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고 감사한
당일치기로 왕복 열 시간 운전이지만 가기로 했다. 투표권도 없는 남편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줘서 가능했다. 1년 전, 남편은 한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당연히 투표해야지!
그때까지만 해도 투표하려면 영사관이 있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야 하는 줄 알았다. 콜로라도 우리 집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차로 16시간 걸린다. 그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자고 했던 남편이다. 다행히 이번 선거부터 콜로라도 주도인 덴버에도 투표소가 생겼다. 집에서 왕복 열 시간이면 된다. 생각보다 조건이 훨씬 좋아졌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구불구불한 협곡 두 개와 산 하나 정도 넘으면 덴버에 닿는다. 그렇다 해도 여긴 로키산맥 중턱. 동쪽으로 갈수록 바깥 기온은 떨어져 영하 14도까지 찍었다. 그런데 차 계기판 온도는 화씨로 표시된다. 화씨 6~10도 정도를 오가는 숫자를 확인하고, 그걸 섭씨로 따지면 영하 10도 아래라는 짐작을 하긴 했는데, 미처 그 생각이 도로 사정까지 닿진 않았다. 남편과 교대해 내가 운전대를 잡은 지 한 시간쯤 지나 사고가 났다.
좁은 내리막길, 게다가 왼쪽으로 굽은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차가 미끄러졌다. 차체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갓길로 빠지는 걸 바로잡았는데, 핸들을 지나치게 꺾었던 탓에 다시 왼쪽으로 크게 돌았다. 차 뒤쪽이 중앙 가드레일과 부딪치는 동시에 왼쪽 에어백이 터지면서 내 머리를 받았다.
그 구간 제한속도는 시속 100킬로. 웬만한 차량은 제한속도를 웃돌아 내달리고 있었다. 사고 직후 백미러나 사이드미러를 보고 뒤따라오는 차량을 확인할 정신이 내게 있었을까? 산악지대와 빙판길 운전에 문외한 나일지라도 2차 사고 위험은 직감할 수 있었다. 충돌 덕분에 속도가 준 차를 다시 미끄러지지 않길 바라면서 좁은 갓길에 댔다. 곧바로 뒤에 따라오던 차 한 대가 우리 앞쪽에 차를 대었고, 뒤따라오던 견인차도 그 앞에 섰다. 갓길이 워낙 좁아서 운전석은 2차선에 맞닿아 있었다. 현장을 지나는 차량이 매우 많았고 속도도 빨랐기에 2차 사고 위험은 여전히 있었다.
나는 운전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충돌에 이어 에어백이 가동했다는 사실, 그 정도의 사고를 내가 냈다는 사실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내가 괜찮은지 확인한 뒤 바로 밖으로 나가 차체를 살폈다. 견인차 운전자가 다가와 남편과 말을 나눴다. 보험사에 바로 연락하라는 견인차 운전자 말이 들렸다. 뒤 범퍼를 한두 번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견인차 운전자가 범퍼를 제자리에 끼워줬다고 했다. 남편은 앞문을 열고 나에게 말했다.
안전할 때 나와서 조수석으로 자리를 바꿔 앉아.
지나는 차량이 꽤 많기도 했지만, 사고 규모를 확인하기 두려웠기에 나는 차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다. 운전석에서 다리를 들어 조수석으로 옮겼다. 곧 남편이 차에 타서 나에게 전화번호를 넘겨주고, 차를 몰았다. 나는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직원과 통화가 되길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근처 마을 주유소에 차를 세웠다. 남편은 차 안팎을 확인하고, 시야를 가리는 에어백을 잘라냈다. 뒤 범퍼가 어긋나고 트렁크가 열리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 헤드라이트와 깜빡이도 제대로 작동했다.
우리는 계획대로 덴버에 가서 투표하고 한국 슈퍼마켓에서 배추와 무를 사서 다시 살벌한 길을 되짚어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고 고양이를 본 순간 깨달았다. 내 방심으로 사랑하는 이들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걸. 남편에게 그런 경험을 겪게 해서 너무 미안했다.
남편은 말했다.
사고일 뿐이야.
망가진 건 차일 뿐이야.
2차 사고가 없었던 게 천운이야.
뒤따라오는 차량이 적었다는 건 정말 천운이었다. 그래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의 사고를 냈다는 사실, 사고를 막거나 충돌을 최소화 못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오래전 빙판길에서 브레이크를 꽉 밟으면 안 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게 꽤 강렬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인지 차가 미끄러질 때 바로 브레이크를 밟길 망설였다. 그래서 사고 순간 속도를 빨리 줄이지 못했다. 솔직히 그 기사를 보면서 내게 생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읽거나 적절한 대처법을 머릿속에 남기지 않았다.
사고 날 밤 침대에 누워 빙판길 운전 시 대처법을 찾아보았다.
브레이크를 세게 꾹 밟으면 안 되고, 톡톡톡 짧게 나누어 밟아야 한다.
차량이 미끄러져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때, 바퀴 방향을 바꾸려고 핸들을 너무 많이 돌리면 절대 안 된다.
또 비슷한 일이 생긴다면, 좀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길 바라며 사고 장면을 되새긴다. 그때마다 괴롭다. 그리고 지금 여기 우리가 일상을 살고 있다는 데 지독히 감사하다.
기분 전환 나들이 정도로 생각했던 하루 여행은 꽤 큰 값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투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지난 십여 년, 한국보다 외국에 더 오래 살았지만 대선 때마다 우연히 한국에 있었기에 투표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우리 동네 동사무소 투표소가 새삼스럽다. 걸어서 삼 분이면 닿는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지, 투표하려면 집을 나서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젠 열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다. 부끄럽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투표권의 감사함을 느낀다. 금수저는 아니지만 투표권만은 남들과 동등하게 손에 쥐고 태어났다. 그 권한을 행사함으로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정치란 돈을 적절히 배분해 더 많은 사람의 삶을 편안함에 이르게 하는 일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쥔 한 표를 휴짓조각 버리듯이 포기하지 않는 게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 무리일 수 있는 여행을 강행하면서라도 꼭 투표하고 싶었던 이유에는 후보의 몫이 컸다. 지금껏 인상과 느낌에 기대어 투표를 했던 내게 이번 선거는 달랐다.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공부하면서 차곡차곡 능력을 쌓아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여전히 배움에 열정적이면서 꿋꿋하게 걷는 후보자. 그를 지지한다.
그가 당선된 뒤 내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그도 사람이니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예상을 덜 빗나가고, 덜 실수할 것 같은 그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차선이 아니라 최상이다. 이렇게 기쁘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보에게 감사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용기 있는 언론인, 제대로 일 하는 정치인, 정직한 전문가, 의식 있는 시민들이 있으니까. 그들 덕분에 나는 투표권을 감사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덴버 시내 한 건물의 작은 사무실에서 행사한 내 투표권은 하나였다. 하지만 언젠가 한국에 살 남편과 반씩 나눠 갖기로 했다. 이번에 우리 둘이 행사한 한 표가 두 배의 효과를 발휘하길.
장거리 여행에 사고까지 있었지만 쉴 수 없었다. 배추 25킬로와 무 35킬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3일 동안 김치 네 종류를 담갔다. 4월에 열릴 올해 첫 직거래장터를 위해서 병 200여 개에 나눠 담고 발효 중이다. 무를 씻고 당근을 썰고 병을 소독하면서 지난 주말을 되돌아본다.
몸서리치게 무섭고, 지금 존재함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