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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세이스트 정현 Apr 25. 2024

플라스틱 매와 나쁜 애

  맞은 날이 많다.


  한 번 맞기 시작하면 한 대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 아버지와 내가 서로 적지 않은 에너지 소모를 한 뒤 훈계와 교육과 사랑의 절차가 마무리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매질의 시간이 길어진 건 나의 탓이라고 했다.


  내가 말이 너무 많았다. 어른이 혼내는데 꼬박꼬박 말대답을 했고 눈을 치켜뜨고 부모님을 쳐다봤다. 급기야 악을 질러댔고, 그래서 입 좀 닫으라고, 잘못 좀 뉘우치라고 더 때려야 했나 보다.


  맞아도 나는 소리를 질렀다. 가끔 엄마는 도망 좀 가라고 했다. 특히 아버지가 때릴 땐 제발 좀 피하라고, 아프지도 않냐고. 아팠다. 아버지가 가져온 회초리가, 기다란 플라스틱 장난감 매가 부러지도록 때리는데 아프지 않을 수는 없잖아. 하지만 아픈 것보다 내게 더 중요한 건 나의 결백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내게 씌우는 갖가지 죄목들에 도무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커서 엄마를 때리고도 남을 패륜아 새끼. 넌 인간쓰레기야,라고 하는데 고분고분 동의해 드릴 수는 없잖은가. 내가 엄마를 얼마나 끔찍하게 생각하는데. 엄마가 행복해지기만을 바라는 딸인데. 조금만 더 적절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부여된 죄목이었더라면 난 순순히 맞았을 것이다. 종종, 아버지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할 땐 그렇게 해왔으니까. 나 같이 성질 더러운 아이,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아래서 크지 않으면 분명 인간 말종이 될 게 뻔했으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의 폭력은. 


  그래서 혼나는 도중 내가 가장 자주 외치던 말이,


  나 나쁜 애 아니야!

  나 나쁜 애 아니야! 

  나 나쁜 애 아니야!


 였다.


  이 말을 할 때면 눈물이 제멋대로 줄줄 흘렀다.

  울기 싫은데. 이따위 약한 모습 보이기 싫은데. 

  꼭 무너져 내렸다. 나쁜 애라고 하면.

  난 절대로 아버지가 말한 만큼의 나쁜 애가 아니었으므로.


  아버지는, 엄마는 우는 나를 보며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쟨 왜 저렇게 맨날 울어.


  언제부터 맞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인 것은 확실하다. 첫째 동생이 내가 일곱 살에 태어났으니까 대여섯 살쯤부터 맞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때리기 전엔 엄마가 때렸고, 한 번은 내 팔인가에 상처가 나서 늦은 밤 아버지가 연고를 발라주던 기억이 있다. 딱 한 번. 딱 한 번, 아버지의 다정함에 엄마와 한바탕 했던 그날의 상처가 말끔히 아무는 묘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곧 엄마는 당신의 힘으로 나를 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하신 모양이었고, 그렇게 바통은 엄마 체중의 두 배인 아버지에게로 넘어갔다. 172 센티미터에 80킬로 즈음되었던 아버지는 근육도 많았다. 공부만 하는 학자치곤 이상할 정도로 근육질의 몸이었다. 넓은 어깨와 두터운 손의 소유자에게, 엄마는 나와의 일을 모두 말했다. 주로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받은 엄마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하루종일 공부하고 와서 신경이 날카로운 아버지가 엄마의 표정을 살핀 뒤 처리해야 할 일처럼 나를 혼냈으니까.


  아버지는 딸년이 엄마한테 그래선 안된다고 했다.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 싸가지 없는 새끼.


  조금 이상하긴 했다. 아버지는 누구보다 엄마한테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 무시하는 말들을 일삼는 사람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하는 대부분의 말이 아버지의 일상어와 닮은 꼴이었다. 그런데 꼭 내가 엄마한테 하면, 엄마와 아버지는 한 편이 되어 내게 화살을 돌렸다. 가끔 엄마는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무서운가. 엄마, 내가 무서워?


  유난히 솥뚜껑 같은 손으로 나를 내려치곤 할 때, 엄마는 종종 옆에서 아버지를 거들었다.

 

  여보, 더 혼내. 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물었었다. 엄마, 그때 왜 그랬냐고.


  너 혼나는 게 속상해서. 그렇게 말하면 아빠가 덜할까 하고.


  엄마는 참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을 말렸네,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린 나는, 엄마와 아버지에게 한 번에 대응해야 했던 나는, 엄마가 제발 엄마 손으로 나를 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그래야 공평하지 않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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