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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시적관점 May 01. 2023

사는 이야기 - 1-1. 응급실 앞에서 ABCD

그렇게라도 힘을 내보자.

 처음 발행한 글에 의거하면 왜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써야 하지만 주말 간 아픈 아이를 병간호한 수발 놈(놀면 뭐 하니 광희 씨가 준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드립. 난 매우 재미있었다.) 생활을 했기에 그리고 지금도 하느라 새벽에 잠 못 자고 있기에 겸사겸사 정리하고자 일기를 쓴다.

 금요일 아침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평소답지 않게  제법 이성적으로 아이에게 이른 기상의 이유를  묻고 혹시 괜찮다면 거실로 나가 놀라고 말했다. 그렇게 거실로 나간 아이가 방으로 들어오길래 잠은 다 잤다 싶은 생각에 속이 뒤집어지려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목이 아파."

아이가 아프면 순식간에 모성애가 들끓는 엄마가 부럽다. 나는 아이가 아프다 할 때 또 힘든 한 주가 되겠구나 한숨부터 나오는  비정하고 이기적인 심성을 가졌다. 그래도 걱정이 안 되는 암담한 수준까지는 아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아이에게 어디가 언제부터 아픈지 담담히 물었다. 오른쪽 목을 스스로 가리켰고 나는 아이의 목을 만져보다 속으로 많이 놀랐다. 림프절 멍울이 느껴지는 것이다.


또? 재발인 건가? 재발인 건가 오 재발인 건가 이야


아이는 진단명은 아니지만 흔히들 말하는 림프관종이라는 병을 앓았었다. 5살에서 6살로 어린이집 반을 이동하는 21년 초의 일이었다. 자고 일어나 잘 노는데 미열이 있었다. 열이 조금 날 뿐 아이는 잘 놀았고 왼쪽 목 부분이 살짝 부어있어 보였는데 검색해 보니 임파선염일 수 있단 말에 병원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병원을 가려고 준비하는 새에 왼쪽 목은 가히 작은 혹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올랐고, 아이를 몇 년 간 봐오신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은 진찰 후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셨다. 집과 그리 멀지 않고 당시에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병원으로 향했다. 해당 병원은 이비인후과와 다른 과가 협진을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중 한 과 교수님이 수술을 하자고 하셨다. 아이 목 피부 일부를 절개하여 림프절에서 발생한 물과 피를 긁어내자고 하셨다. 시간이 제법 흘렀기에 잘 기억도 나지 않고 이렇게 설명하셨던가 자신하기 어렵지만 요지는 '째고 환부를 긁어내자'였다. 아이 목에 큰 상처가 날 거고 흉터도 평생 갈 거다, 하지만 깨끗하게 제거될 거다라고 하셨다.  다른 과에서는 다른 치료법을 얘기하셨던 것 같지만 기억이 안 난다. 결정을 해야 했던 그 순간이 살아오면서 느꼈던 시간의 길이 중 가장 길게 느껴졌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차에 친언니가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본 결과 삼성서울병원의 소아외과 서정민 교수님께서 해당 부분에 조예가 깊으시다고 일러주어 급하게 외래진료를 잡았다. 교수님은 아이 목을 찍은 뭐라고 하니.. 시티 또는 mri일지 모를 사진을 보시며 아주 가볍고 명쾌하게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그 방법은 환부에 주사기를 사용하여 환부를 딱딱하게 굳히고 축소시키는 교수님 말씀으로는 아주 간단한 시술 정도였다. 무서워하지 않으면 초등학생 때도 수면마취 없이 가능한 수준이라는 말씀은 내가 느끼기에 해당 영역에 대한 교수님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던 한편 아이가 평생 흉터를 가지고 살아가게 될까 봐 걱정했던 내 마음을 적잖이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교수님과 몇 번의 만남을 갖고 환부에서 피나 액체(?)가 좀 더 빠져 시술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하신 후에 날짜를 잡아 시술을 하게 되었다. 수술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시술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장소는 수술실이었다. 비슷한 또는 다른 질환으로 일찍부터 고생하신 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대다수의 건강한 아이가 겪지 않을 일을 우리 아이는 너무도 어린 6살에 겪는다는 생각에 애통하고 가슴이 미어졌었다. 어림짐작으로 수술실에 나도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지만 병원 지식이 전무한 나의 무식한 희망이었고 아이는 의료진들과 함께 수술실에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평소 울고 떼쓰는 아이가 아니었지만 아이를 진정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생각나는 건 단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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