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누구에게나 필요한 휴식
어렸을 때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토요일은 휴일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일찍 끝나긴 했지만 토요일은 엄연히 학교에 가는 날이었다. 그래도 점심을 먹고 오던 다른 요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수업이 끝나는 토요일이 너무도 좋았다. 뭘 해도 기분이 좋았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방영하던 ‘긴급출동 911’이란 프로를 할머니가 주시는 간식을 먹으며 보던 그 순간도 좋았고, 그 프로가 끝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며 빈둥대던 시간들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딱히 특별한 것을 했던 것도 아닌데 그저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무척이나 행복했던 것 같다. 이렇게 주말을 좋아했으니 월요일이 가까워 질수록 ‘더 놀고 싶다’ 라는 생각만 했을 것 같지만 실은 ‘이제 월요일이니 학교에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책가방을 미리 싸 놓았던 기억이 난다. 길지 않았어도 휴식이란 그런 것이었다. ‘계속 쉬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 보단 ‘쉬었으니 다시 하던 일을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며 내가 힘이 들었던 것은 단순히 아기를 돌보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내가 낳기로 결심한 아이였다. 내가 돌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므로 그 당연한 일을 힘들어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라는 것이 힘들었던 이유는 ‘육아’와 ‘육아’ 사이엔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 휴가, 연휴 등 사라진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를 다닐 때 일요일에 쉬었던 것처럼 회사를 다닐 때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한 후 토요일과 일요일에 쉴 수 있었다. 달력에 표시된 빨간 날도 쉴 수 있었고, 휴가라는 이름으로 며칠을 연달아 쉴 수도 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건 그렇게 쉬고 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학교든 학원이든 회사든 원래 다니던 곳에 다시 갈 힘이 생기고 그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힘들었어도 금요일 저녁부터는 쉴 수 있으니 주중에 5일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기를 잘 돌봤다고 해서 주말에는 아기를 돌보지 않고 쉬거나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아기를 대신 맡아 돌봐주지 않는 한 육아를 전담하던 사람에게 쉬는 날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다. 휴가라는 이름으로 가족 여행을 가도 그것은 지친 내 심신을 쉬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없다. 휴가지에서 나 쉬자고 애를 돌보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러 가지 연유로 사람들이 아기 돌보느라 고생이 많고 하도 수고한다고 하길래 난 그 사람들이 언젠가는 용돈이라도 쥐어주며 아기는 우리가 돌볼 테니 어디 가서 며칠 쉬고 오라고 할 줄 알았다.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라 자꾸 고생하고 수고한다고 하니까 그런 말들을 괜히 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내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나서서 부탁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런 얘기를 해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아기가 아직 어려서 그렇지 좀 만 더 크면 알아서 그런 기회를 챙겨 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만 더 크면’ 이란 시기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는 갓난 아기라서, 모유를 먹어야 해서, 낯을 가리기 때문에, 엄마와의 애착 형성이 아직 덜 되어서, 초등학교에 적응해야 해서, 중학교에 적응해야 해서, 고등학교에 적응해야 해서, 입시 준비해야 해서, 취업 준비해야 해서, 결혼해야 해서… 엄마가 없어도 될 정도로 자식이 ‘조금 더 큰 시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이를 출산한 이후 계속해서 아이 곁에 머물러야만 한다는 것일까? 엄마가 된 이상 나로서의 인생은 이제 그만 생각하고 엄마의 모습만으로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자식과 가족에게 양보하며 제대로 쉬는 날도 없이 그렇게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단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빠도 똑같다. 자식들도 그렇다. 가족 구성원 모두 서로에게 적당히 양보하고 타협하며 서로의 휴식에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들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들이 곁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 중 누군가가 곁에 없을 때 그 빈 자리를 남은 가족들이 채워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그래서 혼자 쉬어 보기로 결정했다. 1500일을 꼬박 쉬는 날 없이 일한 것 아니겠냐며 스스로에게 놀러 갈 만하다고 부추겼다.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가족 모두에게 동의도 얻었다. 나 없이 잘 지낼 수 있을는지 딸 아이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그래도 가기로 했다. 출산 전에 다니던 회사는 근무 년 수가 1년 늘어날 때마다 쓸 수 있는 휴가가 1주일 씩 늘어났었다. 내가 만약 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나는 올해 한 달도 넘는 휴가를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회사에서도 일하느라 수고했다며 주는 것이 휴가임을 감안했을 때, 가족들도 언젠가는 이런 나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마음이 전혀 가볍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보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나의 안식월은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