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m Jul 18. 2023

내게 해로운 사람

나르시시스트 상사라는 새로운 빌런의 등장

직장 생활 하다보면 또라이를 많이 만난다.

근데 그 또라이가 나를 발전할 수 없게 만들고 자존감을 끊임없이 손상시킨다면 그 사람에게 치명적인 결점이 있음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저런 짜증나는 인간 군상을 많이 만났어도 잘 지내오고 항상 지나왔는데, 지금 팀장은 정말 힘들었다.


스스로도 왜 나는 저 사람이 이렇게 힘들까. 폭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생각해주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저 사람앞에만 서면 떨리고 작아지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그는 끊임없는 불필요한 지적(예를 들어 A라는 일을 했는데 마무리 보낸 메일이 너무 타부서에 대해 condescending해서 기분이 나빴다. 커뮤니케이션에 주의하라.) 으로 내가 말을 잘 못하는건가? 내가 일을 못하나? 라고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런 칭찬 폭탄도.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며 방향도 없이 담금질을 당했다. 좋은 조언이자 업무 방향성 지시였으면 나는 더 단단해졌겠지만 여기서는 점점 무력해져갔다. 팀미팅이 있는 월요일이 되기 전 일요일엔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고 회사에 가면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려 숨을 쉬기 힘들었다. 자기 전엔 매일 울다가 잠들었고 머릿속이 까매져서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사고하는 게 느려지면서 회사에서의 퍼포먼스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하는 업무에 필요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증상은 1월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취미와 일상이 사라지고, 이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남편이 매주 책을 두권씩 빌려다 줬는데 읽고싶었던 책들이 한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십여권의 책이 책상에 쌓였으며, 골프 레슨 시간에 골프채를 드는게 힘들었다. 거의 이틀에 한번씩 가던 수영장도 산책도 가지 않게 되었고 차차 집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도 힘겨워 졌다. 입맛이 없어졌는데 단순히 양이 줄은 게 아니라 속이 하루종일 메스꺼워 뭔가를 먹기 힘들게 되었고 커피를 마시면 안그래도 빨리 뛰는 심장이 터질것 같이 되어버려 그 즐기던 커피도 마실 수 없었다. 그냥 입 안이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기이할 정도로 썼다. 취미 생활이 사라졌으며, 집에오면 '나는 실패했어'라는 생각에 누워있기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나씩 차례로, 내 안에 무언가가 망가져갔다.


물 먹은 몸처럼 급작스레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 꾸역꾸역 걸어 회사로 나갔고 출근 버스에서는 비참함을 참기 힘들었다. 내 사고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미약하게나마 인지했지만 흐려진 머릿속으로는 깨달을 수 없었다. 


나는 왜 그 사람이 이렇게 힘들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거나 누가봐도 부당하게 행동하거나 했으면 모르겠는데.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인생에 만난 인간들 중 가장 버티기 어려운 인간인데. 대체 이 사람은 뭘까? 병원에서도 진단을 받아봤으나 내가 '주요 우울장애(몸에 영향이 나타날 수준의 우울감)'이며 휴식이 필요한 상태 라는 진단을 줬지만 이 사람의 정체에 대한 해답을 주진 않았다.



그리고 이 인간군상의 정체를 알았다.

나르시시스트.


B군 성격장애에 속하는 자기애성 성격장애.



https://youtu.be/w2NlVud5DWc



나르시시스트는 단순한 왕자병 공주병이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착취하며 기생하는 흡혈충같은 놈들이다. 스스로가 건강한 사람이라도 "내가 문젠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해로운 인간이다.


먼저 알아야할 개념은 'Supply' 이다. 이들에겐 살아가면서 서플라이가 꼭 필요하다. 자존감을 스스로 세우는게 불가능 하기 때문이며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인정을 충분히 받지 못해 전두엽 발달이 부족해지는 양육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양분으로 삼는다. 서플라이를 만드는 나르시시스트들의 행동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Love Bombing

"넌 정말 잘하는구나. 훌륭해. 내가 널 위해 멋진 커리어패스를 준비했어. 나만 따라와. 너는 잘할거야." 라며 promising future를 보여주고 칭찬 세례를 한다. 타부서에 있던 나를 '자질이 보인다'며 스카웃 해온 것도 이에 해당한다.


2. Partial Information Sharing

열심히 조사해서 알아간 정보로도 "나는 매니지먼트한테 직속 보고를 하고 들어서 아는데~" 혹은 "글로벌 콜에서 들은 얘기랑 다른데? 너가 몰라서 그래."라며 정보를 나눠주는 척 하면서 중요한 정보는 본인이 가지고 있고 이를 이용한다. 


