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음악이라는 게 꼭 음악만은 아닐 때도 있는 것이어서 듣다보면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사람을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음악은 애쓰지 않아도 꼭, 채에 걸러진 알맹이처럼 남았다.
이건 비단 음악에 한한 것만은 아니고, 어떤 형태로든 세상에 꺼내 진 창작물들을 이렇게 대하기 시작하니, 그때부터는 예술이라는 것이 쉬워졌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이 흥미롭다고 생각하게 된 게.
내 20대에는 음악을 포함해 시, 사진 등의 몇 가지 굵직한 키워드가 있었는데 자의반 타의반으로 최근 한 1년 정도 관심을 꺼뒀더니 결국, 내가 별로 없었다. 내가 추구하던 생각, 내가 즐기던 문화나 예술, 철학 같은 것들이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나란 인간을 구성하는 속성소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게 떨어져 나갔으니 결국,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난, 말 그대로 지금 일부 죽어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어도 지금은 나를 주워 담을 수 없다. 이런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될 지도 모른다. 그치만 원하는 걸 얻고 나면 나는 다시 여행을 떠날 것이다. 30대의 내가 또 무엇을 주워서 어떠한 형태가 되어 있을지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난 10년간 이것저것 주워 내 몸에 갖다 대 보면서 이제 나는 어떤 것이 나와 어울리는지 정도는 알게 됐다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나에 대해, 걱정보단 기대를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길이 어딘지도 모르고 여행하던 유년을 돌아보면, 그래도 이 정도면 나, 잘 살아온 것 아닌가 싶다.
나답지 못한 내가 어색해 당혹스러워 하던 겨울 밤 귀갓길에 선우정아의 새 앨범을 듣는다. 선우정아는 침착하게 도망가자고 말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고 말한다. 지금 이 시기가 잠깐의 도망이라도 충분히 괜찮지 않을까. 그의 가사처럼 끝내 씩씩하게 돌아올 거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