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에게서, 상황에서, 대화에서 배운
물건에게서, 상황에서, 대화에서 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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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밑미에서 온라인 리추얼을 시작했다. 오롤리데이의 박신후님과 함께하는 <1day 1 drawing> 프로그램이다. 리추얼 기간은 한 달. 그 기간 동안 그림은 어디에다 그릴까 고민하며 새 노트들을 뒤적거렸다. 마침 적당해 보이는 노트를 찾았고, 속지를 보려고 펼치는 순간 노트는 하늘을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새 노트의 표지는 장렬하게 구겨졌다. 순간 인생은 이렇게 한 순간에 구겨지기 쉽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산책하면서 이 사건을 남편에게 말하자, '그럼 인생이 너무 슬픈 것 같아. 구겨져도 괜찮다고 의미를 담는 게 낫지 않을까?'라며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명예 같은건 한 번 훼손되면 회복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 역시도 구겨져도 괜찮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 어제 전시 도록을 샀다. 전시에 가면 도록을 사는 편은 아닌데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나름 맘먹고 산 도록이다. 오늘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스레 비닐을 뜯었는데 양장 표지 앞 뒤로 흠집이 나 있는 걸 발견하고 말았다. 앞면에는 커다란 스티커가 붙어있는데 정해진 선을 벗어나 삐뚤게 붙어있었다. 아이고. 나는 유독 새로 산 제품에 흠집이 있으면 속상하다. 그래서 평소에 꼼꼼히 보고 사는 편인데 이 날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샀던 것이다. 역시 모든 물건은 살 때 바로 확인해야 한다.
3. 즐거운 점심시간. 동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배달온 잠봉 뵈르와 애플트리 바게트 샌드위치를 들고, 집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남편과 먹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완연하게 아름다운 가을이었는데, 오늘은 맑았지만 무척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와 이렇게 벌써 추워지다니, 오늘이 마지막 피크닉일 것 같아'라고 말하자 남편은 역시 황금기는 금방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 그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인생의 좋은 날은 금방 지나가니 늘 즐겁게 지내야 한다는 깨달음을 또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