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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열 Feb 22. 2019

춥고 배고프고 졸려도

이탈리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작은 시골 역


로마에서 바르셀로나까지 열차로 이동하는 길, 맞은 편에 앉은 성격 좋은 (하지만 2002년 월드컵 한국 대 이탈리아 16강 전의 결과에 크나큰 상처를 받은) 이탈리아 친구와 쉴새없이 떠들었다. 친구가 열차에서 내린 뒤에는 노트북으로 여행기를 정리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아 제출시한이 두 달 전이었던 태국 워크캠프 봉사활동 보고서를 썼다. 너무 배고픈데다가 기차인데도 멀미가 와서 두어차례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다.


거리상 하루만에 바르셀로나 가는 건 어려워 프랑스 남부 니스에 들러 하룻밤 잘 계획이었다. 니스에 가려면 한 이탈리아의 시골 역에서 환승을 해야 했는데, 유럽 기차가 으레 그렇듯 15분이나 연착되면서 갈아타야 할 니스행 기차를 놓쳐버렸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15분, 다음 기차는 새벽 4시 54분에 있다. 이 시골역에서 꼼짝 없이 밤을 보내야 할 판이다.


불꺼진 역 앞


우려했던대로 시골 작은 역 주변에서 한밤 중에 쉴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1번 플랫폼에 있는 차디찬 대리석 벤치에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유럽의 12월은 무척 추웠다. 언제부터인가 중동계로 보이는 남자 셋이 내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주위를 얼쩡대고 있었다. 다시 역사 안 매표소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추운데 밖에 오래 있었더니 감기기운에 몸이 으스스했다. 잠도 깰겸 잠깐 역 바깥쪽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오는데, 벌벌 떨다가 커피 반을 손에 쏟고는 실없이 웃기도 했다.


벌벌 떨다 다 쏟아버린 자판기 커피


그리 넓지 않은 역사 안에는 각지에서 온 나와 비슷한 신세인 여행객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노숙자처럼 구석에서 쪼그리고 자는 두 일본 남자와 동네 노숙자도 있었다. 껄렁껄렁한 친구들도 두세 무리 보이는데 방심하다가는 그들에게 몽땅 털릴 것만 같은 불편한 분위기다. 나도 이럴 때 의지할 동행이 있다면 침낭 깔고 앉아있기라도 할텐데, 이럴 때는 혼자 여행하는게 참 외롭다. 누군가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역 구석에서 두 발로 꿋꿋이 서서 버티고 또 버텼다.


한참 생각에 잠겨있기도 하고, MP3 플레이어에 담긴 동영상이나 여행 책자를 꼼꼼이 읽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했다. 역 구석구석을 뱅뱅 돌아다니기도 했다. 시간이 무한히 느리게 흐르는 것 같지만 시간이 가기는 간다. 남은 시간이 60분, 30분, 15분, 5분으로 꾸역꾸역 줄어드는 걸 보며 이 외롭고 지루한 싸움도 끝이겠거니 싶었다. 이런 고통스런 상황도 먼 훗날엔 좋은 추억거리 쯤으로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좁은 역 내부와 불 꺼진 매표소


희망도 잠시, 내가 탈 기차는 주황색 전광판에 몇 분 연착예정이라고 나오다가 돌연 Soppresso 라는 표시로 바뀌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불길했다. 혼란한 상황을 틈타 세 명의 낯선 남자가 내 배낭 자물쇠가 좋아보인다며 말을 걸어온다. 가방에 달린 열쇠고리 하나를 주고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탈 기차 뿐만 아니라 그 다음 기차들도 하나 둘 그 옆에 Soppresso 라는 표시가 뜨더니 곧 통째로 사라졌다.


상황파악도 제대로 안되고 대책을 세워야 했기에 정보가 될만한게 있을까 싶어 다시 역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앉지도 못하고 잔뜩 경계하면서 밤을 샌지라 신경이 무척 날카로운 상태였고, 추위와 배고픔까지 더해져 점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혼잣말로 끊임없이 욕을 내뱉는 지경에 이렀다.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 만큼은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성을 잃은지 오래다. 아침 6시 반 쯤 해가 떴고, 매표소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나와 같은 신세로 보이는 수십명의 사람들이 매표소 앞에 달라붙어 무지막지 소리를 질러댔다. 얼핏 듣기론 이탈리아 철도청 직원들의 파업이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의 아우성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파리로 가는 상행 몇 편을 제외한 모든 열차는 여전히 줄줄이 잘려나가고 있었다. 전광판에 나온 아침 8시55분 열차를 보며, 이 열차마저 취소되면 바르셀로나를 포기하고 그대로 밀라노나 파리로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혹시나는 역시나, 몇 시간 뒤 내 마지막 희망이었던 기차마저 Soppresso 로 바뀌었다. 괴성을 지르며 파리행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없어졌던 기차가 다시 전광판에 나타났다. 플랫폼이 바뀌었고, 25분 연착된다고 나와있었다.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지만, 모든 경계심과 긴장을 그제서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눈을 반쯤 뜨고 크로와상 두 개를 와구와구 입에 넣은 뒤 기차에 올랐다. 아침 9시 20분, 딱 12시간만이었다. 좌석에 앉자마자 땅 아래로 몇 미터쯤 푸욱 꺼지면서 그대로 땅에 파묻힐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50분 뒤에 내려야했기에 한 번 더 버텨야 했다. 이건 또 다른 고문이었다. 노트북을 꺼내 이 끔찍한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며 씩씩대다가 턱을 따라 흐르는 침에 화들짝 놀라며 잠을 깼다. 다행히 니스를 지나치지는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 써진 '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라는 내 무의식의 타이핑을 보며 멋쩍게 웃다가, 창 바깥에 펼쳐진 지중해 해안과 그 옆에 붙어 공생하고 있는 마을의 조화로움에 입이 쩍 벌어졌다. 금세 지난 12시간의 사투가 잊혀지면서 다음 스페인 여정에 대한 설렘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여행 중에 얻는 생각지도 못한 교훈은 이렇듯 찰나에 찾아오곤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놓아 두고, 앞으로 찾아올 좋은 일을 기대하는 것, 결국 이런 과정의 반복이 삶이라는 생각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기차에서 본 해안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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