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귀국했다. 고1, 중2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이사 온 지 한 달 열흘이 지났다.
예비 수험생,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여러 가지 셋업에 신경을 쓰고 코로나, 방광염 등 병치레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기사와 메이드가 있는 마담(madam)에서 다시 풀타임 주부이자 워킹맘으로 모드 전환 하는 일에 생각보다 에너지가 아주 많이 쓰였다. 이전보다 더 자주, 더 심하게 깜빡깜빡 무언가 중요한, 아니 당연한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내 머릿속 지우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망각의 은사'를 감사하며 지냈지만 자꾸 무언가를 놓치고 잊고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괴감과 우울감도 생겼다. 초기 치매 진단을 심각하게 고려할 즈음, 아동심리치료를 전공한 동생과의 통화에서 큰 힌트를 얻었다.
성인 ADHD에 대하여
성인 ADHD를 처음 알게 된 건 창고살롱 시즌 4 레퍼런서 살롱을 통해서였다. 레퍼런서 모니카 님의 ADHD 진단 과정을 들으며 '어머, 이거 완전 내 이야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니카 님이 일상에서 경험한 여러 가지 관계, 업무에서의 갈등과 좌절을 들으며 비슷한 나의 에피소드가 끊임없이 떠올랐다.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 오은영 박사가 연예인 박소현에게 '행동 문제가 없는 주의력 저하'(aka 조용한 adhd)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무릎을 탁 쳤다. 존스홉킨스 소아정신과 의사 지나영 교수의 adhd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깊은 공감과 확신이 들었다. 시즌 4 창고살롱이 진행될 때 나는 하노이에 있었다. 막연히 귀국하면 진단을 한 번 받아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막상 돌아와 일상의 우선순위에 밀려나있던 터였다.
이삿짐 정리는 상상을 초월할만큼 쉽지 않았다. 넓은 집에서 좁은 평수로 이사한 탓도 있겠지만 테트리스 블록처럼 (집에 유일한 공간인)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삿짐 박스를 하나하나 열고 내용물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만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한 번 무언가에 몰두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는 타입이라 이사 후 첫 주는 매일 새벽 3,4시에 잠들고 하루 서너 시간씩 자며 짐 정리만 했다. 꼭 필요한 행정적 일처리 이외엔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짐 정리에 파묻혀 지내던 중 코로나 양성 진단을 받고 침대에 눕게 됐다. 피로와 수면 부족으로 면역력이 저하된 탓인가? 회사에 출근하는 남편과 매일 학원에 오가는 아이들 모두 건강한데(이건 정말 다행이지만!) 집콕하며 짐 정리만 하던 내가 코로나라니! 좀 어이가 없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코로나에서 회복할 즈음 급성 방광염이 찾아왔다. 처음 방광염 진단을 받은 건 30대 후반 즈음이다. 결혼기념 10주년 장거리 여행의 막바지 즈음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피 소변을 보며 화장실을 들락거리던 괴로움이 그 첫 경험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소변이 마려워도 바로 화장실에 가지 않고 끝까지 참으며 하던 일을 끝내려고 했던 습성이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에도 쓰던 보고서를 마무리하느라, 만들던 발표 자료 ppt를 놓지 못해서, 회의 흐름을 놓치기 싫어서 화장실 가는 걸 자꾸 참고, 미뤘다. 요즘도 읽던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서, 생각난 메시지를 바로 보내기 위해서 자꾸 소변을 참는다. 몇 번 방광염을 겪으며 그 괴로움이 너무 싫어서 이 부분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반복되는 횟수가 베트남에 갔던 2년 전부터 부쩍 더 잦아졌다. 물론 바로 소변검사 후 항생제를 처방받아먹으면 금방 깨끗하게 완치가 되긴 한다. 참 감사하고 다행이다. 하지만 너무 괴롭다. 다시는 소변을 참지 말자고 매번 다짐한다.
혹시, 조기 치매일 수도?!
아이들이 새로운 학교에 등교를 시작하면서 나도 일상의 루틴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시작이 쉽지 않았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가? 고작 2시간의 시차 탓인가? 워낙 얼리버드보다는 올빼미 유형이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어려웠다.(이 또한 as usual이긴 하지만.) 모든 환경이 낯설고 친구도 없는 새로운 학교에서 2학기를 맞는 아이들에게 아침을 챙겨주고 축복기도로 등굣길을 배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현실은 겨우 아이들을 깨우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내어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진짜 자괴감이 들 정도의 event가 생겼다.
