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막새 Jun 06. 2024

LP / 앨범 커버 / 음악

오래된 음악듣기 LP, 왕의 귀환 또는 번거로운 음악 선곡의 묘미

LP / 앨범 커버 / 음악 : 오래된 음악듣기 LP, 왕의 귀환 또는 번거로운 음악 선곡의 묘미


 
 
 

LP 전성 시대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창조적인 앨범 커버를  제작했다는 점이다.

CD가 팬 심을 대변하는 아이템으로 역할이 바뀐 지금과 달리, 음악의 A부터 Z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하던 LP 시절은 턴 테이블에 음반을 올려놓고 앞 뒤로 뒤집는 불편만큼이나 종이로 된 커버가 닳지 않도록 조심스레 다뤄야 하는 주의도 필요했다.

손바닥 만한 크기가 아닌 거대한 스케치북 크기를 가진 앨범 재킷은 디자인 요소를 마음 껏 펼칠 수 있는 캔버스 역할에 충분한 크기였고, 대다수 산업 디자인 개발 전개 과정과 마찬가지로 속 내용물을 보호하는 기능성 측면을 뛰어 넘어 아티스트가 담아낸 음악을 시각으로 표현해내는 감상자와의 소통의 축을 담당하는 채널 역할까지 해냈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를 LP 전성시대로 분류하는데, 당시에는 디지털 기술이 부족했기에 커버 제작은 수작업으로 이루어졌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소요됐다.

단순한 그룹 멤버나 가수의 얼굴 이미지를 사용해 하품나는 평범한 커버가 많았던 이유가 설명된다.

빌보드 앨범 차트에 900주 넘게 오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던 Pink Floyd의 “The Dark side of the moon” 같은 – 이미 커버만으로도 가장 유명한 그래픽 중 하나이다 - 작업은 정교한 화가의 손을 통해 탄생한 세련된 그래픽을 보여주지만 수십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실제 프리즘과 색의 분산을 잡아내어 카메라에 담아 낸 결과물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다소 보정은 들어갔겠지만 프리즘의 경계 없는 유리면과 스펙트럼의 색상을 절묘하게 뽑아내기 위해 계속 위치를 조정하고 카메라 렌즈를 돌려 댔다고 한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으로 손꼽히는 Beatles의 유산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밴드는 25만 달러 (현재 가치로 200만 달러)라는 예산이 투입되었는데 지금 봐도 실험성 강하면서도 위트 있는 커버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으니, 당시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의 결과물이었다. 비틀즈 자신들의 데뷔시절 모습도 등장시키며 당시 유명인들의 몽타주들을 한 자리에 모아낸 사이키델릭 냄새 가득한 커버 디자인이었다.


앨범에 수록된 몇몇 금지곡 때문에 국내에서는 멤버들 사진 부분만 확대하여 라이선스로 발매되어 오히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 누더기 덕에 전세계 희귀 아이템으로 등극하여 1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에 이베이 거래가 이루어진 황당한 케이스도 발생했다. (그 와중에 나는 이사하면서 이 보물을 쓰레기 더미에 투하했다.)

LP가 CD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이 대세를 이룬 2020년대에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단순히 복고의 반격이라고 하기에 이 취미는 돈이 꽤 많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듣고 있는 디지털 음원에 비해 열악한 소리를 들려주던 카세트테이프도 인기를 끌고 있으니, 음악 자체 보다는 음악을 듣는 과정과 남다른 형태의 정서를 녹여 낸 “나만의” 생활 타입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트렌드 아니겠는가?


LP를 구동하기 위한 플레이어와 앰프, 스피커는 물론이고 웬만한 앨범 한 장에 5만원을 호가하는 만만치 않은 취미다. CD 대비 2-3배 높게 책정된 음반을 수집하는 과정은 질보다 양을 외쳤던 내게는 비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대세는 대세.

입점료 꽤나 비싼 여의도 더 현대 지하 2층 LP 샵에는 고객들이 들어차 있다. 15분 정도 구경을 하며 카운터에 실제 결제 건수는 0건이라 지속 유지가 쉽지 않겠다는 안타까움도 들었지만, 다양한 음반 구색과 그 음반들을 꺼내 이리저리 만져보는 고객들의 시선은 반짝 유행에 그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용산 음반점들은 음반을 장식장에서 꺼낼 때 커버 파손 방지를 위해 양손으로 잡으라는 안내문구가 여러 군데 붙어있었는데 여의도의 합한 가게 주인과 손님들은 아무도 그런 주의사항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도 차이가 크다. 어느 쪽이 정답이지?


자켓을 디자인으로 점철한 시대의 특징은 여러가지 있겠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아티스트의 음악과 메시지를 시각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가장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음반에 실린 음원보다 유명한 커버 아트도 여럿 존재하니 예술 가치가 소리와 어울려 만들어낸 색다른 분야임은 확실하다.


필름 카메라에 담아내는 아날로그 감성 다분한 분위기는 당시에는 “현재”지만 지금은 “복고”의 멋 내기 가득한 고전이 되어 시대 흐름에 따른 태도 변화도 흥미롭게 지켜볼 관전 포인트다.

도쿄 진보초의 디스크 유니온 LP코너, 2024

앨범 커버 제작에 비용이 드는 만큼 한 장의 음반 기획의 빠듯한 예산에서 선 듯 비용배분을 높이기 쉽지 않았을 테다. 힙노시스가 로저 딘 같은 음반 커버 아트계의 저명한 그룹에 의뢰할 수 있는 아티스트는 정상급 레벨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덕분에 재킷 전문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예술 가치 가득한 커버 웍은 자체만으로도 미술 애호가의 콜렉션 역할을 해낸다.


벨벳 언더드라운드의 커버를 담당했던 미술가가 앤디 워홀이라면 작가가 활동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LP 한 장이 현대미술의 복제되어 유통되는 예술작품이 그 자체가 된다. 


한참 LP를 모으던 시절 음반을 하나 가슴팍에 들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레드 제플린의 Jimmy Page가 만들었던 The Firm의 데뷔 앨범이었는데 앨범 커버를 안고 있는 과거 내 모습은 한 장의 음반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당시의 기분이 지금도 전해진다. 지갑을 꺼내 손쉽게 음반 하나 사는 행위가 아니라, 출출할 때 떡복기나 쫄면 사먹을 용돈을 모아 음반을 사 모으던 시절이니 수백번을 들어도 지겨워질 일이 없었다. 지금은 천장 단위를 넘은 CD를 팔아먹고 스트리밍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달랑 50여장의 LP가 주던 만족감에 비할 나위가 아니다.


LP는 비운의 죽음을 맞고 다시 부활하여 매니어들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고, 그 중 커버의 역할은 더 무거워지고 있다. 큼지막한 종이 패널 위에 새겨진 예술과 멋짐의 조화가 앞으로도 흥행가도를 달리기 기대한다.


CD도 종말로 가고 있는 2024년도에 이제 남은 건 LP의 전성시대 뿐일까?

자켓 이미지에 깜짝 놀랐다면 가격을 보고 두번 놀라시길


작가의 이전글 [서평] 어떻게 팔지 막막할 때 읽는 카피 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