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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Dec 29. 2020

깊은 밤 혼잣말 2

feat. 싸락눈 내리는 소리

영락없이 새벽 두 시 반.

한참 꿈을 꾸다 느닷없이 눈이 떠진 시각.

바깥에서 스며드는 빛이 지나치게 밝다.

머리맡 창을 올려다보니 눈 내린 실루엣이 비추이는듯하여 잠시 침대 밖으로 나와 바깥 동태를 제대로 살펴본다. 눈이 제법 내려앉았구나.

때마침 다시 창문을 두드리는 싸락눈 노크소리가 앙증맞게 기분 좋다. 아직 제설 차량이 투입되기 전, 눈 내리는 소리가 유일하게 정적을 깨는 이 새벽 왜 또 잠을 설친 걸까?



퇴원 후 수 주에 걸쳐 전투적으로 잠을 잤다.

수술 후 거동이 불편해진 만큼 행동반경이 크게 줄었다. 종일 거의 누워만 있었으니 밥 생각 날 리 만무다. 남편이 퇴근해올 시간까지 진통제를 삼키기 위해 위보호제를 식사 대신하며 숲 속의 잠자는 공주와 누가 더 오래 자나 대결이라도 하는 듯 몇 날 며칠을 비몽사몽 보내기도 했다.

입원 전 여러 달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불면에 시달리고, 수술 후 입원 중에조차 생소한 환경, 지속대는 통증, 밤마다 울어대는 앰뷸런스와 환자들의 호소 소리에 수면제를 처방받지 않고는 고문을 받으러 갇힌 곳인가 싶을 만큼 불면이 지속됐으니 보충 수요가 눈덩이 굴리듯 불어난 상태이기도 했다. 잠이라도 취할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하루 24시간이 잔인하리만치 길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자고 또 자도 좀처럼 개운치 않게만 느껴지던 날수가 어느새 수면 부족량을 초과한 것인지 며칠 전부터 새벽 두시반, 이 시각이면 깊은 잠을 자다가도 이유 없이 눈이 떠진다.



수술부위가 안팎으로 온전히 아물기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될 것이라 했지만 나아갈 향방을 찾지 못한 채 병가일수만 채워져 가니 유유자적 조급함이 스며들고, 현실세계로의 복귀에 대한 두려움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고 있다.

코로나 시기의 어수선함 또한 여전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친구가 코로나 사태로 결국 실업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코로나의 여파가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서고 있음에 아찔하다. 머리는 온갖 계산 속 직장복귀를 더 치열하게 종용하고, 가슴은 달리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길을 찾아 헤매며 지치지도 않고 결단 내리기를 미룬다.


다행히 악성이 아니라지만 희귀해도 너무 희귀한 데다 이미 일부 장기에 파고든 상태의 종양이 발견되자 인생과 죽음의 무게감이 달라졌다.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질에 대한 내 안의 소리도 높아진다.

급작스러운 지인의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더욱 어떻게 살아야 후회를 덜까 고민이 깊어졌다. 죽음의 순서가 나이와 비례하지 않고, 시한부 환자가 아님에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이 투병 중에야 실감되었다.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그 끝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고귀한 생명의 끝을 예측할 수 없기에 더 혼동스러우면서도, 더 신중하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을 법도 하다.

" 내일 걱정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이 마지막처럼 살 것인가, 내일의 안녕을 위해 오늘 누리기를 포기할 것인가? "


오래전부터 반복해 던지는 질문이지만 내 맘을 나조차 알 수 없다. 해답이 어려운 게 인생이기에 정석이 아닌 해법으로라도 답을 찾으려 애써보지만 여전히 머리는 계산을, 가슴은 방황을 멈추지 않누나...

새벽을 가로지르는 시간.

싸락눈 내리는 잔잔한 소음이 소곤대다 잠들곤 하길 반복하는 동안 누군가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정해진 시각 이른 아침을 열며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외곽 전철 바퀴소리. 그 바통을 이어받아 고군분투하는 제설차량이 아침의 고요를 깨운다. 그 소음 속 아이러니하게도 천근만근 눈꺼풀이 다시 감겨온다.

이유없는 불면이 아닌, 심오한 자신과의 심리전으로 새운 밤이었음이 다행스러운 모양이다.

인생의 해답으로 가는 지름길이 있을까?

두 보 전진을 위한 한 보 후퇴라 치자, 나는 아직 환자니까...

정답을 찾기보다 오답을 줄여가는 게
인생을 대하는 옳은 자세일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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