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도를 웃돌거라던 오후 3시. 버스에 타고 있는데 아스팔트 한가운데에 비둘기가 보였다. 어머 저게 뭐지 하는데 내가 탄 버스는 비둘기를 지나쳐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 되돌아가며, 그냥 검은 봉지이길 바랐는데 가서 보니 역시 비둘기. 차들은 살아있는 비둘기 위를 쌩쌩 지나가고 있었다.
붉은 신호에 차가 지나지 않을 때 까지 기다리다 3차선을 걸어 비둘기에게 다가갔다. 양손을 내밀어 비둘기를 잡았는데 새의 심장은 쉴 틈 없이 팔딱거렸고 몸은 너무나 뜨거웠다. 기진맥진해서 반항 한 번 못하고 내 손에 잡힐 정도로 새는 이미 탈진해 있었다. 품에 안고 편의점에 들어가 물을 주었더니 비둘기는 허겁지겁 꼴깍꼴깍 마셨고, 다 마셨다 싶을 때쯤 휴지에 차가운 생수를 적셔 배에 대주었다.
비둘기를 안고 1킬로쯤 걸어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여기도 저기도 새는 보지 않는다고 하셨고, 결국 비둘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비둘기는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보다가 잠들었다. 지기를 해칠만한 생물인가 살펴보는 것 같았다. 집에 데려와 베란다 그늘에 두고는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다. 구청의 공원 녹지과인가에서 데려간다고 하셨고 삼십 분 뒤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가 오셔서 비둘기를 데리고 가셨다.
보기에 할아버지가 별다른 조치를 취해주실 것 같진 않았다. 주로 죽은 동물들을 처리하시는 거 같았다. 그래도 구조된 보호종은 서울대로 보내신다고 했다. 이런 아이는 살기가 어렵겠네요, 했더니 내 눈빛을 보시고는 죽이지는 않으니 걱정 말라하시고는 가셨다.
비둘기는 살까 죽을까.
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
비둘기를 살려준 이유는 내가 느꼈던 절망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 이러다 꼴딱 죽겠다 싶은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네 살인가 다섯 살인가 푸세식 화장실에 빠져 스스로 기어 나온 적도 있었고, 서울 한복판에서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엔 유니폼을 입은 남자에게 경찰서에 데려다 달라고도 했었다. 여의도 주말 낮 코미디 방송을 보러 가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공개방송 신청자들에게 깔리기도 했는데 수백 명의 여학생들은 아홉 살의 나에겐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 발에 밟히며 아 죽는구나, 했을 때 하늘에서 손이 내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지나가던 아줌마가 애기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 꺼내 주신 거였다.
물리적인 위기 말고도 정서적인 구렁텅이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나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를 확인했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그래서인지 길을 지나다 상황판단없이 반응을 먼저 해버릴 때가 있다. 지난 겨울 길에서 네 살쯤 되는 아이를 부모가 때리고 있었다. 소리부터 질렀다. 한번 더 손대면 바로 신고하겠다고, 길 건너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부모는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손과 발을 거두고 아이를 살피는 척 하곤 사라졌다. 그 아이는 그 후로 맞지 않게 됐을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맞고 있을까. 그때 남자에게 얻어맞더라도 아이를 파츨소에 데리고 갔어야하지 않았을까.
밤을 새우고 새벽빛이 돌기 전 케베스 앞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밤, 기사 아저씨는 약에 취해있었고 내려달라는 나를 위협했다. 문을 열고 인도로 나왔지만 지나가던 사람들은 내게 괜찮냐 묻지 않았다. 시외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해 당산역 사거리에 황급히 내려 성추행범을 쫒아 가 잡았을 때도, 내 곁엔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놈과 나를 구경만 할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뻔 한 순간은 이거 말고도 수십 번은 있다.
도움을 주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1호선을 타고 사촌의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어느 겨울날, 흑인 부부가 내 옆에 앉아있었다. 남편은 지독한 감기에 걸려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손수건도 휴지도 없었다. 나는 가방 속의 티슈를 몇십 초 만지작 거리다가, 이거 다 쓰세요. 아 괜찮아요, 다 쓰세요,라고 한국말로 말했다. 아저씨는 꽤나 고마워하시는 것 같았다. 아저씨에게 휴지를 내밀기 전 망설였던 시간, 저분께 지갑 속의 돈을 드릴까 말까 갈등하던 사이 결국 사라지고 말았던 여자 노숙자분, 한 겨울 차에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던 반팔 티셔츠의 남자 노숙자분. 다 용기가 없어서 그냥 지나쳤던 분들이다. 길에서 당황하던 외국인 관광객도 몇 번 지나쳤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이나 동물을 혹은 식물도 꽤나 지나쳤다. 망설이다 그렇게 됐다.
가끔 뻘밭에 빠져 죽는 사람을 생각한다. 조개를 캐다 뻘에 허벅지까지 빨려 들어가고, 사람들은 그를 구하지 못해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그를 빤히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헬기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새만금으로 엠티를 갔을 때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라 들었던 얘기다. 그 얘기가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뻘에 빠져들어가던 사람과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사람. 그들의 절망이 과연 내게 찾아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헤아려본다.
강아지 모나가 겁에 질릴 때가 있다. 그럴 땐 순식간에 나를 바라보고, 나는 순식간에 모나를 들어 안는다. 내 손이 닿는 순간 우리 둘 다 안심한다. 괜찮아, 내가 있어. 응 알아. 네가 있어. 아름답지 않은지. 내가 내밀어 줄 손이, 그 손을 잡을 당신의 손이. 두 손이 맞잡아지는 순간이.
조금만 더 친절해지기를. 놀라고 무안해하고 창피해하고 당황해하고 난감해하는 상대에게 한 번만 더 친절해지기를. 친절이 쌓여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기를. 친절을 받은 누군가가 누군가를 구할 수 있기를. 내일은 조금 더 용기낼 수 있기를.
비둘기를 보내고 나서 자책이 드는 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