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이쯤 되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엄마들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여자는 과연 누구에게 아이를 맡겨 놓고 떠난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엄마께서는 아직도 일을 하신다. 그래서 엄마에겐 아기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출산 직 후 우리 집으로 와주신다고 했을 때도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내가 괜히 더 미안해져 한달 동안 계신다고 하는 것을 2주만 계셔달라고 부탁했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번 계획을 세우면서도 엄마에게 아기를 돌봐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에게 엄마가 다니던 회사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엄마가 잠시 쉬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엄마가 일을 쉰다고?
나는 당장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기도 전에 “엄마! 그럼 이제 시간 많아 지는 거야?” 라는 철딱서니 없는 말로 내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런 나에게 이미 많이 단련된 엄마라서 그랬을까? 엄마는 이렇게 갑작스러운 나의 전화와 전화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래, 그러지 뭐.” 라는 세상에서 가장 간단 명료한 말로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셨다. 나의 무겁고도 오래된 고민은 그렇게 뜬금없는 순간에 느닷없이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계획에 대해 엄마에게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참 못난 딸이었다. 내가 나의 이야기나 상황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편이긴 하지만, 사실 엄마한테 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엄마에게 마저 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내 생각이 타인의 조언이나 충고에 의해 수정되는 것이 싫어서 그랬던 것인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엄마한테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결혼식을 앞두고 엄마는 내게 이런 얘길 하신 적이 있었다.
“한복 고르러 시어머니랑 같이 가서 섭섭했어. 같이 고르고 싶었는데…”
결혼을 원주에서 했기 때문에 주말마다 원주로 내려가 결혼식 준비를 했었다. 드레스도 그곳에서 맞췄고 사진도 그곳에서 찍었다. 내겐 한복도 같은 개념이었다. 엄마랑 서울에서 따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어머니와 함께 가서 한복을 맞추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 상황이 내심 속상하셨던 모양이다. 시집가는 큰 딸에게 예쁜 한복 한 벌 맞춰 주고 싶으셨는데, 이런 저런 얘기도 없이 알아서 결혼식 준비를 하던 내 모습에 많이 섭섭하셨던 것이다. 나는 결혼식을 하나의 미션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를 대동해가면서 까지 거창하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보통은 엄마나 자매 혹은 친구랑 같이 하는 것이 결혼 준비인데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무슨 업무 보는 사람들처럼 후딱 해치웠었다. 이렇다 저렇다 얘기도 없이 혼자 결혼식을 준비하던 내 모습에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을지. 딸을 키우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렇듯 내가 평소에 엄마에게 살갑지 못했던 딸이었으므로 부탁을 전제로 하는 고민 상담은 더더욱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평소에 전화 한 통 없다가 이번에 결혼하니 결혼식에 와달라고 말하는 뻔뻔한 친구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그런데 사실 엄마에게 딸은 그래도 되는 것이었나 보다. 내가 떠나기 며칠 전 엄마와 나 그리고 순수가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을 때였다.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엄마가 와 계신걸 알게 된 어머니가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 언제나 약간은 어색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때 알게 된 것이다. 엄마에게 딸은 가끔 생각 없는 애처럼 굴어도 된다는 것을. 어머니가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가 원하는 거 해보라고 하고 싶어요. 때 마침 시간도 되고요. 그 동안 내가 별로 해준 것이 없었는데, 참 잘됐어요. 내가 뭔가를 도와줄 수 있게 되어서요. 사돈 어른이 무엇을 걱정하시는지 잘 알지만 엄마 입장에선 그냥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순수도 저와 잘 있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아무렇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엄마가 그 동안 어떤 생각을 하며 날 지켜본 것인지 그 마음이 전해져 가슴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른 엄마와 딸처럼 서로 많은 이야기나 삶의 순간 순간을 공유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하고 싶어하는지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많은 말을 하는 딸이 아니었으니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 길이 없었고, 그로 인해 엄마에게 나의 이야기나 부탁을 더 못하는 딸이 된 것이었는데 사실 엄마는 표현하지 않았을 뿐 내 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 삶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 몇 번 있었는데, 엄마와 나 사이의 결정적 순간은 바로 내가 엄마에게 부탁이란 것을 하게 된 그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제 우리 엄마와 나도 친구 같은 모녀 사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