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가지고
에세이로 제출했던 글인데 일부분을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Q. 인생에서 돕고 싶은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왜 도우려 하고 어떻게 도움을 주고 싶은가요?
저에게 단 한 명을 도울 수 있다면 M을 선택하겠습니다.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선 그녀의 삶에 대해 먼저 에세이를 써보려고 합니다.
M은 비행기가 날아가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던 아이였다. 그 시절엔 나라 밖을 나갈 땐 국가의 허가가 필요한 시기인 만큼 여성에게는 한정된 꿈만 꿀 수 있던 시절이었는데도 어쩌다 날아가는 비행기와 나라 밖의 이국적인 사진과 영상을 보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론 전쟁을 겪은 부모의 일곱 아이 중 다섯번째 아이는 대학교에서 졸업하고 간호사가 된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많은 여성이 그렇듯 결혼적령기가 되고 소개로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침에 tv 요리프로그램에 나오는 레시피를 노트에 적는 평범한 주부로서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이란 항상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것. 둘째의 돌이 오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은 떠나고 부모님 집에 들어가 아이를 맡기고 일을 다시 시작한다.
지하철로 스무 정거장을 가고 버스로 갈아 타야 겨우야 도착할 수 있는 멀디 먼 직장을 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출근했고 녹초가 되어 집에 도착하면 세상은 어두컴컴해진 후였다. 이미 잠든 아이들 옆에 누워 조용히 얼굴을 쓰다듬고 잠을 청했다. 출퇴근 길, 지치고 피곤한 눈빛으로 무심히 시선을 둔 창밖의 하늘은 그럼에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렇게 번 돈으로 경험만이 자산이라는 생각에 틈이 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보여주려 노력했다. 틈틈이 시간과 돈을 내 국내든 해외든 조금씩 여행을 함께 다니며 어린 시절의 꿈도 조금 실현된 느낌도 들었다. 그것도 잠시뿐, 지독한 사춘기를 겪은 M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이제는 가족과 떨어져 멀리멀리 날아가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M은 한국에 남아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안녕을 빌며 기도했다. 홀로는 해외여행은 물론, 어디론가 가는 일이 점점 귀찮고 두려움도 생겨버려 그만두었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어지러운 집에서 그저 잠을 청했다. 어느새부턴가 하늘을 잘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땅에 핀 꽃에 눈이 가기 시작해 M의 핸드폰엔 꽃 사진이 가득했다. 시간이 흘러 자유롭게 살겠다며 배낭여행도 다니고 해외에 살던 아이가 어린 손녀와 한국에 왔다.
그리고 어느 날, 손녀는 저녁식사 도중 갑자기 M에게 이렇게 물었다.
"간호사가 아니었다면 뭐가 되었을 거예요?"
M은 주저함 없이 답했다.
"세계를 여행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을 거야".
그리고 그 옆에 대화를 듣고 있던 딸의 마음엔 충격과 파문이 일었다. 자신과 주변 지인들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선 프로젝트도 하고 자주 대화를 나누었지만 한 번도 M의 꿈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M이 자신들을 위해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콕 박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자신이 누린 것들을 위해 M이 어떤 것을 포기했는지 그제야 알아버렸다.
글을 읽으셨으면 아시다시피 M은 제 엄마입니다. 엄마가 되고 여성들의 삶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엄마에 대해선 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크면 M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가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을 이뤄주고 싶어요. 사실 세상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단 한 명만 도울 수 있다면 저는 여지없이 M의 손을 잡겠습니다.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아이와 엄마의 대화 이후 다음날 책방에 출근 했을때 책 <세계 도보여행 50>을 구입했습니다. 당장은 아닐지라도 계속 읽다보면 언젠가 그곳에 닿으리라 믿으며 말이예요. 현재 장기 여행은 어려우니 엄마 생신이나 특별한 날에는 1박 2일이나마 집에서 벗어나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엄마 생신때 함께 간 북스테이에서 창밖을 보며 방명록을 적는 모습인데 저에겐 그 모습이 꿈 같고 한편의 시 같기도 했습니다. 지극한 현실 속에 살아가지만 이런 순간들을 조금씩 쌓다보면 꿈에도 다가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