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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젠가 Jan 24. 2024

GPA 도형심리검사

어? 맞는 거 같은데?

친구랑 강추위를 뚫고 심리 코칭을 받으러 갔다.

얼마 전, 친구가 동네에 정말 맛있는 커피집을 발견했는데

커피를 마시면 심리 상담을 해주는 곳이라고 했다.

꽤 잘 맞았다고,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한 상담과 코칭이 잘 이뤄져서 자신은 놀랐다고.


나도 그래서 그곳이 궁금했다 

오늘은 영하 7도의 날씨. 부산은 웬만해선 영하로 떨어지지 않지만 오늘은 꽤 매서운 추위였다. 그래도 지금의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코칭을 받을 수 있다니 나가보기로 했다.


에스메랄다 게이샤라는 원두를 핸드 드립해주셨는데 사실 이 커피만 마셔도 충분히 이 추위를 뚫고 나온 보람이 있을 만큼 훌륭했다.

도형 심리 검사는 교육학 공부할 때 상담 심리 파트에서 이름 정도만 외웠던 검사툴이다.

사장님은 심리학과 철학 박사 학위가 있으시고 심리상담과 코칭을 하시며 커피를 파시는 분이셨다.


내 도형을 분석하시고 첫 질문이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게 뭐예요?"였다. 사실 곰곰이 생각했는데 그다지 즐거운 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인생을 그저 평탄하게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지 가슴 뛰고 즐거울게 뭐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사장님은 나의 도형을 보더니 나의 심리는 지금 번 아웃이 와도 한참 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나는 원래 밝고 에너지가 넘치고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라 사람사이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지금은 사람이 싫은 상태라고 분석해 주셨다. 그리고 그냥 너무 남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을 가두지 말고 미친년 널뛰듯 살아가라고 그게 나를 살릴 길이라고 코칭하셨다. 


나중에 집에 와서 검색해 보니 원형은 관계 지향적인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세 개의 원형을 그렸는데 그 원형 세 개를 모두 네모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 그림을 그렸다. 

사실 나는 재밌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놀며 춤추듯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이 할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덤벙거리며 나 좋을 데로, 내 꼴리는 데로 살아야 행복한 사람이고 그래야 숨 쉬며 살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이 이런 나를 그대로 사랑해야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사람이 나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을 혐오한다. 제멋대로 춤추는 사람. 혐오스럽다. 내 남편이 재밌고 관계지향적이고 지 꼴리는 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보니 그런 남편에게 강하게 끌려서 결혼했지만 그의 뒷치닥 거리를 하느라고 너무나 지치고 진이 빨린 상태여서 그렇다. 이상하지, 내가 그런 사람이라 나보다 더한 남편에게 끌렸고 나보다 더한 남편이 이제는 지겹고 버겁다니?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페르소나를 진짜의 자아와는 반대로 만들어 버렸다. 진짜 자아는 미친년 춤추는 사람이고 불같고 엉뚱한 사람인데 , 나는 나를 반듯하고 실수 없고 바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여 하는 상태로 만들었다. 그래서 남편의 모든 실패를 감내하여 주며 내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다짐하며 꾸역꾸역 살아가다 보니 내 그늘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진짜의 나는 엉망이 되어 외롭고 고통스럽고, 나의 의무감만 남은  페르소나는 점점 진짜의 나를 잠식해 버려 허무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내 삶의 이야기를 돌아보고 심리 상담을 하다 보니 또 나도 모르게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받은 고통, 그렇지만 그 관계를 놓지 못하고 가정을 지키고 남편과의 계약과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나의 강박과 함께 남편을 어떻게든 고쳐쓰고 싶다는 욕망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맞다. 사실 요즘 가장 괴로운 건, 남편이 또 나에게 새로운 시작을 해볼 테니 도와 달라고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뻔뻔하고 실망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불쌍하고 애처롭다. 

정말 질리고 지겹지만 벗어나고 싶지 않다.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실패할 수 있고 꺾일 수 있다. 그리고 나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사람에게는 실패를 안아주고 다시 일어날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일어서려 하지 않고 누군가의 힘에 의지해 일어서려 하는 사람은 또 꺾일 수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진리다. 왜냐면 꺾인 무릎을 펼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힘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의미 있는 관계의 사람이 이다지도 약한 사람이라는 것에 실망스럽고 한 번은 사랑 두 번은 의무감 세 번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점으로 참고 감내했지만 이번엔 정말로 괴롭고 힘들다.


진지하게 내가 그린 도형을 분석해 주시고 코칭하는 사장님에게 말했다. 다 맞는 말씀이다. 하지만 이게 나다.  내가 괴롭더라도 내가 갈아 없어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려고 하는 게 나쁜 것이냐? 어리석은 것이냐? 하고 물었다.

물론 나는 정답을 안다. 어리석은 것이다.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변화시키는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원래 그런 사람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스스로를 지옥에 빠트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을 내려놓고 체념해 버리던지 받아들이고 단절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부터 지켜야 한다. 

해답은 하나다. 이 모든 삶의 풍랑을 견디고 남편마저 태우고 갈 수 있도록 거대한 군함이 돼서 파도를 헤쳐나가거나 원래 가벼운 나룻배였던 나에게 타고 있는 남편을 뒤집어 빠트리고 가볍게 가거나.


군함이 되기는 두렵고 태우고 가는 사람을 뒤집어 빠트릴 만큼 가볍지는 못한 나는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이제는 나의 행복과 안녕을 가장 우선에 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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