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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이방인 Jan 14. 2021

생애 첫 수술

차디찬 공간에서 따스한 희망을 붙들다

반 백 생애 첫 입원을 하던 날, 관장과 불면으로 밤을 꼬박 새웠다. 어제라는 하루는 이미 막을 내렸음에도 막 오른 오늘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 동이 늑장을 부리며 터오지 않았다.

밤기운인지, 아침의 태동인지 혼동스러운 어둠 속 일찌감치 샤워를 마쳤다. 수술 후 씻기 불편할 날들을 대비, 최대한 수술시간에 임박해 샤워 부스 안 따끈한 물아래 경직된 심신을 달랬다. 거사를 앞두고, 혼자라는 두려움으로 가슴 깊은 곳을 휘감고 조여 오는 싸함마저 그 따스함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7시를 살짝 넘긴 시각. 수술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약간의 긴장감이 혈관을 타고 돈다. 때마침 간호사가 수술가운과 진정제를 가져다주며 수술길 떠날 채비를 마치라고 알려준다. 등이 시원하게 열리는 가운을 저며 입고, 이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던 차 낯선 병원 직원이 노크를 하며 들어섰다. 동시에 의문도 해소되었다.

그에 의해 나는 의학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처럼 침상 채 엘리베이터에 실리고, 긴 병원 복도를 돌고 지나 몇 층인지도 모르는 수술 대기실에 당도했다. 사지 멀쩡해 보이는 몸에 종양이 들어서 있다는 이유로, 이런 도움을 받는다는 게 썩 편치만은 않았다.

이동 중 수개월에 걸친 사전 치료 기간, 중간 검진을 받으러 올 때마다 초조하게 앉았던 대기의자가 놓인 복도를 지나는 순간, 오래 묵지 않은 그 기억이 나를 향해 소곤대며 말을 걸어왔다 "잘 견뎌주어 고맙다"라고.




도착한 공간 속 줄지어 선 여러 개의 침상들. 그 위 나란히 누운 수술 대기자들. 깊은 침묵 속 내가 그랬듯 그들도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 멀뚱멀뚱 천정만 응시하고 있었을까?

눈 내린 풍경을 보며 포근해지는 기분과는 달리 유독 병원에서 마주하는 흰색은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의 소재와 어우러져 차디 차고, 매정하게 느껴짐은 병 앞에 약해진 마음 때문이려나...


여유로워 보이는 널찍한 공간, 그곳을 가득 채운 싸한 긴장감. 침대 구르는 소리를 제외하곤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수술과가 다른 환자들이 잠시 모였던 공간에서 하나둘 흩어져 나아갔다.

거쳐야 할 절차가 예상보다 많다 여겨졌으나 착착착 매끈하게 이어졌다. 환자는 아무런 수고도 할 필요 없이 마치 생산 공정이 이뤄지는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된 조립 라인 위에 놓인 부품처럼 흐르는 절차에 따라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조치됐다. 호명도 없이 누군가 다가와 차트상의 이름을 확인한 후 침대를 끌면 내 차례구나, 또 다음 단계로 옮겨지는구나 할 뿐, 서로 대화를 아끼는 분위기 속에서 말이다.


하루 몸을 맡겼던 침대는 어느새 멀어져 갔고, 이유를 모른 채 몇 차례 이 침상에서 저 침상으로 바뀌어 눕혀진 후 마취 섹션으로 밀려 넣어지는 순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순식간 머리 위로 다가온 마취과 전문의가 인사를 건네며, 마취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조분조분 설명했으나 들리지 않았다. 양 손목을 붙들고 정맥주사 투입구를 준비하는 간호사들의 분주한 손길로 온통 신경이 쏠렸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이구나!"

절로 심호흡이 탄식하듯 뿜어졌다.


나는 내시경 또는 당일 수술 때마다 숫자 1~3까지 세던 중 잠들기 일쑤였다. 이 날은 좀 달랐다. 정맥 주사로 양 혈관을 타고 소스라치게 시린 약 기운이 파고듦이 느껴지고, 동시에 마취 전문의가 실리콘 소재의 마스크로 입을 덮고 떼어내는 동작을 수 차례 반복하던 중 '아직 깨어 있네?' 스스로 의아했으니 말이다.


이번엔 꽤 길고도 먼 여정을 떠나는가 싶은 아마득함이 묵직한 파도처럼 거칠게 밀려왔다.




이별과 가까운 나잇대가 된 탓인지 지난 몇 년간 예기치 못한 아픈 이별을 감수해야 했었고, 그 가운데 존엄한 죽음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보는 계기가 있었다.

존엄사는 심신이 건강한 상태에서 미리 준비하는 게 옳은 것임을 확신했다. 하지만 서류는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몹시도 난해했기에 인쇄본만 책상 위에 덩그마니 모셔놓은지 수개월이 지나던 시점, 희귀종양 질환자라는 이름표를 달게 되었다. 어이가 없었다.

나중 일을 지나치게 미리 대비하려던 주책이 병을 불러들인 건 아닐까 자책도 했다. 하지만 이 질환에 대해 알게 될수록 뭔가 선명해지기보다 의문이 눈덩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가이드라인이 정해지지 않은 질환과 그 치료법을 확신할 수 없는 의사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알 수 없는 적을 만났기에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종용했다. 잔인하지만 모든 결정을 남편 몫으로 일임하는 서류에 사인을 해두고 입원 전 날 남편에게 태연한 척 들이밀었다.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지만 사람 일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만큼 필요할 때를 대비한 것이니 내 뜻대로 해줄 것을 요청했고, 남편은 쓸데없는 것까지 챙기느냐는 듯 건성으로 서류를 잡아들었지만 나는 "네 뜻 잘 알겠어."라고 이해했다.




마취제가 내 몸을 지배하려는 그 순간 기억해냈다.

서류를 건네받던 순간 남편의 얼굴을.

내 시선이 일부러 피했던 그의 침울하게 굳은 표정.

나의 뇌가 예리하게 담아온 그의 경직된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서서히 희미해져 간다. 그렇게 나는 '이 세상에 너 하나만 있으면 돼'라는 자상한 남편의 품을 그리며 혼미해져 갔다.


그 후로 입이 타는 긴장과 애타는 기다림은 내 몫이 아니었다. 무의식이 안겨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


미안해 나만 편해져서...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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