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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Nov 28. 2023

죽이는 할머니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을 다 담은 핀란드 시

글 Tapani Kinnunen. 그림 Jupu Kallio. Tappajamummo 등 시와 만화 선집. ntamo 출판사 2013.

한 청년이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가 와서 청년에게 말을 건다. 행선지를 묻는 낯선 노인의 질문에 두어 번쯤 공손하게 대답한 청년에게 할머니의 무례한 발언은 선을 넘는다. (대략 젊은이가 짧은 거리면 좀 걷지 뭘 버스를 타냐고 꾸짖는 내용이다.) 급기야 청년도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할머니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해 버린다.

전쟁이나 났으면!(후략)


할머니는 젊은이에게나 자신에게나 실현되어 좋을 것이 없는 저주의 말을 남긴다. 젊은 사람들이 편한 꼴을 못 보는 기성세대의 '라떼'(나때) 스토리 같기도 하고, 어떤 이유로도 무례한 행동이 합리화될 수는 없지만 전쟁과 그 후의 가난하고 어려운 시대를 보낸 사람의 불안과 콤플렉스가 반영된 증상인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건 대단히 슬픈 일이다.


1962년 생 시인이 2007년에 발표한 이 시는 나 같은 외국에서 온 이민자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인터넷 여기저기서 활발히 떠돌다가 2023년 가을 투르쿠 북페어(9/30)에서 '투르쿠 vs. 탐페레'라는 표제의 문학 낭송 배틀에서 시인의 입으로 전해졌다.


핀란드 시인 타파니 키누넨은 기억에 남는 인상의 소유자다.(시집에 종종 사진이 들어가는 걸 보면 본인도 그 각인 효과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 70년대부터 꾸준히 시집을 내 왔고, 요엔수에서 태어났지만 투르쿠 시문학의 전성기라는 90년대를 지나 지금도 투르쿠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시 속에는 성장기 소년의 이야기도 있고, 방종한 젊은 시절이나 아이와 야간열차를 타고 출장 가다 아이가 병이 나 고생한 이야기도 있다.

투르쿠 도서관에 있는 시인의 시집을 보이는 대로 모아 봤다.

외국인 이발사와 나눈 잡담과 머리를 자르고 나서 느낀 상쾌한 기분, 먼 곳에 사는 지인을 대형 슈퍼마켓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오히려 본인에게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서 황당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투르쿠에서 Savukeidas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다 에스토니아로 이주한 출판사 사장(이자 동료 작가) Ville Hytönen과의 만담도 빠지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써 온 것이 시인의 저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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