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해졌다
지난 9월 말, 남편이 인스타그램을 삭제했다. 우리는 그때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있었는데 남편의 '그 결정'은 꽤 비일상적인 것이어서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인스타를 지웠어? 왜?"
"그냥.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어서."
그 동안 남편은 나보다도 더 인스타그램에 열심이었다. 특히 여행을 다닐 때면 딸 아이의 모습을 열심히 찍어서 편집을 해 올리곤 했다.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애틋하고 그리운 장면들이라 나는 남편의 SNS활동을 나름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도 여행을 앞두고 그가 인스타그램 앱을 삭제한 것이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어서
남편이 SNS를 삭제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인스타그램을 할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나도 딱히 음식 사진을 찍을 흥이 나질 않았다. 더불어 여행을 하는 내내 습관처럼 휴대폰에 손이 가던 그 순간마다 나 역시 내가 SNS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조금씩 궁금해졌다. 나의 SNS 행위는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관찰자로서의 나이고 또 하나는 기록자로서의 나 일 것이다.
1. 관찰자로서의 나
사실 나는 적극적으로 사진이나 글을 올리는 부류는 아니다. 오히려 남들의 SNS를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내가 남들의 SNS를 구경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롤 모델을 지켜보기 위해서
나에게는 롤 모델이 필요하다. 어차피 내가 어마어마한 셀럽이 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나 자신이 그것을 원하지도 않기 때문에 TV에 잘 나오는 연예인, 예를 들면 이효리나 윤여정 님 같은 분을 내 롤모델로 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즉, 나는 TV에 (많이) 나올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자꾸 봐야, 나도 그렇게 살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 부시게 화려한 삶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멋지고 즐거운 인생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자주 확인해야 나에게도 확신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SNS를 한다. 그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삶의 방식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여둘톡 진행자 김하나 작가님 :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기" 라는 문장 아래 단단하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멋진 분이시다
https://www.instagram.com/kimtolkong/
분당 어딘가에서 카페를 하고 있는 필아웃 : 기깔나는 영상과 독특한 스타일로 카페를 너머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분이시다
https://www.instagram.com/fillout_coffee/
퍼블리 CEO 박소령 님 : 넓고 깊은 취향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분. 이 분이 추천해주는 드라마와 만화책은 일단 읽어보곤 한다.
https://www.instagram.com/soryoung.park/?hl=ko
SNS는 이런 분들을 훔쳐보기에 가장 좋은 창구이다.
2) 새로운 것들을 접하기 위해
내 나이 마흔.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들(배우자, 자녀, 사는 곳, 직업)은 웬만큼 정해져 있다. 삶의 방향과 색깔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 하지만 이대로 고여서 썩고 싶지는 않은 것 또한 나의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SNS를 한다. 세상은 넓고 재미있고 신기한 것은 많으니 열심히 보고 접하고 놀라고 당황한다. SNS는 나에게 있어서 분명 꽤 괜찮은 창문이다.
관찰자로서 내가 SNS를 하는 이유는 이 정도.
2. 기록자로서의 나
이번 남편의 SNS 삭제 사건(!) 이후 내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이것이다. 기록자로서의 나는 왜 SNS를 하는가.
'기록'이라는 행위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특히 나는 기억력이 매우 나쁘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은 다 잊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사는데, 그래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 놓는다. 그래야 내 삶에도 뭔가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휴대폰 사진첩이나 나 혼자보는 블로그 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굳이 왜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이어야 하는가.
결국 여기에는 '자랑심'이 섞여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나 여기 가 봤다, 나 이렇게 맛있는 거 먹는다, 나 이만큼 좋은 곳에 와 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자랑감. 이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헛헛해졌다. 나도 참 얄팍한 사람이구나. 다른 사람이 나를 부러워하길 바라고,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확인하고 싶어하는, 연약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여행 내내 음식 사진 찍는 것이 망설여졌다. 하늘이나 산, 들, 바다를 찍는 거야 말 그대로 기록용이니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 음식 사진은 조금 결이 다르다. 그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다. 음식 사진을 다시 보면서 '아 여기 좋았는데' 생각하는 경우는 (나에게 만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은 어차피 맛으로 기억에 남고, 좋으면 다시 가게 되어 있다. 반면 산과 바다 들과 길은 날씨마다 계절마다 다르다. 그래서 기록이 의미가 있다.
3. 그렇다면 글은 어떤가.
사진과 글은 다르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은 독자를 상정하고 써야 더 잘 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읽을 것을 생각하고 쓰면, 아무래도 표현이나 정확성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 이것은 글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따라서 글은 브런치나 블로그처럼 공개적인 공간에 쓰는 것도 좋은 것 같다.
4. 조금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최근 SNS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다들 SNS를 할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그 목적은 대부분 '돈'과 관련된 것인데, 결국 돈을 벌기 위해, 홍보의 창구로 SNS를 한다는 것. 너무 뻔한 사실이지만... 이것을 조금 다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홍보를 할 필요 없는 나 같은 인생은 굳이 SNS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래이래 해서 SNS를 하지 않게 되겠구나 싶긴한데, 자꾸만 내 생각을 인스타에 올리고 싶은 건 나 역시 사람들에게 얄팍하게나마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리기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