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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섭 Feb 24. 2019

38선과 합리화의 에피스테메

뫼비우스 띠로 경계선을 허물자

교회의 수련회에 참석하여 김성수 영화감독의 '용서를 위한 여행'을 보았다. 12명의 기독교인이 서울역에서 도쿄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다쿠멘터리 영화이다. 일본이 침공한 군국주의 도로를 사랑과 용서의 길로 재 포장한다. 신사 참배와 강제징집을 선동했던 일부 한국 지식인의 파렴치한 행위와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는 일부 일본 목사의 반성이 힘든 여정에 녹아 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야스쿠니 신사에 한국인의 위패 6만 명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대동아 전쟁에 참여하고 가미가제 특공대로 참여한 사람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끌려갔다고 하지만 조국의 독립에 저해되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나라면 어떡했을까? 이 사람들에게는 조국의 광복은 조국의 항복이지 않았을까. 연합군에 맞서 싸운 한국민을 생각하면 한국은 오히려 패전국으로 분류되어야 하고, 분할된 38선을 남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듯하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선을 파고들었다. 이 경계선을 나눌 수 있는 자가 권력자라고 했다. 38선도 경계선이며 이를 나눈 권력이 연합군이므로 경계선과 권력을 연계시킨 푸코의 통찰이 번뜩인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의 행동과 의식을 조사했다. 인류는 지식과 이성을 통해 미친 사람을 정상인과 더욱 정교하게 구분시켜왔으며 이 구분 능력을 가진 의사를 또 하나의 권력자라고 말한다.


사람이나 인공지능은 이분적으로 나누는 능력을 가장 먼저 배운다. 세상에서 사물 인식을 위해 필요하다.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고 식용식물과 비식용 식물을 구분한다. 인간은 더 나아가 당을 지으며 자기 그룹과 적대 그룹을 양분한다. 권력을 획득한 그룹은 평균보다 적게 노동하고 평균보다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에서 50% 근처에서 미세하게 승패가 갈리는 이유도 승리를 위해 경계선이 조정되고 회원의 이합집산 일어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권력자들도 끊임없이 경계선을 만들어 내고 줄을 세운다. 무위도식하는 선비를 본받으라고 줄을 세워 나라를 잃고, 잃은 후에는 일본 권력도 하나님이 부여한 권위라며 줄을 세우고, 해방 후에는 사죄하지 않는 일본을 비난하라며 줄을 세우고 있다. 한민족 에피스테메를 교육받지만 조개무덤을 들쳐보면 노예근성 에피스테메가 우글거린다.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을 연구하여 서양 문명에서 광기의 에피스테메를 들추어냈었는데 나는 이 영화에서 한국의 합리화 에피스테메를 보았다.  


하나님은 일흔 번을 일곱 번까지 용서하기를 명령하시고 이는 또한 기독교의 강력한 힘이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이미 일본을 용서했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용서를 했으면 진정한 기독교인이었지만 과학기술로 세계와 경쟁하고 협력할 수 있다고 자신하여 용서했다. 한류로 바둑으로 일본을 극복하듯이 과학기술로 일본을 극복할 수 있으므로 굳이 일본의 사죄를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김성수 감독의 용서라는 영화를 통해 일본보다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를 용서하고 싶었다. 주권 상실과 불평등을 야기했던 권력자를 용서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침략당할 경계선이 아니라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경계선이 그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럴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뫼비우스 띠처럼 안팎이 없는 경계선을 만들어라.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반성의 마지막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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