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5
요즘은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면서, 문장을 쓰는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 소설 문장을 쓰느라고 긴장한 뇌를 이리저리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아무렇게나 쓴다. 하지만 어느 날엔 문득 용기가 사라지고, 그런 날엔 소설도 일기도 쓸 수 없다. 그럴 땐 음악의 도움을 받는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것으로 내 삶을 구한다. 음악 한곡을 여덟 번 열 번 반복해 듣는 것이 어떻게 삶을 구할 수 있기까지 하느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난다. p.19
책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문득 용기가 사라져서 일기를 쓸 수 없었다. 라디오(네이버 NOW, KBS FM CLASSIC 채널... 요즘 라디오 듣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났다고)와 애플뮤직, 유튜브로 혼자서 혹은 가뭄에 콩 나듯 콘서트홀에 가거나 모임에서 함께 음악을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애써 만들어낸 '아름다운' 것으로 버텼다. 그러는 사이, 어영부영 2021년이 지나고 2022년이 되어 버렸다. 나이를 나타내는 숫자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 한국식(!)이라 애써 강조 - 몸과 마음이 거칠대로 거칠어져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다. 새해 계획을 따로 적어보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염두에 두고 지내보려고 한다. 이미 많은 것에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라지만, 아무튼 중요한 시기다.
작년 여름 즈음부터가 혼자 지내는 시간이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시기인 것 같다. 겉으로 징징거리긴 해도 속으로는 대체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긴 해도, 아무 말이라도 떠들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원래도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고. 일주일에 두 번 가는 테니스 레슨 때나, 가끔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때에는 최대한 멀쩡한 사람처럼 보여야 하니까 허튼소리 안 하려고 노력한다. 재미라고는 없지, 물론. 날이 갈수록 내향성이 강해지는 듯하다. 계속 쓸쓸한 기분이다.
내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사는 누군가의 분투를 대가로 치르고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보건의료계 노동자들과 휴업 상태에서도 매월 임대료를 감당해야 하는 자영업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숨 막히는 '말'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이 고요의 성질에 질식이라는 성분이 있다는 걸 아니까, 어디로도 가지 않고 이렇게 유지하는 고요가 그래도, 그래서, 나는 좀 징그럽습니다. p.41
이 책과 함께 작고 가벼운 책 몇 권을 주문했다. 숨 막히는 이 상태를 어떻게든 헤쳐나가 보리라. 매일 읽고 쓰고 공부하겠다는 다짐은 새로 안 한다. 그저 조금씩, 하나씩, 하루씩. 짧고도 긴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