토요일 학원 수업을 마치고 오후 배구 수업에 가는 딸내미에게 가방을 받아오던 길이었다. 마침 상호대출 신청한 책이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도서관에 들렀다. 그동안 손발이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독서 금단 현상이 생길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책들을 보니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들이 마구 떠올랐다. 한참 서가를 서성이며 책을 골라 도서관 테이블에 앉아 단편 소설 위주로 2시간쯤 달콤한 독서 시간을 보냈다. 주말이라 5시에 도서관 문을 닫는다고 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상호대출 신청한 책들과 추가로 빌린 책들을 한 아름 들고 곧바로 집에 와서 나머지 책들을 더 읽었다. 저녁식사 후 딸이 가방을 찾았다. 숙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방이 없었다. 분명 들고 와서 빨 방에 그 검은색 디스커버리 백팩을 내려둔 것 같긴 한데, 확신할 수 없었다.(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그전 날의 장면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순간, 도서관 의자에 걸쳐둔 딸아이의 백팩이 떠올랐다. 책을 추가 대출하느라 손이 모자란 내가 그 가방을 잊고 갈까 봐 스스로에게 리마인드 한 장면도 생각났다. 하지만 집 안 어디에도 백팩은 없었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동선상 중간에 어딜 들르거나 하지 않고 곧바로 집에 왔기 때문에 그 가방은 도서관에 그대로 걸려 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는 거다. 다음날 도서관 오픈 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가방은 내가 앉아 책을 보던 그 자리에서 의자에 걸쳐진 그대로 발견되어 사서가 보관해 두겠다고 했다. 휴~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아, 정말 이런 내가 나도 너무 싫다. 어떻게 그런 걸 까먹을 수 있나? 정말 치매라도 시작된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전 날 가방을 찾으며 엄마 때문에 숙제도 못한다고 투정하던 딸에게 어쩔 줄을 모르던 내가 스스로 너무 싫어졌다.
바로 며칠 후 또 다른 일이 생겼다. 교복 대신 매일 생활복(체육복)을 입는 딸이 아침에 옷장에 옷이 없다며 체육복을 찾았다. 분명 어제 색깔별 빨래를 돌리며 딸아이 체육복을 우선으로 빤 것 같은데, 건조기에도, 개 놓은 옷 더미에도 당장 입고 등교해야 할 딸아이 생활복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며 누군가 치웠거나 다른 곳에 있을 거라며 이곳저곳을 찾던 중, 아뿔싸! 빨래통에서 발견된 체육복! 큰 일 났다!! 얼른 딸아이 체육복 두 벌만 건조기에 넣고 살균, 먼지 털기 모드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10분쯤 돌리는 동안 딸아이는 늦는다 성화였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짜증이 넘쳐났다. 할 말이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어떻게 그런 걸 착각하고 안 챙길 수가 있는지 또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이런 정신머리로 무슨 일을 한다고 하는 건지. 스스로가 너무 가증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아니,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될게 뻔하기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알아서 아무 일도 벌이지 않는 게 잘하는 선택이라는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확신에 확신을 더하는 듯했다. 그렇게 두 벌 중, 좀 더 땀 냄새가 덜 나는 찝찝한 입던 옷을 후다닥 입고 딸아이가 등교를 했다. 잘 다녀오라는 인사도, 축복기도도 해주지 못하고 그저 한 없이 죄인 된 마음으로 딸의 눈치를 살피며 미안하다는 말만 한없이 삼켰다. 그리고, 전 날 꼭 먼저 챙겨 옷걸이에 걸어두자는 당부와 함께.
