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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시간에는 필사를 합니다

필사 원서 추천!! 

뭔가를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책을 읽기는 싫고. 그런 애매한 시간에는 필사를 합니다. 


필사는 말 그대로 남의 글을 그대로 배껴쓰는 것이지요.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게다가 넌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 있어 필사는 


독자와 작가 그 중간 쯤에 서서 다시 읽고 새롭게 쓰는 시간입니다. 


1. 다시 읽음에 대해 


누군가의 말처럼 필사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독서법입니다. 눈으로 읽으면 휙휙 지나갈 문장들을 굳이 손으로 붙잡아 종이에 얹으면서 읽는 방법이죠. 아주 느려서 눈으로 읽는 것에 비하면 10배의 시간은 더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느린만큼, 눈으로 봤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한 단어가 가지는 무게를 곱씹게 되기도 하고, 절묘한 자리에 놓여 있는 대사 한 마디에 무릎을 치기도 하지요. 이 글을 썼을 작가의 템포에 발을 맞춰가며 읽게 되는 것입니다. 유난히 느리게 묘사를 하는 부분도 있고 한 줄에 3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뛰는 부분도도 있습니다. 눈으로 읽을 땐 '결말'만을 향해 부지런히 달려갔다면, 필사를 할 때에는 그 문장이 그곳에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합니다. 머무르는 만큼 단어와 문장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2. 새롭게 쓰는 것에 대해 


필사는, 감히 작가가 되어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금에야 다들 컴퓨터로 글을 쓰겠지만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웬만한 작가들은 펜과 노트를 들고 초고를 작성했을 테니까요. 그 시절, 작은 의자에 앉아 작은 테이블 위에 노트 하나를 펴 두고 만년필이나 볼펜 또는 연필로 한 줄 한 줄 적어가며, 또 한 줄 한 줄 지워가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 그들을 떠올립니다. 


필사를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자꾸 그 작가가 되어보려 합니다. 이 작가는 한 때 알콜중독자였다지. 이 작가는 이 쯤 쓰면 달리기를 하러 나갔을텐데. 이 작가는 이런 유머를 가지고 있구나. 


무엇보다 이 문장을 남기기 위해 지우고 버렸을 수 많은 문장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행간에 숨겨 있는 이야기들, 초고에서 쓰여졌다가 버려진 단어들. 그 선택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졌을까요? 그 선택의 순간 작가의 머릿 속에는 어떤 질문과 답이 오갔을까요? 


3. 요즘엔 원서와 번역본을 동시에 필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너무 좋은 소설을 만나면, 그리고 그 소설이 영미권 소설인 경우에는 원서를 사기도 했습니다. 좋았던 문장을 '원래의 형태'로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영어 문장을 옮겨 적다보면, 한글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되는데요, 역시나 문화가 다른만큼 생각도 다르고, 그 표현 방식도 다르더라고요. 


그 경험이 좋아서 요새는 원서와 번역본을 나란히 두고 필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입니다. 


왼쪽: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 옮긴이 김연수 / 출판사 문학동네 

오른쪽: Raymond Carver, Cathedral / Vintage 


이 책을 고른 이유는 


1) 일단 단편소설집입니다. 짧은 소설이 여러개 엮여 있는 책인데요, 그러다보니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짧다보니 어느 정도 쓰다보면 한 편이 마무리 되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쓸 수 있습니다. 


2) 레이먼드 카버니까요. 그의 글은 워낙 유명해서. 


그리하여 이 책을 틈틈이 필사하고 있는데요, 필사를 하다보니 이 책, 정말 좋더라고요.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문장이 쉽습니다!!!! 


저는 영어를 대학 때까지 공부했지만, 잘 하지는 못합니다. 평범한 대한민국인 수준인 것 같아요. 그런 제가 봤을 때 모르는 단어가 한 페이지에 한 개? 나올까 말까 합니다. 그래서 옮겨 쓰는데에 큰 어려움이 없어요. 사실 처음에는 이걸 못 느끼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만큼 쉬운 단어들로 쓴 책이라는거죠. 


그걸 아는 순간,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쳤습니다. 레이먼드 카버, 당신이라는 사람은 정말... 이런 단어들로 이렇게나 멋진 소설을 쓰다니 말이죠. 게다가 그의 글은 화려한 수사나 어지러운 이야기 전개가 없습니다. 그저 일상의 단면들을 덤덤하게, 어떻게 보면 시큰둥하리만큼 떨어진 거리에서 묵묵히 바라보며 적어내려간 것 같아요. 그럼에도 그 글이 주는 울림은 어마어마합니다. 


혹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이나, 영어 원서 필사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이 책 꼭 한 번 검토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영어 필사를 하던 저는 결국 펜 하나를 다 써버렸는데요, 


필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저도 나름 '좋은 펜'에 대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좋은 펜으로 쓰면 더 동기부여도 될 것 같고 기분도 좋을테니까요. 하지만 제 책상에 있는 수 많은 볼펜들이 저를 째려보더군요. 


요새 환경 문제도 시급한데 새 물건 더 사지 말고, 있는 펜으로 일단 떼워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이 펜들을 다 쓰면(?) 그 때는 좋은 펜 하나 사보기로...? ㅎㅎ


그렇게 연필꽂이에서 고른 첫 펜이 바로 이 CLIP PEN이었습니다. 


이것도 산 건지, 아니면 누구한테 받은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어쨌든 놀라운 건 펜이 굉장히 좋다는 거였어요. 


저는 제 스스로를 악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손에 힘이 없다보니까 펜을 더 꽉 쥐게 되고, 그 결과 피로감이 쉽게 쌓이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펜이 너무 잘 미끄러지는 건 오히려 힘들더라고요. 이 펜은 꽤 저항감이 심한(?) 펜입니다. 쓰려면 힘이 좀 들어요. 마찰력이 세달까? 저는 그래서 오히려 좋았습니다. 적정한 힘으로 쓸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 펜을 조금 더 사볼까 하여 찾아봤더니 이 펜, 꽤 비싸더라고요?? 


펜 하나에 2,300원 정도 합니다. 네이버 검색 결과에서 29cm로 들어가보니, 클립펜 상품들이 모여 있었는데, 보니까 여러 콜라보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쁜 색과 디자인의 클립펜이 많았어요. 잠시 욕심이 났지만 나는 지구를 이렇게라도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일단... 장바구니에만 담아 뒀습니다. 


이것이 저의 요즘 필사 생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시간 보내기에 좋은 취미라고 생각해요. 좀 더 글씨가 예뻤다면 유튜브나 인스타도 해보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럴만한 솜씨는 아니라서 아쉽기도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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