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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막새 Mar 07. 2023

[서평] 유신 그리고 유신

숨막히듯 펼쳐지는 일본 한국을 이어간 유신의 망령들

유신 그리고 유신 : 숨막히듯 펼쳐지는 일본 한국을 이어간 유신의 망령들  




책 서두는 여몽 연합군이 일본을 보호하는 신의 방어막 “가미카제”에 막혀 실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세계를 집어삼킨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제국의 용감하고 훈련된 병사들이 일본의 병법상 모자란 병사들을 상대로 살육을 저지르며 승리의 나팔을 부는 일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불어 닥친 2번의 태풍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국의 실패로 귀결되었다.



당시 고려는 국내 사정도 고려하고 실익을 어디못할 파병을 막아보려 나름 애썼지만 세계를 정복한 국가가 작은 섬나라 하나 이기지 못하면 “쪽 팔려서” 어떻게 하냐는 의견으로 모든 객관적인 데이터와 실효성을 뭉개 버린 셈이다.



덕분에 승자의 입장에서는 밖에서 온 세력은 모두 악으로 명칭하고, 섬 안에서만 선함 가득한 경쟁의 비정상 국가로 만드는 관념을 탄생시켰으니 그게 바로 "일본".



유신으로 나라의 방향성을 바꾼 이야기는 이렇듯 일본에서 시작하여 장렬한 총알세례로 막을 내린 대한민국의 핏물 넘치는 유신으로 이어진다.



그동안 영화나 짧은 역사책을 통해 간단하게 알고 있던 박정희 말기의 암투를 오래전 고려시대 파병기에서 시작하여 큰 흐름으로 이해해나가면 “유신”을 주인공으로 역사를 풀이해갈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깊숙이 몰랐던 일본의 유신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확실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일본제국 패망사”에서 수상과 관료를 도륙하는 장교들의 행동과 그토록 자부심에 고개를 빳빳이 들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책의 앞부분을 넘겨가며 우리와는 확연히 다른 국가관과 세계관을 일본이 획득하게 된 배경과 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민생과 결과주의.


박정희가 당시의 다른 독재자들의 애국심과 다른 확실한 차이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북한보다도 떨어진 국민소득을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는 의도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자가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딱 좋은 프로파간다. 이게 얼마나 잘 통 했는 지는 지금도 특정 지역을 방문하면에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그의 경제 살리기가 미국의 의도와 정세의 절묘한 기회를 잘 탄 원인이 결정적이었음을 부인 할 수 없지만, 국가의 부를 착실하게 완벽하게 쌓아 둔 채 국민들을 굶겼던 나라들과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려고 한다.


물론 결과를 위해 모든 행위는 정의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부분은 결코 용서하기 어려운 역사의 과오로 남았지만.



민족의식과 민족국가의식의 차이는 좀 애매하다.


분명 긴 칼 차고 싶어 만주군 장교로 지원하는 일은 지금 시각에서는 분명 매국행위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대로 당시 일제라는 자연환경 속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미 철저히 몰락했고, 빈농들에게는 누가 나라의 주인이 되던 관심이 없었다.


눈 앞에 일본인들이 내 먹거리를 빼앗아 가는 데는 분노했지만, 사실 얼마 전까지는 조선의 관리도 빼았아갔었으니 뭔 대수인가.


당장 내 자식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국가와 왕이 뭔 소용이란가.


그러니, 조선인의 기개를 높이고 할 수 있다는 저력을 보기 위해 교사직을 버리고 만주로 떠나는 행위를 한정하여 비난할 수는 없다.




2년 넘게 쿠데타의 완성을 느리게 진행하면서 최고 권력자가 된 그가 목표를 쟁취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로 지냈다는 증거는 충분하기 때문에 연장선 개념으로 만주를 이해해보기로 노력해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 안에서 민족의 형태와는 또다른 전우 또는 스승과 제자라는 형태의 관계는 국가의식이 부재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공동 운명체를 만들어 냈다.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였건 개인의 욕심이었던 일본과의 국제관계에서 인맥을 동원하여 성과를 끌어내려던 노력과 결과물들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결과주의에 빠져왔던 박정희에게는 모든 수단은 결과물이 좋으면 용서될 수 있었으니.



국가경제의 발전에 대한 의견이나, 하나의 결로 지사와 매국노를 구분했다는 박정희의 역사인식을 저자의 의견대로 100% 공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껏 생각했던 긍정의 느낌을 좀 밀어준다면 다소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 등장한다.


박정희를 독립운동가로 칭송하려던 작가의 노력은 만주군도 독립군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내쳐버렸다고 하는데, 그건 그의 세계에서 완성되는 결이지 후세대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쉽지 않다.


민족국가의 관념이 없었다고 인정해도, 만주국과 만주군의 정체성을 모르고 장교생활을 했다면 이건 더 웃긴 이야기 아닌가.


그럼에도 본인 자신은 독립운동과 만주국의 군인으로 삶을 동일시 하고 철저히 자랑스러워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겠지만.



운명의 그날을 그린 두 편의 영화를 인상깊게 감상했었다.


두 영화 모두 우리가 들어왔던 김재규와 차지철의 권력 암투를 묘사한다.


차지철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그가 박정희의 개였지만 권력 2인자로 승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탐욕을 잘 표현했다.


여기에 우리가 역사 해석에 오류가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김재규는 자신을 의인 또는 사무라이로 생각했고, 대의를 크게 생각했다.


박정희 옆에서 꼬리를 흔드는 차지철은 하류등급으로 인식했고 그와 경쟁할 마음도 없었었다.


이 대목에서 충성 경쟁이라는 파국의 이유로 하나를 제거하면 확실히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된다.



마지막 주군에 대한 총알은 “가이샤쿠”의 의식이었다.


천심을 잃고 자결을 하는 박정희의 가는 길에 마지막 힘을 보태 준 응원인 셈이다.


전통에 따라 김재규도 목숨을 끊어야 한다. 주군의 황천길을 따라가야 하니.


그러나 때를 놓쳤고 살아남았다.


유신이라는 괴물은 자신의 총에서 소멸로 완성되었는데 말이다.


사무라이로서 그는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많은 영화 팬들의 희망대로 남산으로 확고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 채 신발이나 잃어버린다.



조금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책장마다 스멀거리며 나온다.


과거 단편으로 이해했던 역사 토막들에 대한 해석이 유신이라는 거대한 무브먼트 안에서 해체되고 재구성된다.


작가는 유신을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 혼란스러운 책 읽기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확실히 시각을 달리하여 바라본 역사의 소용돌이는 음미해볼 대목도 많고 해석을 다시 한번 시도해볼만한 장면도 등장한다.



두 나라의 얽힌 관계는 이 리뷰를 쓰는 전날 한일 관계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장관의 입을 통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정치계의 양 측에서는 서로를 맹비난하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민족 의식이란 무엇인가?


민족국가 의식이란 무엇인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태평성대한 대한민국의 2023년 한일 관계의 새로운 지평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숨이 턱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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