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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그레이스콘 Sep 22. 2021

'친절한 복희씨'와 친절한 책방 주인

책의 가치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

평소 자주 이용하던 헌책방 사이트에서  배송비를 맞추려 몇 개 더 담아볼까 둘러보던 차에, 작가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과 '친절한 복희씨'를 이천 원씩에 팔고 있는 걸 봤다. 미처 소장하지 못한 책이었기에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주문했다. 무료배송을  채우지 못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쇼핑(?)이었다.


그러다 한 시간쯤 후 책방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배송하려고 보니 '친절한 복희씨'의 책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 그래도 구매하겠냐는 전화였다. 상관없다고 보내주시라 했더니, 그럼 알아서 천 원 깎아주시겠다고 한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운전 중에 전화를 받아 정신없던 차에 알았노라 하고 끊었다.


이틀 후 도착한 택배. "'친절한 복희씨' 1000원 할인합니다. 주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정갈하게 쓴 하얀 봉투에는 천 원이 함께 들어있었다. 혹시 놓치거나 빠져버릴까, 봉투 한쪽을 접어 표지 위로 보이도록 신경 쓴 흔적이 무척 세심했다. 그런데 나는 그 천 원을 받아 들고 잠시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 전 '논문 검증 시효'라는 말이 있다는 것에도 놀란 터였다. 문자로 기록된 것의 가치에도 시효가 있는가, 라는 의문으로 어딘가 근질근질하고 있던 참이라 그랬는지도.


책방 주인의 친절은 충분히 감사했다. 특히 그 봉투의 글씨는 너무도 친절하여 오히려 책을 주문한 내가 더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글의 가치가 종이의 상태에 좌우될 수도 있다는 시장의 논리는 조금 슬펐는지도 모른다. 종이만 누레졌다 뿐이지, 낙서나 밑줄 하나 없는 깨끗한 책이다. 아무리 살펴봐도 전화에서 느꼈던 그 미안한 목소리가 그럴만했던 이유는 찾지 못하겠다.


문자로 기록된 것은 영원하다 배웠다. 흔히 동양건축과 서양건축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건축의 기념비성'을 대하는 동서양의 차이를 쉽게 비교하곤 한다. 건축에서의 기념비성이 서양에서는 석조와 같이 거대하고 오래가는 건축물로 구현되는 반면, 동양에서는 현판에 쓰인 글씨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점이다. 서양과 같이 석재를 충분히 쓸 수 없는 아시아의 건축환경과 한자권의 정신문화에서는 그 건물에 부여한 이름으로 영원성을 기한다. 문자로 기록된 것의 가치가 그것의 물리적 형상의 쇠퇴함에 따른다고는 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아직 절판되지 않은 책이고 언제든 새 책을 구할 수 있기에 헌책의 가격에 영향을 끼쳤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출간한 지 오래된 책의 값이 떨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글이라는 것이 디퓨저에 꽂아놓은 향기처럼 날아가버리는 것도 아닐 텐데.


'친절한 복희씨'가 친절한 책방 주인을 만나 우리 집에 도착한 날, 답도 없이 나 혼자만 궁금한 질문이 또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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