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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 Feb 10. 2020

방탄소년단, 아니 빅히트가 제발 예술을 했으면 좋겠다.

CONNECT, BTS는  '예술 협업'이 아니다.

지난주 금요일 신문에 방탄소년단의 CONNECT, BTS에 관한 기사를 썼다. '야심찬 BTS 예술 프로젝트, 협업인가 후원인가'라는 제목을 한 기사였다. 골자는 방탄소년단 혹은 빅히트가 해외 예술 전시를 '후원'해놓고 '협업'이라고 포장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이 기사를 쓴 것은 막대한 돈을 들여 예술의 이미지만 손쉽게 구매하려는 근시안적인 태도에 대한 회의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마치 방패처럼 앞세워진 방탄소년단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예술에 관한 편견만 더욱 강화한다.


기사가 나가고 오늘 아침 아이즈에서 '방탄소년단은 예술 하면 안되나요?'라는 기사가 나왔다. 글을 읽고 이건 도저히 아니다 싶어 블로그에 글을 적는다.




서울 DDP 전시장 입구


"제발 이런 무의미한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런던에서 활동하는 미술사가)

"국내에서 예술적이란 이미지를 얻으려고 해외 미술계에 이미 아쉬울 게 없는 작가나 기획자를 후원할 필요가 있느냐. 비효율적이다."(유럽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기사를 쓰기 전 여러 미술관계자로부터 CONNECT, BTS에 관한 혹평을 들었다. 일부 매체들은 '세계적 협업'이라는 보도자료의 수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쓰기' 했지만,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미지 마케팅 차원의 단순 후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28일 서울 전시가 개막하면서 그 실망감은 더했다.


손안나 에디터, "'페르소나'에 관한 이야기"라고? 그렇지 않은 현대미술 작품을 찾기가 더 어렵다.


'아이즈'에 기고한 손안나 에디터는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 작품을 방탄소년단의 가사와 연결시켰다. 특히 짙은 안개 속을 걸어 다니는 작품의 경험적 측면을 - '페르소나를 지우고 내면의 에고를 강렬하게 인지하는 순간'이라고 연결시켰다.

  아무리 예술에 관한 해석이 자유라지만 이런 식의 연결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특히 그 사람이 '에디터'라는 명함을 달고 공식적으로 예술에 대해 평론을 하는 입장이라면 말이다. 페르소나와 에고에 관한 이야기라면 어떤 작품을 갖다 놔도 연결시킬 수 있다. 특히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화두다. 이 말은 단순히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것만 보여줘서는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시각 언어로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 현대미술가들은 이미 이 문제를 인식하고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작품을 한다.


앤 베로니카 얀센스 '그린, 옐로, 핑크'


  시각언어의 측면에서 보면 베로니카 얀센스의 '그린, 옐로, 핑크'는 또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설치 작품과 너무 유사했다. 손 에디터가 엘리아슨의 리움 전시나 런던 테이트모던 회고전을 봤을지 궁금하다. 또 다른 작품 '로즈'는 제임스 터렐을 연상케 한다.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다른 여러 미술 기자들도 터렐, 엘리아슨을 이야기했다. 게다가 2015년 가디언에서는 같은 작품을 "빛 속에 들어가는 경험은 즐겁지만 엘리아슨이나 터렐에 비하면 뚜렷한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별 두개를 주고 혹평하기도 했다. 미술계의 한 인사도 얀센스의 작품이 취급 갤러리에서 꽤나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곤란했던 작품이라고 귀띔했다. 슬프지만, 한국 관객들이 미술을 잘 모른다고 가정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Olafur Eliasson’s Your blind passenger


한푼 아쉬운 세계 미술계..."방탄 몰라도 후원은 환영"


지난달 서울 기자간담회에서 '구체적 협업 과정을 알려달라'는 질문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왜냐면 아무리 봐도 이 프로젝트는 협업이 아닌 후원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적 미술가를 내세웠다지만, 작가들은 기존에 해오던 연작을 방탄(빅히트)의 돈으로 이어갔을 뿐이었다.