바로 며칠 전, 깜빡 잊고 놓쳐버린 중요한 줌 미팅도 다시 떠올랐다. 8분이나 늦게, 그것도 상대방의 문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허겁지겁 접속해 무한 사과와 감사를 나누며 허둥지둥 시작한 상대와의 첫 미팅 말이다. 분명, 중요한 미팅으로 의미부여를 많이 하고 전날부터 셀프 리마인드를 여러 번 확인한 미팅이었다. 학원에 가기 전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조용한 나 홀로 거실에서 차분하게 접속할 수 있는 시간을 선택해 세팅해 둔 줌 미팅 일정이었다. 분명, 직전까지 저녁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미팅 일정을 상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결과는 또 critical mistake. 문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다. 비즈니스에서 미팅 시간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기본 중 기본 아닌가? 상대의 소중한 시간에 대한 존중은 기본적인 예의이다. 그리고 신뢰의 첫걸음이다. 그런데 이를 완전히 백지처럼 망각하고 아예 미팅을 놓쳐버리다니. 도저히 스스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생각해 보니 창업 후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상황적인 핑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구글 캘린더와 휴대폰 알람, 그리고 여러 생산성 앱을 활용해 가며 직전까지 아무리 리마인드를 해도 그 시간을 훌쩍 넘겨 미팅을 놓쳐버린 경험이 반복되고 있다는 거였다. 그 순간 느끼는 당혹감과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 삶에서 중요한 한 부분인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이 현실 자체가 판타지이고 감사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하다간 금방 끝을 볼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패배자가 되기 전에, 더 민폐가 되기 전에 그냥 이쯤에서 자진해서 멈추는 게 현명한 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45세에 ADHD 진단받다
진료 예약을 하고 3일을 기다려 드디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났다. 진료를 받기 전 #성인 ADHD #여성 ADHD 키워드 검색으로 유튜브에 있는 거의 모든 클립과 구글, 네이버 검색 결과에 나오는 다양한 글들을 보았다. 뭐든 한 가지 주제에 꽂히면 끝을 볼 것처럼 파고 또 파며 리서치를 멈추지 못했다. 진단 과정은 의외로 간단했지만 섬세했다. 의사는 먼저 우울증과 관련된 질문을 여러 각도에서 했다. 곧이어 본격적인 ADHD 진단을 위한 질문이 이어졌다. ADHD는 AD(Attention Deficit, 주의력 결핍)와 HD(Hyperactivity Disorder, 과잉행동 장애)의 합성어이다. AD와 HD 각 영역에 대한 9가지 질문 중 5가 이상에 Yes라고 답하면 의사가 그 외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판단해 ADHD 진단을 내린다고 설명했다. 뇌 MRI 촬영이나 피검사 등의 절차는 별도로 없었다. 바로 약 처방도 받았다. 이미 내가 충분히 셀프 스터디로 학습한 후 전문의를 만난 영향도 있겠지만 의외로 진단과 처방 과정이 너무 빠르고 쉬워서 좀 놀랍기도 했다. 진단 이후, 컴퓨터 테스트(CAT)도 했다. 이는 진단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기보다 앞으로 약의 효과를 살필 때 개선되는 정도를 확인하기 위한 참고 자료 정도로 쓰이는 듯했다. 30여분 의사 면담과 진단, 그리고 약 50분의 컴퓨터 테스트 후 수기로 설문조사를 마치고 약 24만 원 진료, 검사비를 결제하고 약을 타서 귀가했다.
진단 후 이해되기 시작한 지난 날들
ADHD 진단을 위한 질문에 답하면서 핵심은 어릴 때부터 40대 중반 성인이 된 지금까지 계속된 경험인지에 대한 부분인 것 같다. 나는 AD 항목에 해당하는 9개 질문에 모두 강하게 YES라고 답했다. 신랑은 이 이야기를 듣고 미리 알고 의도적으로 답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문제 제기를 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럴 이유가 있나? 남들보다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고 건망증이 심하다고 해서 ADHD 진단으로 면피 삼겠다는 속셈이라고 의심한 걸까? 이미 가족들은 내 특성을 잘 알고 있고, 비난하기보다 특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도와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은 정말 감사하다. 어릴 때부터 난 늘 준비물을, 숙제를, 실내화주머니를 잘 까먹고 등교하는 학생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공부는 곧잘 한 편이라 우등생으로 선생님들께 편애를 받는 때도 많아서 크게 문제시되진 않았다. 그리고 늘 이를 도와주던 동생, 엄마, 그리고 친구들이 곁에 있었다. 큰 축복이었다. 그래서 증상은 어릴 때부터 이미 많았지만 이를 문제로 인식할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 그냥 내 성격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받거나 자기 비하로 이어질만한 상황이 별로 없었다.
