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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Dec 17. 2020

코로나 시대 입원

홀로서기

코로나 사태가 진정은커녕 한층 더 심각해지자 독일은 지난봄 완전 봉쇄를 감행한 데에 이어 11월의 시작과 함께 비교적 완화된 부분 봉쇄를 선포했다. 매일 확진자수가 만대를 기록하는 공포 속에도 모순적일 만큼 일상에서의 현실감은 크지 않았다. 저마다 '설마 나는 비껴가지 않겠어'라는 기대를 품은 듯 말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몇 백 건 안 되는, 1980년대에나 기록에 첫 등장했다는 희귀성 종양도 내게 성큼 현실로 다가온 해가 아니었던가! 올해 직면한 이 상상 못 한 상황들이 영화 속 스토리가 아님을 상기시키던 중 애타게 손꼽아 기다리던 수술일을 통보받았다. 코로나 환자 병상을 최대한 확보해야만 하는 대형 종합병원들은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 수술 일정을 연기 조치해야만 한다. 즉, 락다운 시기에 수술을 받는다 함은 이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될 환자로 간주됨이었다.


예상보다 두 배 이상 길어진 사전 치료로 심신이 지쳐있었기에 "드디어!"라는 짧은 기쁨의 환호가 첫 반응이었고, 그 순간이 지나자 불안과 두려움이 더 큰 무게로 안겨왔다. 락다운 시기 입원 수속부터 퇴원까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방문객 일절 금지라는 예외 규정이 몹시도 잔혹하게 다가왔다. 태어나 처음 접하는 수술이기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순간만큼은 손 잡아주는 남편이 곁을 지키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에게 한껏 의지하고 싶은 간절함이 컸다.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이 없이 혼자 감당해내야할 상황이 아직 정확한 종양 위치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의 수술 성공 여부보다 더 절망스러웠다.


난 과연 혼자 잘 해낼 수 있을까?

수술일을 통보받고 불면은 더해갔다. 혓바늘이 릴레이 하듯 돋아났고, 우울감이 들락날락했다. 그나마 일관성 있게 침울했던 10월과 달리 햇살이 가끔 드리우며 한 가닥의 희망이 깃드는 듯 아련했다.




예정대로 수술 하루 전 날 입원을 앞둔 이른 아침, 의외로 태연함에 스스로 안도했다.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향하는 차에 올랐고,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들이 이상하리만치 생경하게 다가서는 순간에서야 내 마음을 제대로 짚어볼 수 있었다. 직면한 홀로서기를 피해 갈 수 없음에 시린 마음을 이내 억누르며 감추고 있었구나!

하지만 남편에게 내색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게나 나에게나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시간, 큰 일을 치러야 할 아내를 혼자 두고 출근길에 올라야 하는 그의 마음이 어쩌면 더 혼란스러울지도 모르기에, 혼자여야 하기에 두려운 내 마음보다 함께 할 수 없어 미안한 그의 마음의 무게가 더 클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나보다 그를 더 품고자 했음이다.




수술을 받기로 한 병원은 확진자 수 급등으로 코로나 위험지역으로 분리된 곳에 위치해있다. 유일한 중앙 입구에 거구의 보안 인력이 배치되어, 대기자들의 출입을 사전 예약 환자 리스트를 근거로 제한시켰고, 또 다른 병원 직원이 체온을 확인한 후 입장을 허용했다. 작은 트롤리를 끌며 병원으로 입장한 순간, 무의식 중 깊은 호흡을 내쉬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구나!"

한층 더 경직됨을 느낄 수 있었다.


외과 접수처에 당도한 순간부터 수 개월에 걸쳐 낯익은 병원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수많은 서명을 요하는 입원 수속을 시작으로, 음성 판정 퀵 테스트 결과를 제출했음에도 불구, 코로나 재검사는 물론, 혈액 및 심전도 등 수술 전 기본적인 사전 검사를 거쳐, 두 개 부문 전문의들이 공동 집행해야 하는 수술을 앞두었기에 각 부문 집도의 및 마취과와의 별도 상담이 잇따랐다. 독일 의료 부문 최대 수혜자인 풀 커버 사보험자에 희귀성 질환 주요 입원 수술 환자라는 이유로, 별 다른 대기시간 없이 매끈하게 연결되는 수속 절차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 이른 아침 집을 나선 후, 입원실을 배정받고 지쳐 침대 난간에 털썩 걸터앉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무려 6시간. 몸은 지쳤지만 다행히도 긴장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정신없이 보낸 시간이었다.


간호사의 안내로 들어선 병실에서 혼자가 된 순간, 이 깔끔하고, 차가운 공간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떤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인지 설렘없는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커다란 창 밖으로는 수많은 병실들이 하나의 레고 조각처럼 쌓이고 이어진 형태로 빙 둘려 "ㅁ(미음)" 꼴로 병원 건물이 조성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곁으로 비스듬히 살짝 눈에 들어오는 하늘빛이 있어 작은 위로 삼을 수 있었다. 회색빛이던 아침 하늘은 그 사이 어둠 속으로 깊숙이 가라앉을 준비 중이었다.

  

주변 환경을 잠시 살펴본 후, 짐을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의아할 만큼 차분했다. 이제 혼자라는 사실을, 내가 견뎌내야 할 무게감이 한 폭 가깝게 내 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하는구나 싶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깬 이후로는 거동이 불편할 것이기에 필요한 물건들의 배치에 심혈을 기울였고, 이내 관장의 괴로움으로 긴장은 절로 잊혀 갔으며, 소독약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낯선 침상에 의지한 채 화장실을 오가며 친구가 공수해준 소설책에 파묻혀 어수선한 밤을 달랬다.


태어나 병원에서 보내는 첫 밤은 예상을 온전히 빚나 갔다. 환자들의 안정은 아랑곳없다는 듯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는 세상의 고요마저 송두리째 뒤흔들었고, 같은 병동 내 긴급호출 신호는 끊임없이 한 밤의 정적을 은근히 방해하며 나의 불면을 거들었다. 수술 후 내일 하루만큼은 긴 잠에 취할 수 있음을 알기에 이 밤을 꼬박 새워도 괜찮다 싶었다.




환자의 입장으로 감수해야 하는 홀로서기를 앞두고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얻는 고귀한 시간이 되리라는 것 또한 진즉이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출장도 없는 남편과 일 년 365일을 꼬박 함께 보내는 우리 부부에게 불가피하게 찾아온 잠시 이별. 더욱 애틋한 마음으로 서로의 존재를 되새겨보는 귀한 깨달음의 시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혼자하는 것, 홀로 있는 것을 썩 즐기지 않는 성격에 혼자 이 큰 일을 감당해야할 무게가 더 버겁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그렇게 꿋꿋하게 입원일(오늘) 하루를 감내한 자신에게 대견하다 칭찬을 건네보았다. 그리고, 길고 하얀 밤을 새우며 간절히 바래어보았다. 수술 당일인 내일은 오늘 견뎌낸 하루를 토대로, 보다 견고해진 나를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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