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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우 Jun 04. 2023

들꽃 스무 송이를 건네는 마음




들꽃 스무 송이를 건네는 마음



 오늘은 당신에게 꽃을 선물 하고싶은 날입니다. 꽃이 어울리는 날씨란 생각에 아침부터 내 뒷꿈치는 들썩거렸을 거에요. 목장갑을 낀 손에 빈 종이박스 하나를 들고 오후 내내 아무도 없는 들판과 숲을 돌아다녔습니다. 오늘 밤 당신에게 이름 없는 들꽃을 건네 주려고요.


 수줍게 올라갈 당신의 입꼬리를 상상하며 형형색색의 들꽃을 한 송이씩 담았어요. 바지에 도깨비풀이 달라붙는 줄도 모른 채 한나절 숲을 누비면서 말이에요. 박스 한가득 담아온 꽃을 방에 늘어놓고서, 입을 앙 다문 채 줄기를 다듬기 시작합니다. 아, 당신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삐죽 튀어나오는 내 입모양을 좋아했던가요.


 조심조심 다듬어낸 들꽃을 다발로 엮어 요리조리 돌려봅니다. 당신이 예찬해 마지않는 이 섬에서 자란 예쁜 들꽃 스무 송이. 비밀스럽게 준비해서 당신을 놀래켜 줄 거에요. 조금 엉성해도 거기엔 당신을 생각하던 내 하루가 담겨있어요. 알록달록한 꽃다발 틈에는 세상의 예쁜 색을 다 주고 싶은 내 마음이 숨어있어요.


 오늘따라 유독 느리게 흐르던 구름처럼 오후가 뉘엿뉘엿 지나고, 저기 해질녘 가로등 너머로 작은 요정이 아장아장 걸어옵니다. 사랑이 노을 진 풍경 속에서 걸어와요. 사랑이 다가오는 모습은 이렇구나, 생각합니다. 나는 이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될 거에요.


 몇 가지 치즈와 마트에서 산 싸구려 와인, 짧은 손편지 한 통 뿐이지만, 이내 꽃다발을 쥔 당신의 눈이 반짝거려요. 조금 부은 눈과 발갛게 달아오른 볼 때문인지 단숨에 소녀가 돼버린 당신. 몇 번의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우리의 볼이 와인색을 닮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갈 것 같아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아주 먼 곳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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