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그 간이역은 없다.

by Henry

그곳에 있을 간이역을 찾아

이 골목과 저 거리를 헤집고 다녔지만

이미 역사는 사라지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 낯선 건물만 덩그러니



고향이 어딘가

“고향이 어디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살짝 당황한다. 네게 고향은 딱히 어디라고 말하기 힘들다. 태어난 곳, 자란 곳, 청소년기를 보낸 곳이 다 다르다. 그나마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에서 10년 조금 넘어 살았으니 시간으로만 따지면 이곳이 고향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으로 따지면, 어릴 적 일이 제일 많이 기억나는 외가 마을이 고향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향이라는 말만 들으면 외가에서 보낸 시절이 소환되어 나타난다.


그렇다고 태어난 곳과 외가 마을을 고향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아는 이 하나 없고 풍경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태어난 곳에도, 꽤 긴 유년 시절을 보낸 외가 마을에도 아는 이를 떠올릴 수 없다. 그때라고 친구가 없었을 리는 없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어릴 적 잠깐 만났다가 도시로 이사 오는 바람에 연락이 끊어졌다. 그 후로는 그들을 찾거나 만날 일이 없었으니 마음속에서 멀어졌다. 이곳은 가면 나는 이방인이 되어 쓸쓸함을 느낀다.


그나마 청소년기를 보낸 도시에는 아는 사람이 많다. 그곳에 친구들이 있고, 그곳에 노모가 있고, 곳곳에 내 기억이 남았다. 어쩌면 이곳을 고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도시의 중심에는 갈 곳 몰라 방황하던 청춘의 잔해가 군데군데 남았다. 빈약한 주머니는 공허했고, 불안한 미래로 허무했던 시절이었다. 불안한 청춘들은 화려한 도시의 불꽃에 이끌려 밤마다 거리를 배회했다.


가장 오래 머문 그곳에 가면 파편이 된 추억의 조각을 만날 수 있을까.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지만, 그 시절의 흔적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그 장소, 그곳에 가면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도시에는 기억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들

음력 새해 첫날인 어제 사찰에서 올린 제사 의식을 모두 마치고는 추억의 파편을 찾아 나섰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간이역을 찾으러 나섰다. 그곳은 1930년대 지어졌다가 2000년대 말에 운행이 중단됐지만, 한때 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그곳에 가서 세월의 조각들을 모아보면, 옛이야기가 퍼즐처럼 맞춰질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그곳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한다니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다.


간이역은 아주 떨어진 도시의 경계선에 있었다. 버스에 오른 곳은 반대편 도시의 반대편이라 거기가 꽤 멀다. 두 곳이 멀리 떨어진 탓에 지하철을 타고도 40분 족히 걸리는 거리다. 지하철은 한 번에 가는 노선이 없기 때문에 갈아타야 한다. 마침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그걸 타기로 했다. 모처럼 느긋하게 시내를 지나면서 옛 풍경을 떠올려 보리라는 생각에 젖었다. 이런 내 생각을 잘 안다는 듯이 버스는 도시의 중심가 구석구석을 돌았다.


버스가 지나는 곳은 예전에 한두 번은 와 본 곳인데 풍경이 변했다.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분간되지 않았다. 간혹 옛 건물이 남은 곳을 지나칠 때면 그 옛날의 거리와 비교해 본다. 거리는 그 거리가 맞지만, 풍경은 그 풍경이 아니다. 기억 속의 그곳은 없었다. 그나마 한두 곳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은 퇴락하고 쇠잔하다. 세월에 지친 흔적인 건물 곳곳에 남았다. 수명을 다한 건물은 자기도 곧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중심가를 지난 버스는 논과 밭이 있었던 길을 달린다. 그곳은 천지가 개벽했다. 개울과 논밭이 있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으로 키 큰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혁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이곳에 무슨 추억이 있으며, 기억의 쪼가리 하나 남을 턱이 없다. 끝 간 데 없이 아파트의 창백한 회색 건물이 줄을 잇는다. 생각보다 도시는 더 빨리 개발되었고, 더 크게 혁신되었다. 있던 자연과 풍경은 몽땅 밀어버린 자리는 개발과 혁신의 깃발이 휘날린다.


