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졸린거북 Dec 13. 2015

베를린

in Berlin

꿈에서 일하고 싶어서 울었다. 나는 꿈속에서 여행중이었고 길을 가다가 옛날에 뭔가 즐겁게 몰입하면서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밖에서 그걸로 울기는 쪽팔렸는지 꿈에서 운 것일까. 사실 그때라고 마냥 즐겁게 일했던건 아니다. 항상 한정된 자원속에서 더 하고싶은걸 해내지 못하고 끝낸 적이 많았으며 그거 업그레이드 할 인력이 없고 언제나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야 했어 기존에 해둔 것도 곧 노후화하곤 했다. 노후화되는 사이에 경쟁사가 금방 더 좋은 것을 만든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뭔가 죽쒀서 개주는 기분이 들었더랬지. 내가 의미를 두고있는 일에만 몰입하면 되는 상황... 이상적인데 경험에 비춰보면 욕심이다. 되게 소박한 것 같지만 그게 욕심이다. 얼마나 소박해져야 하는 것인가 나는.


베를린에서 머문 기간이 꽤 긴데도 별로 사진도 안찍고, 그리 열심히 다니지도 않았다. 여행 후반이라 그런가보다.


브란덴부르크 문. 별로 안크다.


베를린은 꽤 힙한 도시다. 옛 건물들이 많이 파괴되어 그런가 새로운 건물들이 많은데 하나같이 볼만하다. 그리고 외관이 허름한 가게들도 들어가서 보면 상당히 넓거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어디서나 그렇게 전자음악이 흐른다. 독일 젊은이들이 베를린을 EDM의 수도라 부른다는데 일리있는 느낌이다. 그 전자음악이 촌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한나 아렌트 거리


다른 도시들처럼 베를린의 거리에도 여러가지 명사들이 이름에 붙어있다. 프랑스에서도 들라크르와 거리 생텍쥐페리 거리 심지어 케네디 광장 처칠 거리 등 별별 이름을 다 봤었는데 여기도 칼 마르크스 거리니 한나 아렌트 거리니 뭔가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을 거리명에 딱 붙여놨다. 그런 거리를 지나면서 지하철역에 주기율표 순서대로 이름을 붙인다거나 조선왕조 역대 왕의 이름을 붙여보는 것은 어떤가 하는 망상을 잠깐 했다.

유럽을 오가면서 뭔가 잡생각을 하게되는 요인중 하나는 그들의 문화를 어릴때부터 접해왔기 때문인거 같다. 세계사나 영화, 음악 등에서 지속적으로 그들의 코드와 문화에 대해 알게모르게 들어온 것들이 이곳의 여러 자극들에 의해 랜덤하게 떠오르곤 한다. 나에게 인코딩된 것들을 꺼내는 키워드들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다. 고종석은 우리가 서구문화권에서 살고있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고 말했는데 내 문화적 배경을 보면 나는 분명 유럽인에 가까울 것이다. 

독일 국회의사당 가이드를 해주시던 모 박사님. 독일이 아직도 독수리 문장을 쓰고 있는게 마음에 걸린다.


제국주의의 시대 끝무렵에 식민지 차지할 것이 없던 독일이 무역에 힘쓰거나 채굴권이나 철도부설권을 얻으려고 노력하거나 도굴 혹은 고고학에 힘썼다는 얘길 들었었는데 네페르티티와 페르가몬 신전이 여기 있는줄은 몰랐다. 훔쳐온 양을 보니 영국놈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많이 훔쳐왔더라. 다른건 모르겠고 네페르티티는 걸작이라 할만했다. 시간을 뛰어넘는 완성도와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https://namu.wiki/w/%EB%84%A4%ED%8E%98%EB%A5%B4%ED%8B%B0%ED%8B%B0



베를린 국립미술관은 크기에 비해 상당히 알찬 콜렉션을 보여주었는데 기억나는 이름 몇개만 적어본다. 이중 루카스 크라나흐의 발견은 보쉬나 브뤼겔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옛날 네덜란드 화가들 정신세계는 정말 굉장하다.

장 벨강브 Jean Bellegambe http://www.wga.hu/html_m/b/bellegam/lastjudg.html



이건 그냥 데스메탈 자켓. -_-

페트루스 크리스투스 https://en.wikipedia.org/wiki/Petrus_Christus



이것도 아주 다크다크 하다. -_-a

루카스 크라나흐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ucas_Cranach_(I)_-_Jungbrunnen_-_Gem%C3%A4ldegalerie_Berlin.jpg


동물들 표정이 아주 뻘쭘하고 좋다. -_-

룰란트 사베리 https://ko.wikipedia.org/wiki/%EB%A3%B0%EB%9E%80%ED%8A%B8_%EC%82%AC%EB%B2%A0%EB%A6%AC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베를린 국립 관현악단의 공연이 있었다. 피아노는 마르타 아르헤리치. 

클래식 문외한인 나는 뭐가 좋은건지 잘 모르지만 연주와 공연장의 어울림이 좋았다.




베를린은 분위기가 좋고 파리에 비해 덜 붐빈다는 이유만으로도 나에겐 또 가고싶은 도시가 되었다. 메트로폴리스가 또 가고싶은 도시가 된다는 것은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가본 거대도시들이나 수도들이 대체로 별로였다. 동경도 순전히 음악때문에 가는 것이고 북경은 안가고 싶은 도시 1위다. 런던도 다시 간다면 음악때문에 가는... 뭐 이런 식. 그런데 베를린은 음악이 없어도 또 가고싶을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