성인 ADHD 관련 동영상을 보던 중, 세무사나 회계사 등 정해진 규칙을 꼼꼼하게 해내야 하는 루틴 한 업무가 이들에게 어려울 수 있다는 내용을 보았다. 대학 졸업 후 내가 처음 발령받은 부서는 재무회계 그룹의 회계(accounting) 파트였다. SAP 시스템에 전표를 입력하는 그 단순하고 간단한 업무가 내겐 왜 그렇게 실수 연발의 괴롭고 어려운 일이었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좌절하며 안절부던 못하던 신입사원인 내게 다가와 야근을 자처하며 친절하고 따뜻하게 도와주던 매우 성실하고 똑똑했던 고졸 여사원 그 동료들 덕분에 그 시기를 잘 버텨내고 지날 수 있었다. 어떤 업무보다 꼼꼼함과 디테일이 요구되는 비서실에서 일할 때도 생각난다. 실수 연발이었던, 다 내색할 수 없었지만 자주 당황하고 hectic as hell 그 자체였던 내게 나의 다른 면인 장점과 역량을 칭찬하며 관련 기회를 더 많이 주셨던 당시 boss와 사수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싶다.
문제는 결혼 후 신혼 초부터였던 것 같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신랑과 결혼 전까지 평생 허물 벗듯 집을 빠져나와 종일 워커홀릭 일상을 살던 나는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갈등 상황을 맞았다. 중요한 기념일이나 가족 행사를 깜빡하고, 부재중 전화에 바로 응답하지 않는 나를 신랑은 무심하고 애정 없다 느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랑과 희생으로 모든 걸 커버하며 날 키워준 부모님 덕분에 나는 자존감이 꽤 높은, 늘 긍정에너지가 넘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신랑과의 관계에 갈등이 생기더라도 이를 내재화하여 내 문제로 보기보다 상황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달라는 호소로 대응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혼 초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정말 '깜빡' 잊었었다고, 몰라서 그랬다고 항변하는 내게 신랑은 늘 모르는 게 자랑이고 이유가 될 수는 없다며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매번 꼭 사과를 요구했다. 이해하지 못하고 지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단받길 잘했다
올해로 결혼 17년 차가 되었다. 굳이 진단이 왜 필요한지 신랑은 무척 회의적이었다. 가족들 모두가 이젠 어느 정도 내 특성을 이해하고 그러려니 너그럽게 이해하고 도와주는 부분도 크다. 이 부분에 대해 내가 만난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다.
정신과 질환 중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증상은 완치가 가능하다고. 즉, 원인을 알고 약물 등으로 꾸준히 치료를 하면 그 증상을 말끔히 없앨 수 있단다. 하지만 ADHD는 이런 증상과 다르다. 선천적, 혹은 유전적으로 뇌의 신경전달물질 불균형에 의한 증상으로 안전하고 간단한 약물 치료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지만 복용을 중단하면 다시 주의력집중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뇌의 앞부분, 이마 바로 아래 위치한 전두엽에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그래서 약을 통해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거나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를 억제해 이를 더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거라고 했다. 의사는 이를 안경에 비유했다. 근시를 가진 사람이 안경을 쓰면 보이지 않던 것이 잘 보이고 일상을 좀 더 유능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지만, 누가 옆에서 보이지 않는 칠판 글씨를 대신 노트 필기 해주고 운전을 대신해주면 살 수 있는 것처럼 ADHD 약 복용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안경 없이도 살 수는 있지만 안경 쓴 세상과 비교했을 때 삶의 질은 달라진다고. 이는 행복도와 self esteem에도 분명 연관이 되리라!
내 생각도 비슷하다. 물론, 정신과 약에 대한 우려와 선입견 등으로 신랑이 염려하는 부분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았고 전문가의 진단과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상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지금 나에겐 훨씬 큰 것 같다. 우선 나는 아토목세틴 계열의 약을 처방받았다. 매일 아침 한 알씩 먹으면 된다. 10mg으로 시작해 매주 용량을 10mg씩 높여가면서 내 몸무게에 비례해 증상의 개선과 부작용 등을 살펴보며 적정 용량을 정하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도파민을 촉진하는 메틸페니데이트 계열의 약보다 복용 직후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경향이 있고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니라는 점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제 시간을 두고 살펴볼 때이다.
오늘 아침 9시에 첫 알을 삼켰다. 동생은 약물 효과를 정확하게 비교하기 위해서 일정한 시간에 꾸준히 약을 잘 먹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가족들에게도 리마인드를 부탁했다.
계약한 지 2년이 지난 출판 원고도 탈고해야 하고 곧 창고살롱 다음 시즌도 오픈해야 하는데 (as usual) 시작이 유난히 더 버겁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변화를 기대하며 기록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