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나란 사람은 무대에 오르는 것이 얼마나 떨리는 일인지 생각하지 않고 공연을 하기로 덥석 마음을 먹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로 인해 빚어질 안 좋은 상황보단 주로 좋은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하며 그 일을 하기로 결정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무대에 오르는 날이 코 앞까지 다가와야 비로소 내가 지금 하려는 일의 실제 크기를 알게 되고 그제서야 그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아주 겁도 없고 대책도 없는 버릇이다.
중학교 때 일이었다. 영어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그 시절 나는 겁도 없이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겠다고 결정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께선 직접 스크립트도 작성해주시며 응원을 아끼지 않으셨었는데, 문제는 그 스크립트를 받는 그 날부터 나기 시작한 겁이 시간이 흐를 수록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써주신 분량을 다 외울 자신도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잘 말할 자신도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결국 말하기 대회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고, 그 때 난 나로 인해 타인이 실망한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최대한 나를 꾸짖지 않으시려 애쓰시는 모습이었지만 아주 정확하게 내게 실망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차라리 혼이 나고 말았다면 그 때의 기억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말하기 대회에 나가지 않게 되어 홀가분해지기는커녕 나에게 실망하신 선생님을 볼 낯이 없어 그 뒤로도 며칠을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 보다 날 더 힘들게 한 것은 스스로 결정을 번복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못난 내 자신을 봐야 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어떤 결심을 한 후에 그 결심을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단지 내가 잘 해낼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이라면 그 이유로는 결심한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내가 간혹 무언가에 심한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중학생 때 저지른 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5살이 된 딸을 놔두고 한 달간 혼자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던 반년 전엔, 이 계획이 딸과 나에게 이렇게 큰 미션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수유를 끝낸지도 오래되었고, 나 없이도 잘 먹고 잘 노는 딸 아이를 보며 한 달 정도는 엄마 없이 지내도 괜찮겠다고 쉽게 생각했었다. 엄마도 나름의 계획과 생각이 있고, 그것들을 실행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때가 다가오니 우리가 과연 이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 욕심 채우자고 어린 딸을 놔두고 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 과연 딸과 나, 모두에게 옳은 일인 것인가에 대해 이제 와서 심각하게 고민하느라 오늘도 나는 내 자신을 들들 볶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결정을 번복할 순 없다. 이 결정을 가족들에게 설명하고 그들로부터 동의를 (비록 완전한 동의는 아니더라도) 얻어내기 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이 여행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떠날 날짜를 며칠 앞두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약해진 마음 때문에 그 동안 세운 계획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비슷한 이유로 결정을 번복했던 20여 년 전의 나에서 조금은 발전한 사람이고 싶다. 그렇지만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엄마가 된 모양이다. 사람이 눈에 밟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는데, 떠나기도 전부터 딸의 얼굴이 눈에 밝힌다.
이렇게 복잡한 심경에도 불구하고 떠날 날짜가 임박해 왔기 때문에 요즘엔 비행기 표와 숙박에 대해 알아보느라 정신이 없다. 딸 아이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던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 맞는 것인지, 나 조차도 헷갈린다. 남편 말대로 내가 매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 결국은 자식도 남편도 아닌 날 위한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일까?
나의 계획과 비슷한 계획은 아닐지라도 사실 많은 엄마들이 각자 자신만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가 끝내는 이루지 못해 실망하고 우울해지는 과정을 적지 않게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엄마가 된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을 위한 삶과 자신을 위한 삶이 충돌하는 길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가 많은데, 대부분은 어떤 것을 더 원하는 지와 상관없이 결국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끝이 항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것이 문제이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으니 그들을 위해 사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인 듯 느껴지고, 나를 위해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땐 내 자신에게 조차 그 모습이 이기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가끔은 타인이 아닌 스스로가 나를 위한 행동을 본능적으로 못하게 막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엄마란 자리는 원래 이런 것일까? 그렇다면 엄마가 된 우리는 이렇게 무엇을 원하는지 와는 상관없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만을 하며 살아야 것일까?
누군가 에겐 한참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가족만을 위해 살 수도, 나만을 위해 살 수도 없다는 것이다. 가족을 위한 일도, 나를 위한 일도 모두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그 중심을 잘 잡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하는 희생은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같은 일이라도 의무감에 기계적으로 하는 희생은 누구에게도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될 수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이 가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과 겹칠 때마다 기계적으로 가족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내게도 기회를 줘볼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엄마이기도 아내이기도 딸이기도 며느리이기도 언니이기도 하지만 아주 단순하게 나는 그저 나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나이길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길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