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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우 Mar 13. 2022

다정한 사람





다정한 사람



가끔 어떤 이들은 ‘밥 먹었어요?’ 같은 단지 몇 글자만으로도 그들이 다정한 사람임을 단번에 나타낼 수 있었다. 목소리에서 오는 다정함과 어휘에서 오는 다정함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중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 나는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누군가가 궁금해질 수도 있구나.


다정함. 이건 내가 그에 대해 생각할 때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키워드다. 상상력이 풍부한 나는 아주 쉽게 그의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었다. 베이지 색의 폴로 케이블 니트에 트렌디하지도, 그렇다고 촌스럽지도 않은 핏의 아이보리색 치노, 라이트 브라운 계열의 스웨이드 로퍼를 신은 걸로 보아 그는 보여지는 이미지에도 꽤나 신경을 쓰는, 소위 말해 멋을 좀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퇴근길 지하철에서 radiohead나 coldplay의 음악을 즐겨 듣고, 집에 도착해서는 곧바로 로퍼를 가지런히 정리해 두겠지. 거실엔 형광등보단 따뜻한 색온도의 조명을 켜두고, 주방으로 와서는 손에 익은 레시피로 간단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려나. 식사 후 곧바로 설거지를 하는 사람은 조금 인간미가 떨어지니까 두어 시간 쯤 뒤에 하는 게 좋겠지. 주방 한 켠에는 2/3쯤 남은 제임슨 한 병이 있어도 좋겠는데. 소파에 앉아 보는 둥 마는 둥 TV 볼륨을 아주 낮게 켜두고 그의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하게 얘기할거야. 오늘의 사소한 일과부터 3주 뒤에 갈 주말여행 계획에 대해서 까지도.


상상의 꼬리를 이어가다보니 그의 애인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에도 이르렀다. 분명 다정함이 아주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베이지색 폴로 스웨터만큼이나 포근한 입꼬리와 안락의자처럼 아늑한 그의 분위기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 대해 상상하던 나는 가벼운 질투심에 잠시 발칙한 상상도 해본다. 그도 가끔은 화를 내려나? 화낼 때 그는 어떤 표정일까? 그의 목소리는 어떨까? 설마 물건을 집어던지진 않겠지? 저 다정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아니 그보단 차라리 대화를 포기해버리는 쪽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아무래도 다정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몽상가적인 나조차도 쉽사리 상상하기 힘들다. 거울 앞에서 그가 웃을 때 짓는 표정을 슬쩍 따라해 본다. 전혀 닮지 않아서 헛웃음이 났다. 젠장, 나도 다정한 사람이고 싶은데. 나도 경계심보단 호기심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오늘 하루 어땠냐는 인사를 웃으면서 건네고 싶은데. 누군가 내게 투정을 부린다면 현란한 위로 대신 오래도록 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은데.


내일도 그를 만난다. 내일은 그보다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네야지. 좋은 아침이라거나 날씨가 좋다는 둥의 가벼운 안부에 다정한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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