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작은 시골 역
로마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열차로 이동하는 길, 맞은 편에 앉은 성격 좋은 (하지만 2002년 월드컵 한국 대 이탈리아 16강 전의 결과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이탈리아 친구와 쉴새없이 떠들었다. 친구가 열차에서 내린 뒤에는 노트북으로 여행기를 정리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제출시한이 두 달 전이었던 태국 워크캠프 봉사활동 보고서를 썼다. 너무 배고픈데다가 기차인데도 멀미가 와서 두어차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거리상 하루만에 바르셀로나 가는 건 어려워 프랑스 남부 니스에 들러 하룻밤 잘 계획이었다. 니스에 가려면 한 이탈리아의 시골 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유럽 기차가 으레 그렇듯 15분이나 연착되면서 갈아타야 할 니스행 기차를 놓쳐버렸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15분, 다음 기차는 새벽 4시 54분에 있다. 이 시골역에서 꼼짝 없이 밤을 보내야 할 판이다.
우려했던대로 시골 작은 역 주변에서 한밤 중에 쉴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1번 플랫폼에 있는 차디찬 대리석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유럽의 12월은 무척 추웠다. 언제부터인가 중동계로 보이는 남자 셋이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주위를 얼쩡대고 있었다. 다시 역사 안 매표소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운데 밖에 오래 있었더니 감기기운에 몸이 으스스했다. 잠도 깰겸 잠깐 역 바깥쪽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오는데, 벌벌 떨다가 커피 반을 손에 쏟고는 실없이 웃기도 했다.
그리 넓지 않은 역사 안에는 각지에서 온 나와 비슷한 신세인 여행객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노숙자처럼 구석에서 쪼그리고 자는 두 일본 남자와 동네 노숙자도 있었다. 껄렁껄렁한 친구들도 두세 무리 보이는데 방심하다가는 그들에게 몽땅 털릴 것만 같은 불편한 분위기다. 나도 이럴 때 의지할 동행이 있다면 침낭 깔고 앉아있기라도 할텐데, 이럴 때는 혼자 여행하는게 참 외롭다. 누군가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역 구석에서 두 발로 꿋꿋이 서서 버티고 또 버텼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기도 하고, MP3 플레이어에 담긴 동영상이나 여행 책자를 꼼꼼이 읽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역 구석구석을 뱅뱅 돌아다니기도 했다. 시간이 무한히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시간이 가기는 간다. 남은 시간이 60분, 30분, 15분, 5분으로 꾸역꾸역 줄어드는 걸 보며 이 외롭고 지루한 싸움도 끝이겠거니 싶었다. 이런 고통스런 상황도 먼 훗날엔 좋은 추억거리 쯤으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도 잠시, 내가 탈 기차는 주황색 전광판에 몇 분 연착예정이라고 나오다가 돌연 Soppresso 라는 표시로 바뀌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했다. 혼란한 상황을 틈타 세 명의 낯선 남자가 내 배낭 자물쇠가 좋아보인다며 말을 걸어온다.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 하나를 주고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탈 기차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기차들도 하나 둘 그 옆에 Soppresso 라는 표시가 뜨더니 곧 통째로 사라졌다.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되고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정보가 될만한게 있을까 싶어 다시 역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앉지도 못하고 잔뜩 경계하면서 밤을 샌지라 신경이 무척 날카로운 상태였고, 추위와 배고픔까지 더해져 점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혼잣말로 끊임없이 욕을 내뱉는 지경에 이렀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만큼은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성을 잃은지 오래다. 아침 6시 반 쯤 해가 떴고, 매표소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나와 같은 신세로 보이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달라붙어 무지막지 소리를 질러댔다. 얼핏 듣기론 이탈리아 철도청 직원들의 파업이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의 아우성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파리로 가는 상행 몇 편을 제외한 모든 열차는 여전히 줄줄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전광판에 나온 아침 8시55분 열차를 보며, 이 열차마저 취소되면 바르셀로나를 포기하고 그대로 밀라노나 파리로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혹시나는 역시나, 몇 시간 뒤 내 마지막 희망이었던 기차마저 Soppresso 로 바뀌었다. 괴성을 지르며 파리행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없어졌던 기차가 다시 전광판에 나타났다. 플랫폼이 바뀌었고, 25분 연착된다고 나와있었다.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모든 경계심과 긴장을 그제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눈을 반쯤 뜨고 크로와상 두 개를 와구와구 입에 넣은 뒤 기차에 올랐다. 아침 9시 20분, 딱 12시간만이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땅 아래로 몇 미터쯤 푸욱 꺼지면서 그대로 땅에 파묻힐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50분 뒤에 내려야했기에 한 번 더 버텨야 했다. 이건 또 다른 고문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이 끔찍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씩씩대다가 턱을 따라 흐르는 침에 화들짝 놀라며 잠을 깼다. 다행히 니스를 지나치지는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 써진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라는 내 무의식의 타이핑을 보며 멋쩍게 웃다가, 창 바깥에 펼쳐진 지중해 해안과 그 옆에 붙어 공생하고 있는 마을의 조화로움에 입이 쩍 벌어졌다. 금세 지난 12시간의 사투가 잊혀지면서 다음 스페인 여정에 대한 설렘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여행 중에 얻는 생각지도 못한 교훈은 이렇듯 찰나에 찾아오곤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 두고, 앞으로 찾아올 좋은 일을 기대하는 것, 결국 이런 과정의 반복이 삶이라는 생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