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일명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아니, 어쩌면 ‘자유롭고 싶어하는 영혼’이란 표현이 더 적합한지도 모르겠다. 딱 잘라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말하기엔 생각이 너무 많고, 나에게도 남들이 갖고 있는 만큼의 책임감 정도는 있기 때문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진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기 보단 자유롭고 싶어하는 사람에 더 가깝다. 나아가 그 표현이 다소 식상할 수 있지만 나는 ‘몽상가’이기도 하다.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뜻은 아니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결과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몽상가의 기질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꼼꼼하게 파악하는 것과는 별개로 ‘결국엔 다 잘 될 거야.’ 라고 생각하는 편이기에 부정적인 생각으로 결정을 주저하거나 계획을 포기하진 않는다. 비록 모든 시도가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아닐지라도 그 시도들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므로 앞으로도 계속 이 자세로 삶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학창 시절에도, 회사를 다닐 때도, 연애를 할 때도 나는 자유롭게 생각했고 행동했다. 결혼과 출산이란 경험을 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자유롭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긍정적이고 자유로운 성향이 특별히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거나 버려야 할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출산 후 현격하게 늘어난 책임감으로 인해 전처럼 매사를 긍정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게 되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출산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결혼과 임신 그리고 출산과 육아는 한 사람의 인생에 엄청나게 큰 사건들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내 본래의 모습이 바뀌어야 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태어난 아기도 물론 너무나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라는 존재도 여전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일련의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그 전까지의 가치관이나 생각 등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들 얘기하는 걸까?
사람들은 흔히 애를 낳으면 철이 든다고 말한다. 어떻게 되는 것이 철이 든다는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말이 ‘부모가 되었으니 자식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누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가 되었어도 현실적으로 24시간을 부모의 모습으로만 살아갈 순 없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마주한 세상에서는 내가 엄마 혹은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기를 강요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 내게 이런 말을 직접적으로 한 사람은 없으니 이것은 나 혼자만의 오해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만들어진 어떤 이미지에 스스로 갇혀 나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원인이 무엇이든 원래부터 갖고 있던 모습에 ‘엄마’라는 타이틀이 하나 더 추가된 것뿐인데, 이 새로운 타이틀의 색이 너무 진해 나의 다른 모습들이 모두 지워지는 느낌이 든다.
오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부연 설명을 덧붙이자면 나는 내가 엄마가 된 사실 자체에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날 엄마로 만들어준 내 딸의 존재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 나는 엄마가 된 내 자신이 매우 대견하고 이 상황에 정말 감사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왜 많은 사람들이 자녀가 있는 여성이 하는 행동에 ‘엄마’라는 단어를 이용하여 제약을 가하려는 것인지 그 부분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회사에 다니는 어떤 여성이 일을 잘못 처리하여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엔 그것은 업무와 관련된 일이니 직원으로서의 역량만을 놓고 그녀를 평가할 문제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사람들의 경우 그녀가 결혼을 해서 혹은 자녀가 있어서 그런 문제를 야기시킨 것이라며 직원이 아닌 기혼 여성 혹은 누구의 엄마로 그녀를 판단하려고 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엄마가 된 후 내가 느낀 ‘나를 엄마 혹은 유부녀로만 보는 시선’은 너무도 다양한 형태로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문제는 이런 시선을 나 혼자 느끼는 것이 아니란 것에 있다. 이 사회는 여성이 엄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후부턴 그 사람의 직업이 무엇이고,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잘하는 지에 상관없이 그냥 누구의 엄마만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엄마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과 타인이 나를 엄마로만 보는 것엔 큰 차이가 있다.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해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해야 할 일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일, 그 일 하나일 뿐, 다른 것까지 하려는 것은 나의 욕심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은 내가 엄마가 된 이상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이외의 것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니 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가끔은 그들의 이런 생각이 엄마인 날 서럽게 한다. 마치 내가 모성애가 부족하고 나만 아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서러워만 하며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내 인생을 흘러가게 할 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나를 평가하든 그것은 내가 관여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나는 그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에 따라 인생을 살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