안토니 곰리는 2004년부터 시작해 지난해 런던 로얄아카데미에서 선보인 '클리어링' 연작을 뉴욕에서, 토마스 사라세노는 수년 전 시작한 에어로센 프로젝트를 아르헨티나에서 그대로 선보였다. 


 ‘CONNECT, BTS’의 전시를 총괄 기획한 이대형 큐레이터도 이를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그는 “작가들은 수년 전부터 해온 작업을 이어갔고, 우리는 다름을 인정하고 100% 지지하며 간섭하지 않는 협업을 추구했다”고 했다. 경제적 지원만 해줬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안토니 곰리의 오랫동안 이어진 연작 '클리어링'


"방탄소년단에 대해 알지 못했다. 케이팝에 대해서는 문화를 상품화하는 것 같아 회의적인 입장이다."(안토니 곰리)


유럽도 미술계는 늘 후원에 목말라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의 주요 작가와 갤러리에 대한 자국 정부 지원이 급감했다. 후원금은 바닥나고 미술관은 돈에 목말랐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8년간 정부의 문화예술지원금이 4억 파운드(약 6186억 원) 가량 줄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문화 기금을 없애겠다는 주장을 매년 펼친다. 미술관이 무기, 석유, 제약 업체의 후원을 받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도 늘어나 후원금을 받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해외 다수의 공공 미술관들은 기금 모금 전담 부서를 별도로 편성하고 있다. 비정기적인 후원자 초청 자선 와인 파티를 여는 곳도 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한 큐레이터는 “다들 한 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누군가 대규모의 지원을 조건 없이 해준다면, 그 주체가 방탄소년단이든 그냥 돈 많은 재벌이든 큰 결격 사유가 없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방탄(빅히트)이라서 가능한 협업? 굳이 이렇게 할 이유가 없다.


손안나 에디터는 'CONNECT, BTS'가 은유적이고 세련된 방식의 협업이라고 주장한다. 간담회에서도 강이연 작가와 이대형 큐레이터는 BTS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의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자체가 협업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BTS 였기에 가능한 협업이다'라는 낯뜨거운 포장까지 했지만, 미술계 사정을 알면 그건 'BTS(빅히트) 였기에 가능한 협업'이 아니라 '누구도 이런 식으로 후원을 하진 않는다'라는 말로 읽힌다. 왜냐면 이 후원은 BTS여서가 아니라 '조건 없는 막대한 규모의 후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아쉬운 건 진정성 있는 후원에 대한 빅히트의 이해다. 예술 후원은 오랜 시간을 두고 업계와 작가를 지켜보고, 저평가된 작품을 후원해주면서 작품과 같이 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유명한 작가에게 돈을 대주는 ‘CONNECT, BTS’는 국내 일부 대기업들의 후원 패턴을 벗어나지 못했다. 후원 당사자의 좋은 이미지만 빠른 시간 내에 취하는 ‘네이밍 스폰서’에 가깝다. 특히 이들 전시가 미술사적 의미나 미학적으로 새로운 테마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하나마나 한 전시를 왜 거금을 들여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저평가된 예술을 알아보고 후원해주었던 미국의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


미국의 페기 구겐하임(1898~1979), 국내의 간송 전형필(1906~1962)처럼 접근했다면 어떨까. 해외 미술계와 접촉이 잦은 한 기획자는 “‘CONNECT, BTS’의 전체 후원금은 웬만한 국내 공립미술관 한 해 예산을 넘어 서는 것으로 안다”며 “이만한 자금으로 저평가된 국내 작가의 신작 제작이나 해외 진출을 도왔다면 훨씬 더 뜻 깊었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방탄이 '국적 언어를 초월한 아티스트'라고 하지만, 그들도 처음엔 한국어 가사로 노래하며 세계와 소통하지 않았나?


나도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가끔 듣고, 그들의 멋진 퍼포먼스가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을 기쁘게 지켜봤다. 그런데 방탄, 아니 빅히트가 이런 식으로 예술의 껍데기를 거금 주고 구매하는 마케팅을 하는 것은 반대한다. 나는 빅히트가 진심으로 '예술'을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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