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Paris
* Angers St. Laud - Paris Montparnasse
앙제도 그랬고 파리도 순전히 공연보러 간 거다. 프랑스 관광지는 프랑스 음악만큼이나 나에겐 큰 매력이 없다. 게다가 루브르니 에펠탑이니 모두 한시간이상 줄을 서야 들어갈 수 있다니 끔찍한 일이다. 보니까 미술관들이 하도 많아서 나중에 그것만 보러 다시 오더라도 이번에는 어디 하나 들어가고싶지 않았다. 이 도시는 이름이 주는 환타지가 너무 큰거 아닌가 싶기도. 분명히 화려한 느낌은 있으니까. 나는 무딘 놈이라 그런가 화려한 것들을 보면 일단 부담스럽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공연을 많이 한다. 자국뮤지션 외에 주변 나라 뮤지션들의 공연도 많다. 특히 월드뮤직 공연은 세계적으로도 많다고 들었다. 내가 소장한 월드뮤직 음반들 중에도 프랑스에서 만든 것이 꽤 된다. 문화수준은 그것을 소비자가 만든다는 것을 매 순간마다 느끼고 있다. 알제리를 식민지로 두었었다고 해서 알제리 음악아 아직도 프랑스에서 소비된다는 것은 개연성이 없다. 그랬다면 영국에서는 전세계 모든 음악이 활개치고 있어야 한다. 그건 프랑스인들만이 가진 문화적 역량인게다.
음악 동호회의 지인이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데 크림슨 공연을 보겠다며 일찌감치 3일치 파리 공연을 잡아놓고 부릉부릉하고 있었다. 나는 계획을 세우다 우연히 딱 맞겠다 싶어서 가서 함께 공연을 봤다. 그는 아무래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비즈니스를 하는지라 나름 세미정장을 하고 나타났는데 알고보니 출장간다하고 도망온 것이라 복장이 그렇단다.
그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아프리카도 중남미도 우리가 다 퉁쳐서 생각하고 있지만 그 안의 복잡도는 매우 다양한 모양이다. 인종 언어 자원 정치상황이 죄 제각각에 아직도 식민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서 복잡도가 극단적으로 높은듯. 한국이나 중국이 그 빡씬 역사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온 것은 역시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충분히 망가질 수도 있었고 아직도 셀프로 망가지고 있는 북한도 있으니까. 신기한건 북한마저도 아프리카보다는 상황이 나을것 같다는거다. 이후 통일 여부와는 관계없이 북한이 독재에서 벗어나 경제개발을 시작하면 분명 그들도 어떻게든 해나갈 것이다. 문화적 역사적 역량이란게있긴 있는거 같다. 음 그런거 다 있어도 줄기차게 꼬이고 있는 아랍도 있구나. 모르겠다. 이래서 역사를 공부하게 되는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 친구와 음악 얘기를 하면서 걸으니 처음 만났는데도 금방 친해진 느낌이었다. 그는 내가 웹상에 모아둔 프로그레시브 록 리뷰들을 열심히 읽으며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그거 모아둔게 15년 전인데 누군가가 읽고있다는게 얼마나 고맙던지. 내가 했던 것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라는게 나에겐 꽤 중요하다. 뭔가 하면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잘 못견딘다. 왜 이런 놈이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가 적은 공연기 http://zetawiki.com/wiki/King_Crimson_%EA%B3%B5%EC%97%B0%EA%B8%B0_2015
그는 학창시절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을 테이프로 선물받아 귀에 안들어오길래 한 열댓번을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In the Flesh?의 첫 기타리프가 마음을 때렸다고. 워낙에 훌륭한 음악을 많이 남긴 밴드니까 다들 각자의 핑플이 있겠으나, 이 친구는 정말 십수년간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고 한다. 다른 밴드였다면 좀 과한데 싶지만 핑플이라면 이해가 된다. 핑플은 나도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밤에 불도 안켜고 Wish You Were Here를 듣고 그랬다. 이미 고전이지만 핑플은 베토벤같은 존재라고 믿고있다, 뭔가를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한다면 그 안에 핑플은 넣고싶다. 바하 베토벤 모차르트까지는 양보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에는 핑크 플로이드가 나오는게 옳다. 진심이다.
어제도 이런 상영회가 있었다. 로저 워터스, 더 월.
http://www.megabox.co.kr/?menuId=specialcontent-concerts&majorCode=02&minorCode=0201 아 로저 워터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다.
공연을 보고 에펠탑이나 구경해볼까 하고 이동했다. 앉아서 뭐 집어먹기는 좀 쌀쌀했지만 맥주한잔 했다. 에펠탑은 뭔가 하체비만이라고 할까 그리 날렵해보이지 않았다. 딱히 실망했다는 건 아니다.
파리 뿐 아니라 앙제, 심지어 스위스 로잔에서도 불어 쓰는 사람은 독어쓰는 사람들보다 상냥했다. 여행자가 헤매는거 같으면 도와줄까 물어보곤 했으며 일단 잘 웃었다. 유독 길에서 다정한 연인들도 많이 보였다. 여자들은 고양이처럼 구는듯 했고 남자들은 느끼하지만 다정해보였다. 프랑스 음악과 영화 심지어 미술까지도 전반적으로 실망시켜 나는 불어권 문화에 평가가 박한데 다정한 사람들때문에 프랑스가 조금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