버스가 얼마나 촘촘히 도시 곳곳을 들렀는지 한 시간 40분이나 걸린 시간이 그것을 말해준다. 도시의 크기를 감안할 때 이 정도 시간이면 남은 추억을 실컷 감상해야 한다. 아쉽게도 추억은 그리 많지 않고, 대신 사라진 것들을 떠올리는 아쉬움만 가득하다. 그렇다고 도시가 언제가 그 모습 그대로 있을 수는 없고 보면 개발을 탓할 수만은 없다. 고향은 때 되면 한 번씩 들르는 떠난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고, 남은 자가 보듬고 살아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역은 사라졌다.

이윽고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둘러보니 간이역은 보이지 않고, 입주가 한창인 아파트 건물만 우뚝 솟았다. 분명 이곳이라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역 비슷한 건물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지나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본다. 이곳 토박이가 아니라서 잘 모른다고 말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하고 혼란스럽다.


예상보다 버스 투어가 길어지는 바람에 짧은 겨울 해는 빠른 속도로 지고 있다. 가뜩이나 흐린 날씨인데 날이 빨라 어두워진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니 마침 이발소 문을 잠그는 아저씨가 보인다. 아파트 단지 도로 건너편 주택가 초입에 자리했다. 동네 이발소는 대개 안 곳에 오래 머물기 때문에 동네 지리나 역사를 잘 안다. 아니나 다를까 이발소 사장님도 이 동네를 두루 꿰고 있다. 필시 이곳이 아파트 단지로 변하기 전부터 터를 잡고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아저씨가 바로 길 건너 아파트 단지 입구 쪽에 간이역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일대가 혁신 도시로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역사 건물은 그 자리를 지켰다. 도시와 연결하는 철로도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지역 전체가 깡그리 새로 개발되는 바람에 역사 건물도, 선로도 제자리를 지칠 수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문화재로 등록된 역사 건물을 떼다가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이런 설명과 함께 그곳으로 가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신다.


옮긴 역사가 있는 풍경


간이역은 그 자리에 없다. 고향도 그 자리에 없다. 고스란히 건물을 떼다 옮겼다고 그것이 과연 옛날의 간이역이 맞을까. 원래 있던 그 자리가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없는데. 건물만 있다 해서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을까. 옮겨간 자리에 서 있을 역사는 분명 깨끗하게 잘 보존되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차분하게 검색해 보니 새로 옮긴 역사 건물 일대를 공원처럼 꾸며놓았다.


워낙 부수고 지우는 데 익숙한 개발 정책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라도 보존한다니 반갑기는 하다. 그렇지만 보존할 방법인 꼭 이 방법밖에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원래 역사가 있던 그 장소를 그대로 보존하면 더 나았다. 아파트 건설업자는 경제성이 떨어진다고 볼멘소리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파트가 분양이 잘 되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설혹 분양이 잘 되어 건설업자가 번 돈의 가치가 역사를 그 자리에 잘 보존하는 문화적 가치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이미 사라져 버린 그 자리를 아쉬워한들 소용이 없다. 그곳에 사는 토박이들마저 떠나고 나면, 옛날 그 자리가 어딘지 조차 모를 것이다. 그게 뭐 그리 대수냐고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라져 버리는 모든 것들을 그리 무심히 내버려 둔다면 우리의 추억과 정서도 쉽게 없어지고 만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고향은 무슨 의미일까. 그저 아스팔트와 회색빛 건물로 가득한 도시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변해도 그 모양이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향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고향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긴 하루를 보내고 밤 12가 다 돼 집으로 돌아왔다. KTX 덕분에 하루 동안 많은 일을 치를 수 있었지만 , 몸은 천근만근 무겁다. 피로가 몰려온 탓에 속도의 편리함을 누렸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하루 만에 그 많은 일정을 소화한 속도 때문에 간이역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속도가 느렸다면 하루 만에 올라올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더 긴 추억 놀이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날로그적 감상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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