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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우 Mar 27. 2022

나의 삶보다 글이 앞서가지 않기를 바라며

(2022)

 




나의 삶보다 글이 앞서가지 않기를 바라며



 이유 없이 옛 연인이 덜컥 꿈에 등장하는 날이 있다. 이젠 시간이 많이 지나 미련이라 하기에도 조금 민망한 기억이 급습하는 날. 어젯밤은 바로 그런 날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한 줌 정도 쥐어보고 싶은 마음에 당신 만큼이나 오래된 것을 찾다 오랜만에 메이트의 음악을 듣는다. ‘스무 살의 메이트’. 이건 내 감수성의 또 다른 이름 쯤 될 것이다.


 사실 내겐 가수 정준일보다 메이트의 보컬이 더 익숙했다. 대패질 하기 전의 목재를 가볍게 손으로 훑을 때 느껴지는 날 것의 질감. 그것에서 오는 묘하게 기분 좋은 까슬거림이 메이트라면, 정준일은 매끄럽게 마감된 완성품의 원목가구 처럼 느껴졌다. 미끈하게 잘 빠진 원목가구보다 까슬까슬한 메이트가 좀 더 애틋했던 이유는 내 감수성의 개화기도 그 모양을 닮아 있었기 때문 아닐까. 조금 서툴고 삐뚤빼뚤한 모양으로 때론 누군가를 찌르기도 하고, 때론 움푹 패이기도 하던 시절 말이다.


 고백하자면 메이트는 공연을 보러 갈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나의 첫 최애였다. 음, 좋아하는 뮤지션이 생긴다는 것은 짝사랑을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언제나 그들 음악 같기를 바랬다. 행여나 그들의 음악과 그들이 다를까봐, 조금 깨기라도 할까봐, 겁내는 마음 같은 것이었을까. 그들의 앨범을 빠짐없이 모으면서도 그들이 아닌 그들의 음악을 좋아할 뿐이란 이유로 콘서트나 공연은 가지 않았다. 그건 내가 최애를 지키는 일종의 방어막이었다. 짝사랑에서 대상을 잃는 것 만큼 마음 아픈 건 없으니까. 맞다, 여하튼 난 좀 별종이다.


 그런 이유로 콘서트는 안가봤지만 어쨋든 메이트를 많이 좋아했던 나는 메이트의 잠정 활동 중단 후, 솔로로 전향한 정준일의 음악에서 조금의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간의 애정을 정준일이 아닌 ‘9와 숫자들’로 스멀스멀 옮겨가고 있을 때쯤, 오랜만에 올라온 그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적힌 마지막 문구를 읽고나선 생각이 바뀔 수 밖에 없었다.


‘단지 제 삶보다 음악이 앞서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 그는 좋은 뮤지션이고 좋은 사람이구나. 조금씩 바뀌어가는 그의 음악이 그가 살아가는 삶이라면 그것도 기꺼이 응원해주어야지. “역시나 좋아하길 잘 했어.” 같은 호들갑이라도 떨고 싶었다. 그 때부터 음악이 아닌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너무나도 조촐한 고백 한 문장에 몇 년간 지켜오던 나의 거리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메이트를 추억하다보니 새삼 내가 쓰는 모든 것들도 내 삶을 앞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다시 어제의 꿈을 붙잡으려 했을 때 당신은 이미 기억에서 달아나고 없다. 새벽에 그들의 해묵은 인터뷰를 뒤적거리다 그들이 메이트의 1집을 추억하는 이유가 내가 당신을 추억하는 이유와 닮아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꼭 다시 그때 마음을 되짚고 싶었어요. 헤어진 첫 사랑을 문득 만나고 싶은 마음과 같은 거 있잖아요.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다시 안고 싶어서,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을 통해서 다시 그때의 나를 보고 싶은 거 있잖아요.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나는 얼마나 변했나?” (정준일)

“하지만 아마도 1집 같은 앨범은 다시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그 시절은 영원히 지나가버렸으니까. 우리는 그저 지금 있는 그대로를 담기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임헌일)


 꿈에 대해 쓰려 했는데, 쓰고보니 결국 메이트 얘기 뿐이다. 하지 못한 말이 많다 생각했는데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진 것이겠지. 이제 당신에게서 찾고 싶은 건 단지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나는 얼마나 변했나. 그 때의 나로부터 얼마나 멀리 흘러왔나.’ 당신에게는 이걸 고맙다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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