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맛난 음식을 채울 수 없는 법
마음도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좋은 생각을 채울 수 없는 법
내려놓아야 한다는 생각마저 내려놓아라.
"스님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정확하게 무슨 말씀입니까?"
"내려놓아라(방하착, 放下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말라고 하셨으니 내려놓을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려놓으시라뇨?"
"가지고 가거라(착득거, 着得去)."
역시 덕이 높은 스님의 말씀은 어렵다. 우매한 대중이 한 번에 이해하기 힘들다. 뜻을 요모조모 따져보면 기가 막힌 말씀이다. 후학들의 해석에 따라 번역해 보자. 원래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설명을 위해 약간 변형했음을 밝힌다.
번뇌, 갈등, 집착, 원망을 비우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이것들을 없애려 한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해질 거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생각조차 없애야 진짜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비우자! 비우자!'라고 되뇌는 것조차 욕망이다. 내려놓다는 생각마저 잊어야 한다.
진짜 비우지 못한다면 번뇌, 집착, 원망이 그대로 남았다. 내려놓으려 한다는 그 생각마저 잊지 못한다면 수양이 부족하다. 아니 수양할 자질이 모자란다. 그러니 그냥 떠나라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진정한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니 고민해도 소용없으니 속세로 되돌아가라는 뜻이다. 그만큼 내려놓고 비우는 일이 힘들다는 뜻이다.
우리는 욕망을 싹 버리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안다.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마음을 꺼내 세탁기에 넣어 한 번 돌리면 더없이 깨끗해질 텐데 그렇게 할 수 없다. 유기농 표백제로 살균이라도 하면 군데군데 뭍은 온갖 잡생각이 떨어져 나갈 텐데 그럴 방법이 없다. 미우나 고우나 한평생 담고 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가 곧 마음이다.
문제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런 깨달음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또 머리로 이해한다고 해도 몸으로 느끼기는 더 힘들다. 말과 글로 풀어쓸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하면 좋다는 사실을 알지만, 생활 속에서 그걸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다. '내려놓는다'이나 '깨닫는다'는 것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잡동사니를 쌓아 두기에는 아깝다.
살다 보면 버리지 못하고 외려 쌓는다. 살아온 시간이 늘면 함께하는 물건들도 는다. 이것저것 모으다 보면 어느새 그것들로 한가득하다. 분명 필요해 장만했는데 쓸 곳이 마땅치 않은 것들도 많다. 버리기 아까워 차곡차곡 놓다 보면 집안은 더 채울 틈이 없다. 게다가 한 번 쓴 물건은 정이 가고 추억이 묻는다. 그러니 쉬 버리지 못한다. 마치 지난 시간을 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 때문이다.
대궐같이 넓은 집을 가진 사람이야 집안 이곳저곳에 물건을 둬도 표가 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창고라도 지어 그곳에 물건을 넣어두었다가 생각날 때 꺼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시 생활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라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좁은 아파트 공간에 물건을 두면 금방 꼭 찬다. 버리지 않고 쌓기만 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발 디딜 틈조차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돈으로 계산해 보자. 한 평 가격이 금싸라기보다 더 비싼 게 요즘 아파트 시세다. 이 비싼 땅에 쓸데없는 물건을 놓아두면 얼마나 낭비인가. 수억 혹은 수십억이나 하는 아파트 시세를 따져볼 때, 그 비싼 곳에 쓰지 않는 물건을 쌓아두는 건 엄청난 돈 낭비다. 그럴 바엔 두 번 다시 쓸 일 없는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자. 그리고 평수를 확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하는 게 현명하다. 남는 돈으로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사는 것이 소확행이 아닐까.
집은 깨끗이 비울수록 좋다. 그곳의 값어치는 올라간다. 무엇을 비워야 할지 망설일 때가 많다.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가지고 있는 자료 가운데 최근 1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은 과감히 버린다. 혹시 나중에 쓸 일이 있을까 하는 미련에 주저하기 마련이다. 버릴 때는 주저해도 버리고 나면 쉽게 잊어버린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라면 없는 것이 더 낫다.
마음도 자주 청소하고 세탁하자.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면, 진짜 문제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다. 마음도 쓸데없는 물건으로 가득 찬 집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살면서 머릿속 기억 저장소에 온갖 잡동사니로 채운다.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마음 안에 걱정, 염려, 시기, 질투가 꽉 들어찼다. 두뇌는 우리 몸의 총열량의 1/4 가까이 소모한다. 그런 두뇌가 쓸데없는 잡생각을 유지하느라 귀한 열량을 소모하니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마음 혹은 두뇌가 생산적인 활동을 해도 하루 해가 금방 간다. 좋은 생각만 해도 모자랄 판인데 근심과 걱정을 볼볼 겨를이 없다. 미운 감정, 증오, 배신, 원통함 등 각종 나쁜 감정을 두뇌의 기억 저장소에 비우자. 소중한 마음에 영혼의 폐기물로 담가 두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과 염려 대부분은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괜한 걱정이다. 그걸 생각하느라 소모하는 열량을 생각하면 내려놓아야 한다. 기준은 뭘까? 없어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이 없는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 더 있으면 좋겠다는 그 '더'를 내려놓으면 편하다. 그리고 확정되지 않은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자.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과 고민하고 번뇌하는 것은 다르다. 조심은 하되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자.
마음도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세탁해야 한다. 하루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쁜 기억과 감정을 깨끗이 쓸어내자.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잡념을 버리고 명상하자. 그래야 좋은 생각과 좋은 기억이 찾아오면 앉을자리가 있다. 신선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기억 저장소도 비우자. 좋은 생각들이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머리도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