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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Nov 30. 2018

따스함의 뿌리를 찾아

공주 석장리까지 왔으나

남은 연차휴가를 소진하라는 권고에 시간을 내어 교회 동료가 창업한 공장을 방문했다. 주일마다 함께 모이는 가정이다. 4년 전에 난로 사업을 잠시 접었다가 다시 그 제품을 찾는 고객의 성원에 힘입어 사업을 재개했다. 전기공학을 전공한 그는 불가피하게 중단한 사업을 아쉬워했었다. 공주 석장리에 있는 헬스센터를 개조하여 공장으로 삼았다.


부품들이 어제 도착했다며 조립과정을 보여 주었다. 녹슬지 않도록 도장된 스테인리스 케이스에 열 반사판을 붙이고 나노탄소 전열관을 끼우는 단순한 공정이나 이음새 없이 조립되었다. 한때 유행했던 탱크주의를 보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부품수가 많아지면 기능도 비례하여 높아지지만 신뢰성은 반비례하여 낮아진다. 뛰어난 엔지니어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1차로 천 개를 조립한다는 말에 나는 판매 걱정을 했더니 단순함과 내구성을 선호하는 고객층이 있다고 했다. 온실, 공장, 가게가 주 사용처인데 이들에게 잔 고장이 없고 화초가 마르지 않는 난로로 소문이 났다고 했다. 더구나 올해부터 온실에서 연탄사용이 억제되어 그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고 한다. 주로 벽에 부착되지는 난로이지만 나는 탁자 위에 놓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집으로 오면서 따스함의 과학원리를 생각했다. 니크롬선에 전자가 지나가면 원자핵과 충돌하는 저항 때문에 열이 난다. 학교에서 배운 설명이고 난로를 이해하는데 충분하다. 그러나 이 정도 지식으로 전기난로 제작 공장을 세울 수가 있을까? 제가 남의 기술을 탐내는 듯하여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지만 제법 수준 높은 원리들이 눈에  띄었다.


난로는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꾼다. 에너지가 전환될 때 항상 효율을 따지는데 난로에서 효율은 별 의미가 없다. 엔트로피 개념을 적용하면 열은 가장 흩어진 에너지이고 전기는 가장 집약된 에너지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전환은 에너지가 흩어지는 방향으로 일어나므로 난로의 효율은 항상 100%이다.     


가장 비싼 부품으로 여겨지는 탄소 나노 전열관을 보자. 금강 석장리에 발견된 구석기 숯에서 알 수 있듯이 탄소는 내구성이 강하다.  특히 탄소 나노는 다이아몬드나 흑연 구조를 지니므로 썩지 않는다. 전열관은 켠 상태와 끈 상태를 반복하므로 물질 구조변형이 야기될 수 있지만 탄소 나노 구조는 낮거나 높은 온도에서도 동일한 구조를 지니므로 내구성이 좋다. 다만 켠 상태에서 탄소는 산소와 반응하여 탈 수가 있으므로 진공 유리관에 밀봉해야 한다.

전자가 나노튜브를 통해 흐르면 사람이 다리를 지나갈 때처럼 나노튜브가 흔들린다. 이 진동을 양자역학 표현을 빌리면 포논(phonon)이라고 하며 진동 상태가 잦아들면서 광자(photon)가 나온다. 진동에서 나오는 광자는 적외선이다. 만일 가시광선이 나오면 난로 대신 조명으로 써야 한다.


둥근 반사판에도 흥미로운 과학이 숨어있다. 하나의 전열관이 끼어져 있지만 사진처럼 반사되어 여러 개로 보인다. 올해 수능에서 가장 논란이 된 국어 31번 문제와 유사한 원리이다. 원주 따라 놓인 여러 전열관은 중심에 놓은 하나의 전열관과 동등하다. 어려운 개념이지만 현상학적으로 보면 반사판으로 인해 생성된 적외선이 앞쪽으로만 방출된다. 소비자들이 느끼는 난로의 열효율은 방향성과 관계가 깊다.


탄소 나노 튜브에서 뿜어져 나온 적외선은 공기 중에서 흡수되거나 사람에게 직접 흡수된다. 공기 대부분을 차지하는 질소나 산소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고 오히려 소량인 이산화탄소나 수증기가 적외선을 흡수한다. 이산화탄소를 온실가스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적외선을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질소와 산소와 충돌하여 에너지를 나눠준다. 그러면 방 안의 공기가 골고루 따스하여진다. 


마을에 들어서니 조명이 휘황찬란하다. '어린 의뢰인'을 촬영 중이라고 한다. 방해하지 않으려 멀리에서 사진을 남겼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응답하라 1988'에 나온 이동휘가 주연하는 인간 감동의 영화라고 한다. 전기난로나 영화나 오늘의 흘린 땀들이 내일의 기쁨이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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