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제가 어려서부터 가사를 도맡아 했었는데, 일 년에 딱 두 번, 아버지가 오니리기를 만들어주셨던 적이 있어요.
운동회랑 소풍이요.
‘오니기리는 자기가 만든 거보다 남이 해주는 게 훨씬 맛있는 법이지’, 이러시면서요.
계란말이나 비엔나소시지같이, 다른 애들이 많이 싸오는 반찬 같은 건 하나도 없어요.
연어랑 우메보시, 가츠오만들어간 오니기리 딱 세 개요.
이렇게 크고 못생기게 만든 거였는데, 그게 그렇게나 맛있더라고요.
몇 년 전 'JTBC의 방구석 1열'에서 이 영화의 이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같은 장면을 보아도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르다는 걸 느꼈다. 당연하고도 새삼스러운 이야기이지만, 같은 대사일지라도 결국 해석되는 바는 각자가 살아온 배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카모메식당'의 오니기리가 '혼밥의 시대에 함께 먹는 것의 즐거움'이라고 해석했지만, 내게 유독 깊게 박힌 대사는 '오니기리는 자기가 만들어 먹는 것보다'라는 부분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에 들어있는 꾸미지 않은 정성과 그 아련함 같은 것. 그리고 그건 가족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이 아닐까. 유명 셰프의 음식도 피땀 어린 정성이 들어가겠지만, 그건아마 작품으로서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에 가까울것 같다.
사람마다 '소울푸드'의 정의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집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면 소울푸드라 정의하고 싶다. 내가 항상 고집하듯,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 때 울 엄마가 해주는 밥'인 것처럼.
오니기리와 아버지에 얽힌 사치에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의 두 사람 표정. 인생을 좀 더 살아본 마사코의 표정이 '공감'이었다면, 비교적 젊은 미도리 얼굴엔 '감동'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