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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단우 Apr 01. 2022

농담 같은 이야기

대피소





농담 같은 이야기



 불안이란 적과 오래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 만나기 전에도, 당신을 만나는 동안에도, 당신이 가고 난 후에도요. 면목 없습니다. 당신께 건넨 나의 청사진은 이런 게 아니었음을 잘 아니까요.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 하겠죠. 그 정도 각오는 하고 건넨 고백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당신 덕에 지금까지도 펜을 쥐고 있으니까요. 종종 천장에다 당신을 그려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거울 속에서만 봤겠지만, 나는 거울 없이도 당신을 많이 봤습니다. 당신은 분명 거울 속 당신의 모습보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매섭게 노려보던 불안을 단숨에 잠재우던 당신의 고백도, 내일로 가는 어둔 길에 금세 꽃을 틔우던 당신의 미소도 다, 당신이 아는 당신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던 삶에서 유일한 대피소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당신이란 지점이었겠지요. 불안도, 내일도, 슬픔도 침범할 수 없는 안전한 곳 말이에요.


 당신이란 대피소를 들락거리는 동안은 우리가 함께 행복하는 것만 소망했는데, 이제는 조금 다른 바람이에요. 그냥, 우리가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나대로, 또 당신은 당신대로. 굳이 우리가 함께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 시절 함께했던 당신과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난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발칙하게도 당신 없는 미래를 곧잘 그려보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어깨를 내어줄 수 있어 좋다던 당신과 늦지 않게 돌아오겠다던 나의 이야기가 농담처럼 울려옵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 말입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전부 다 농담 같은 이야기뿐이었네요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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