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든, 사람 관계이든
'방금 대표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회사의 목표에 대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사실 앞서 진행한 면접에서 기술자와 디자이너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했습니다. 회사의 일원이 동일한 목표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
'프로덕트 오너', 김성한 저 중에서.
대학교 4년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영 즐겁지만은 않은 조별과제를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상 마주하게 되는 단골 멘트는 '개인의 역량이나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와 소통하면서 함께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이었다. 고집이 센 편이 아니고, 불필요한 마찰은 피하려고 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대학생활을 할 때에는, '뭘 하더라도 다른 사람 말에 귀를 잘 기울이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대학생활을 마치고 실제로 '일'을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더욱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일하다 보니 다른 이와 소통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정말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다.
'사회'라는 상황 속에서의 일을 경험해본 후, 대학생 후배들과 함께 짧게 프로젝트성으로 일해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과거의 내 모습이 비쳐 보이며, '대학'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당시에는 지금과 전혀 다른 태도와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요즘 '다른 이와 소통하는 상황'에 대해 많이 느낀 점 들, 대학생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멱살 잡고(?) 들려주고 싶을 이야기들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아래 내용들은 꼭 업무나, 일과 관련된 상황뿐 아니라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사회와 다르게 대부분의 것들이 일시적이다. 4년의 과정 뒤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애초에 학기 단위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조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아무리 열심히 해서 뛰어난 결과를 내더라도 낼 수 있는 결과물의 상한선은 A+라는 학점일 뿐이고, 학기가 지남과 동시에 프로젝트는 의미를 잃는다. 그렇지만 회사나, 업무적인 상황에서 진행되는 일들은 보통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목표가 있으며, 당장 눈앞의 손익이 걸려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학생 때는 오히려, '사회'라는 공간에서는 같은 집단의 일원이 동일한 목표를 공유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움직이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모두가 열심히 나아가는 것'과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수 있다. 서두에 적은 김성한 님의, '모든 일원이 동일한 목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꼭 업무적인 상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도, 모두가 서로에게 같은 수준의 것을 기대하고, 예상하지 않는다. 어쩌면 모든 사람을 본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나와 주변 사람들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하면 같은 목표와 방향성을 공유하도록 그나마 유도할 수 있을지, 애초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상황이긴 한 건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위에서 언급했든 대학시절 항상 나는 가능하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하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는 것'과,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 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다시 1번을 보자. 대부분의 사람은 본인의 입장에서, 본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이 지나치게 공통의 목표를 저해하지는 않는지, 지나치게 나의 입장에 대한 배려가 빠져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 좋은 게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마지막 것은 특히 업무나, 프로젝트 상황에 특히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특히 (과거의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학생 때는 느끼기 힘든 부분인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아마 '대학'이라는 곳의 특성 탓이 클지도 모른다. 대학교에서 진행되는 많은 (의도되었든 아니든) 것들은 '평가' 나 '비교'를 전제로 한다. 특정 결과물이 우수해야 하고, 여러 다른 팀에 대해 동일한 과제를 매번 진행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결과물의 뛰어남, 본인의 이해도를 보여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실제 프로젝트나 업무 상황에서는 조금 상황이 다른 것 같다. 결과물의 뛰어남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뛰어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과, 이 결과물이 왜 중요하고, 뛰어나며, 필요한지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심지어 상황에 따라 본인의 이해도를 보여주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물이 얼마나 특별하고, 뛰어나며, 독보적 일지에 집중하기보다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에게 당장에 필요한 게 무엇이며, 이 결과물은 그 요소를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 듯싶다.
학부생 후배들과 산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 지도교수님께서 가장 많이 훈련시켜주셨던 것은 자료조사도, 기술 스터디도 아닌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간결하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끝으로, 업무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소통'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더 어렸을 때는 어떻게 하면 다른 이들을 더 잘 설득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도록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었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생각은 나와 다를 것이다'를 전제로 깔고 어떻게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