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받았던 성적이 아주 우수한 편은 아니었으니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고,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적당하겠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를 배워서 활용하는 것을 좀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배우길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는 언어이다. 이렇게 말하면 또 내가 몇 개 국어를 하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그저 언어도 배우고 싶은 여러 가지 중에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면 될 것 같다. 그런 차원에서 작년부터 스페인어를 배웠다. 인터넷 강의를 통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어렵긴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스페인어를 사용해 대화를 해본다면 너무 신이 날 것 같았다. 바르셀로나엔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학원을 다닐 틈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충분히 구경하고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학원을 다니며 그 주변을 쉬엄쉬엄 둘러보기로 했다. 그렇게 발렌시아에 오게 된 것이다. 오렌지로 유명한 발렌시아. 도착해보니 이곳은 정말 오렌지의 고장이 맞았다.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라니.
한국에서 미리 알아본 학원으로 찾아가 등록을 하고 수업을 들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있었지만, 그저 학생으로서 교실에 앉아 있는 것 자체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발렌시아에 체류할 수 있는 기간 자체가 길지 않기에 수업 첫 날부터 아쉬움이 큰 상태이긴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즐겨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아쉬움을 뒤로했다.
사실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던 것은 ‘학생’이 된 느낌 때문이라기 보단 이 공간 안에선 내가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아내가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에서 난 누구의 누구가 아닌 그냥 한국에서 온 Claire 였다.
나이가 들면서 ‘나’라는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타이틀이 늘어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쁘다고 볼 수 없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 늘어난 타이틀의 무게에 눌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이 혼란스러워 질 때가 있다. 어쩐지 기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결혼을 한 후 며느리로서 느꼈던 감정이나, 아이를 낳은 후 사람들이 나를 ‘순수엄마’ 라고 불렀을 때 느꼈던 낯선 느낌 같은 것 말이다. 그들이 나를 내 이름이 아닌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가려지거나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의 역할을 그런 타이틀 속에 한정시키려 든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그 느낌은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애 엄마가 무슨 그런 옷을 입어?’
‘지금이 몇 신데 결혼한 여자가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와?’
‘주부가 갑자기 무슨 공부야?’
이 문장들은 다시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은 여자라면 그런 옷을 입어도 되고, 밤에 늦게 들어와도 되며, 언제 어느 때 어떤 공부를 해도 상관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데 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여자들은 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이러한 관념은 누가, 왜, 어떤 것을 기준으로 만든 것일까? 그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어울리는 개념이긴 한 걸까?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인구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일들이 결혼을 함과 동시에 어떤 구체적인 설명이나 정확한 이유 없이 하면 안 되는 것으로 규정되어 버린다. 그나마도 아이를 낳기 전엔 그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아이까지 기르게 된다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두 배로 줄어들게 된다. 어느 순간 결혼과 출산은 득보단 실이 많은 선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출산율이 높아질 수가 있나. (물론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가 이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내 스페인어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질 거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나아가 그것이 학원을 등록한 목적도 아니었다. ‘그 나이에 피곤하게 뭘 배워’ ‘써먹을 곳도 없는데 무슨 학원까지 다녀’ 등의 말에 반문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써 먹을 곳이 생길지 안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만에 하나 써 먹을 곳이 영영 생기지 않아도 배우는 것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이 왜 쓸데 없는 일이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사람들이 하는 이런 말 안에 ‘지금 안 배우면 큰 일 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할머니에게 애를 맡겨가며 꼭 가야겠어?’ 라는 말이 숨어 있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아무렇지 않게 이곳에 와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내게 진짜 하고 싶어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한 것뿐이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의 논리가 아예 이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봐도 지금 이 순간 내가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반드시 배워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람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며칠 학원에 다닌다고 갑자기 못하던 스페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닐 테니 어찌 보면 시간 낭비, 돈 낭비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엔 좋은 추억 하나 쌓고 끝날 일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얻게 되는 것이 그 좋은 추억 하나면 안 되는 건가? 짧은 시간이지만 멋진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서 끝나면 좀 안 되냐는 것이다. 왜? 내가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엔 나를 위한 일 보단 남편과 아이를 위한 일을 해야 하는 게 나은 거라서 그 동안엔 나 혼자만의 즐거움을 쫓는 것은 어쩐지 좀 그렇다?
엄마도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뿐이다.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이전의 모습은 다 없어지고 ‘엄마’로 변신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대로 있고 거기에 엄마의 역할 하나가 추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한 남자가 아빠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그 남자의 모습에 아빠의 역할이 추가 된 것뿐이다. 즉, 부모로서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아빠라고 해서 부모의 모습으로만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부모가 되었다고 해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개인의 기쁨과 욕구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길게 설명을 했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굳이 지금 스페인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이유이다. 대단하거나 중요한 이유는 애초에 없었다. 나는 그저 내 인생의 어느 한 순간, 그러니까 내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을 때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 그 사람의 인생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혼, 출산, 육아가 대단한 일들은 맞지만 그 세 개의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날 이벤트의 끝이 아닌데, 그 사람들은 이 세 개를 다 겪으면 그들의 인생에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대단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남은 인생은 별로 흥미롭지 않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감히)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죽을 때까지 진행중인 것 아닐까? 결혼을 했어도, 아이를 낳았어도, 그 아이를 다 키우고 내가 늙었다고 생각되어도 죽기 전까지 우리 인생은 계속 진행된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 흥미롭게 흘러갈지 지루하게 흘러갈지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역할을 한정 짓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즐거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며 각자의 인생을 좀 더 재미있게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