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라고 하면 설문지를 돌리고 응답 결과를 분석하는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유용한 방법이지만 좋아하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문항에 뭐라고 답할 것인가?
당신은 중국음식점에 가서 주로 어떤 음식을 주문하나요?
1) 짜장면
2) 짬뽕
3) 볶음밥
4) 기타
1)번으로 응답한 사람에게 ‘당신은 중국 음식 중에서 짜장면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결과를 알려주면 어떨까?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할 거다. 어이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장해서 말하면 대부분의 진단이 위와 같은 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응답한 결과를 보면서 정확하다며 깜짝 놀란다. 본인이 짜장면을 주문한다고 응답해서 짜장면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알려준 셈인데 신기해한다. 재밌다. 이런 진단 방식을 자기보고식(self-report)이라고 한다. 1)번으로 응답한 사람은 실제로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와 실제 자기는 다르다. 진단의 정확도는 응답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자기객관화 이슈 같지만 깊이 들어가면 자기객관화도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라서 자기객관화 이슈도 아니다. 결국 더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실제를 관찰해야 한다.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 실제로 중국집에 갈 때마다 어떤 음식을 주문하는지 보고, 어떤 음식을 맛있게 먹는지 보고,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하고, 어떤 음식을 좋아한다고 말하는지 보면 된다. 이 글에서 말하는 진단은 자기보고식 설문이 아니다. 진단보다 관찰에 가깝다. 조직 구성원들의 생각 공유라고 해도 좋다. 특히 현재의 생각에 집중한다. 어제까지 쌓인 조직에서의 경험으로 오늘을 파악한다. 물론 내일부터 더 잘하기 위해서다.
진단은 조직문화 3요소 Assumptions(가정), Values(가치관), Artifacts(인공물)과 연결해서 퍼실리테이션으로 진행하면 된다. (3가지 요소가 뭔지 모르면 아래 글을 참고)
가장 먼저 우리 조직에서는 무엇을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본다. Assumptions(가정)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거론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말로 해야 아냐는 식이어서 각 잡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언어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수준의 것들도 많다. 말로 하다 보면 중언부언할 수도 있다. 당연히 그냥 이야기해보자고 하면 어려워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연스럽게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서 빈칸 채우기를 추천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 )을/를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라면 이렇게 구체화할 수도 있다.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 )을/를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언제든 망할 수도 있다는 것도 당연하다.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직무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 이 일 저 일 가리기 어렵다. 나의 일, 너의 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당연하다. 워라밸이나 안정을 추구하면 안 맞을 수 있다는 것도 당연한 것이 된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생각하는 조직문화의 가정을 공유한다. 그리고 대표이사의 생각도 공유한다. 충분히 이야기하고 기록해 둔다. 어차피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규입사자가 생기면 꼭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수 있다.
가정을 진단했다면 다음은 가치관이다. 가치관은 단어로 공유하는 걸 추천한다. 원리는 같다. 아래 문장을 완성하는 대신 괄호 안에 단어를 넣게 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 )이/가 정말 중요하다고 믿는다.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가치 단어 중에 고르게 할 수도 있다.
감사, 건강, 겸손, 공헌, 균형, 긍정, 끈기, 명예, 모험, 발전, 배려, 봉사, 사랑, 성실, 성장, 성취, 신뢰, 신앙, 실천, 안정, 열정, 용기, 윤리, 의지, 인내, 인정, 자비, 자율, 절제, 정의, 정직, 존중, 진실, 창의, 책임, 충성, 탁월, 평화, 행복, 혁신
실제 퍼실리테이션 할 때는 slido의 Wordcloud poll 기능을 사용한다.
가치관은 가정과 연결된다. 개인이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조직에서는 자율과 책임이 중요해진다. 반대의 가정을 전제로 하면 관리와 통제가 중요해진다. 회사의 정보는 모든 구성원에게 최대한 잘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조직에서는 투명성이 중요해진다. 반대는 보안이 중요해진다. 다른 팀의 구성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협업이 강조된다. 반대는 분업이 더 중요해진다. 정답은 없다.
가정과 가치관에 대해서 충분히 공유되었다면 마지막으로 인공물을 점검한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중요하다고 믿는 것들이 어떤 인공물로 만들어졌는지 살펴본다. 이미 만들어진 인공물들이 가정, 가치관과 align 되는지 확인한다. 당연하게 여기고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과 모순되는 제도는 없는지, 이상적인 가정과 가치관을 쫓으면서 현실은 엉뚱한 인공물들로 가득하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토론을 해보는 거다.
우리가 만든 인공물(제도, 체계, 근무환경 등)은 가정, 가치관과 얼마나 잘 align 되어 있을까?
우리의 가정과 가치관을 잘 반영하는 인공물을 만든다면 무엇을 새롭게 만들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인공물을 만들어야 우리의 가정, 가치관을 잘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 회사에서 당장 해보고 싶은데 내부에 퍼실리테이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된다면... 돈을 쓰시라. 정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면 쓰게 될거고, 아니라면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