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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열 Apr 14. 2018

일단 뛰어!

중국 홍콩


홍콩 딤섬 레스토랑


 호주에서 사귄 친구 매기 덕분에 2박3일 신세를 많이 졌다. 홍콩 여행의 마지막 날, 매기는 소문난 딤섬 레스토랑으로 날 데려갔다. 고마움과 아쉬움이 뒤섞인 작별인사를 나눴다. 비행기 시각이 가까워오는 걸 깜박한채 대화가 길어졌다. 결국 출국 두 시간 전에 부랴부랴 공항버스를 타게 됐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공항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도 넘게 걸릴거라고 말했다. 즉, 공항에 도착하면 출발 시각까지 한 시간도 채 남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태국 방콕으로 가는 국제선이라 체크인 카운터가 더 일찍 마감될 터이니, 아주 운이 좋아야만 아슬아슬하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초조했다. 버스 2층 맨 앞 자리에 앉았다. 버스가 최선을 다해 서두르는지 감시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괜히 2층에 앉았나보다. 눈 앞에 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차량의 행렬이 일반 차량을 탔을때 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보였다. 답답했다. 왜 굳이 이 낮시간에 차를 끌고 나와 길을 막히게 하는건지, 얼굴도 모르는 운전자들이 얄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신호등이 파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뀔 때 서둘러 지나가지 않고 굳이 정지선 앞에 멈추는 버스기사가 원망스러웠다. 호기롭게 출발한 장기 여행, 홍콩이 그 시작일 뿐인데 난 왜 벌써부터 이런 상황을 만든걸까. 나 자신을 채찍질하기도 했다.


홍콩의 2층 버스 맨 앞자리


 가만 앉아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을 순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발생할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상황별로 어떻게 대처할지 계획을 세워보기로 했다. 첫번째로 해야할 행동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앞뒤 잴것 없이 체크인 카운터로 뛰는거였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이어서 여러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홍콩 공항이 제법 클텐데, 체크인 카운터까지 거리가 너무 멀면 어떡하지?’

‘배낭이 두개라 몸이 무거운데 잘 뛸 수 있을까?’

‘체크인 카운터를 제대로 못 찾으면 어떡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체크인이 마감되어 비행기를 놓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이 상황 또한 사전에 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운터 직원에게 막무가내로 졸라봐야겠다.’

‘안된다고 하면 캐세이퍼시픽 사무소로 찾아가서 항공편 일자를 바꿔달라고 해야지.’  

‘내 실수로 놓친 항공편이니 일정 변경이 불가능하면 어쩌지?’

‘그럼 방콕까지 가는 항공권을 따로 사야겠다.’  

‘여기 항공사 오피스는 어디있지? 아니면 호주 콴타스항공에 전화를 해봐야하나?’

‘전화영어 하려니 또 부담스럽네.’  

‘잠깐만, 이번 비행기를 놓치면 세계일주 티켓 전체 일정이 취소되는거 아냐? 여행자 카페에서 비슷한 경험담을 읽은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집으로 가야겠지? 여행간다며 용돈도 응원도 잔뜩 받았고 환송회도 여러차례 했는데, 바로 돌아가면 당장 부모님께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역시 그냥 돌아갈 순 없어. 남은 여행자금을 털어서 아시아만이라도 여행하고 돌아가야겠다.’

‘남은 자금으로 아시아 어디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이런 식으로 하나의 걱정 끝에 몇 개의 꼬리가 붙었다. 각 꼬리의 끝에 또다시 수십 개의 꼬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무한대에 가깝게 확산하는 경우의 수를 정리하다보니 버스에 앉아있던 한 시간이 눈 깜박할 새에 지났다.



 버스는 탑승한지 정확히 한 시간 뒤에 공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배낭 2개를 앞뒤로 메고 어딘지도 모르는 카운터를 찾아 이를 악물고 전력질주했다. 천만다행으로 체크인 마감은 비행시각 40분 전이었다. 태국이 홍콩과 가까운 덕택이었다. 아슬아슬하기는 커녕 10분이나 여유있게 체크인을 마치고 아무렇지 않게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허탈했다. 마치 김 빠진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이었다. 잔뜩 상상했던 곤란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것에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위기의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한다는 건 그만큼 신중한거라, 즉각 행동하는 사람보단 더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그 걱정의 실체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상상 속 존재, 그것 뿐이었다. 그 걱정이란 녀석은 가만히 놔두면 끝없이 자가분열했다. 그 결과는 스스로 만들어 낸 가상 세계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이는 것이었다. 당장 눈 앞의 현실을 보고 뭐라도 해야 함에도 걱정에 붙들려 한 걸음도 떼지 못한다. 그렇게 상황은 상황대로, 감정은 감정대로 망가진 채 이렇게 투덜거리곤 했다.

'거 봐. 내 걱정이 맞았지?'



홍콩 빅 부다 (Big Buddah)


 10년이 지났고 내 생각도 바뀌었다. 그 때의 걱정, 수많은 시나리오, 그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홍콩에서 비행기를 놓칠뻔했던 그 상황에선 첫번째로 정한 대안대로 무작정 뛰는 게 정답이었다. 만약 비행기를 놓쳤다고 하더라도 그 때 가서 다시 방법을 찾아볼 시간은 충분했다. 버스안에서 혼자 세상 모든 고뇌를 머리에 구겨넣은 듯한 표정을 짓고 세계여행을 포기하는 시나리오까지 쓰며 좌절하기 보단, 하다못해 홍콩 여행기라도 더 상세히 적어놨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라도 더 생생하게 적을 수 있었을텐데.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방안에 집중하고 그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그게 잘 풀리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생각해 둔 방안을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직접 움직이면서 상황을 능동적으로 바꿔가다보면, 그 변화에서 새로운 힌트를 얻기도 하고 또다른 동기가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인 라이프코칭 또한 ‘실행’을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라고 얘기한다. 고객이 원하는 일을 어떤 동기를 가지고,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화를 나눈다. 고객은 생각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며 작은 실마리부터 풀어나가고, 걱정이라는 뿌연 안개를 차차 지워나간다. 그렇게 자신감이 차오르는 고객을 독려하며 나 또한 깊은 보람을 느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더 이상 나의 미래를 좀먹게 두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뿌듯한 성취를 한, 이를테면 세계여행 같은 경험은 모두 무작정 저질렀을 때 나왔다는 걸 다시금 되새겨본다. 이제는 걱정이 많아 고민인 누군가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네 생각을 믿고 먼저 저질러 봐.
걱정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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