 벌써 이렇게 컸나싶게 길쭉하다. 하긴 그런 속도로 자라고 자라와서, 이제 몸도 마음도 스스로 키워내고 있으니, 길쭉해진 몸 길이에 놀라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수천 수만번의 새삼스러움들의 이어짐일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탭댄스를 따라하는 모습에 새삼 놀라고, 박자에 고갯짓을 하는 것에 새삼 놀라고, 갓 세탁기에서 건조되어 나온 엄마 아빠의 침대 패드에 달려들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그 몸짓에 또 놀라는 일이, 하루에도 여러번 반복되며 교차하는 것을 보면, 그래. 무섭다기보다는, 너는 경이롭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