3. Isolation & Public Humiliation

중요 미팅에서 "그런식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면 안되는데 ㅇㅇ이가 뭘 잘 몰라서~" 라며 공개적으로 내 자질을 의심하게 만든다. 부서 미팅때는 꼭 "ㅇㅇ는 일이 0.5분량밖에 없어"라고 공개적으로 말을 한 뒤 바로 다음주에 부서 미팅마다 월화수목금 일별로 뭐하는지 캘린더에 적어 부서원들과 공유하도록 했다. 난 적을게 없었고 "업무 분배가 잘 되어 있는거야? 하루종일 뭐해? 뭘하는지 모르겠어" 등의 언어 공격을 받아야 했다. "이 부서는 일을 찾아서 해야하는 부서야"라는 말로 일을 찾지 못한 것은 내 능력의 부족임을 암시했다. 내가 매니징 급이 아닌데 부서원이 뭐하고 있는지 팀장이 모른다는게 말이 되나. 업무를 적절히 부여하고 관리하는 본인의 능력이 없음을 입증하는 말임에도 이때는 가스라이팅을 심하게 당해 자책만 하고 있었다.


4. Nitpick

이메일에 적은 단어가 기분이 나빴다던가, 사소한걸로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업무의 수행과 달성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리고 영어 지적. 단어가 이상하다나. 나는 원어민급으로 잘하진 못하나 기존에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때는 줄곧 번역 프리랜서이자 영어학원 선생님으로 일했고, 시험봐서 입사 가능한 학원에서 영문 독해력 역대 최고점을 받아 논술 수업을 했었다. 토플 토익은 만점수준. 그런데 이 사람과 일하면서 나는 내가 영어를 못하나..? 하고 스스로 의심하게 됐다. "단어선택이 이상한데?" "문장이 틀린데?"(이사람은 도치법을 이해하지 못한다) 등의 지적. 그렇게 스스로 위축되어 지난주에는 영어로 진행되는 워크샵에 가서 한마디도 못하고 나온 경험도 있다. 


5. Playing Favorites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과도한 인정을 받으려는데 있다. 자신을 선망해 주는 사람에게 특별히 잘해주고 타인에게 자꾸 이를 비교시키는데, "누구처럼만 해봐. 누구는 경력이 좋아서~" 등등 이들과 비교한다. 그런데 웃긴건 내겐 이렇게 A와 비교해 깔아뭉갰으면서 A에겐 나로 비교했다고 한다. "ㅇㅇ(나)처럼 영어를 해야해. 타부서 경력이 필요해." 등등. 부서원을 교묘히 이간질할 뿐 아니라 자신과 결이 맞는(!) 사람만 좋게 대한다. 그러면 비교 하위에 든 우리는 주눅이 들고, "내가 못하는게 맞나봐."라고 생각의 방향이 뒤틀리게 된다.


여기서 또 알아야할 개념이 "Flying Monkey" as agent 이다. 


플라잉 몽키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악당을 돕는 역할로 나온데서 따온 단어라고 한다. 이들의 역할은 나르시시스트를 적극적으로 보필하는데 있다.


예를 들어 팀장이 커뮤니케이션을 문제 삼으며 "아직 부서간 온도를 모르나본데." 등을 말하고 지나가면 이 몽키녀석이 위로해준답시고 슬그머니 다가온다. 그리고 "힘들지? 나도 그래~ 나도 어려워~ 근데 주의해야하는게 맞잖아." 라며 내 편을 드는건지 팀장 말이 맞다고 한번더 강조해주는 건지 모를 태도를 취하고 간다. 처음엔 나를 정말 생각해주는 건줄 알고 이것저것 힘든걸 털어놓고 그랬었다. 좋은 사람인 줄 착각하고 소개팅도 시켜드릴까? 라고 생각도 할정도.


그런데 팀장에게 싸- 함을 느끼기 시작하자 이 사람의 패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1. 팀장이 A에 대해 내게 지적한다. 2. 플라잉몽키가 쪼르륵 다가와 한마디 덧붙인다.


이게 반복되자 정신이 피폐해졌고, "아 저사람도 피해야겠다"라고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갈등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면 회사가 힘들다는 직장동료에게 토닥토닥 하면서 같이 극복할 방법을 찾자고 할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계속 다가와 "힘들면 이직해~ 면접보고 하면 되는데 그게 어려워?" 라며 이직을 종용했다. 이게 결정적으로 플라잉 몽키를 파악하는 계기가 됐다. 열심히 극복하며 일하려는 사람한테 적합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다(커뮤니케이션을 그렇게 잘한다면서). 그리고 나 뿐 아니라 다른이에게도 "이직해~ 넌 여기 안맞아."라는 메세지를 전해왔다는 것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며 깨닫게 되었다.


https://youtu.be/n3nATqnD2N4


그 팀원은 전형적인 플라잉 몽키다.


자 지금 팀장과 플라잉몽키가 날뛰는 이 부서환경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아성찰 기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개선이 불가능하다.


지금 팀장밑에서 여러명이 갈려 나갔고 당장 어제도 한분이 퇴사했다. 팀장이 과거엔 빌런이었으나 많이 나아졌다고 들었고(외현적에서 내현적covert 나르시시트로 진화한듯 하다) 믿고 이곳으로 왔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똑같음을 확인했다. 변화는 불가능하며, 사람이 줄줄이 나가는 동안 대처가 없던 대다 팀 매니징 능력(부서원등을 성장시켜가면서 부서를 운영)이 무능함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음에도 이 사람에게 팀을 맡기고 헤드카운트를 지속적으로 늘려줬을 뿐 아니라 진급을 임원급이 될때까지 시켜준 회사 자체도 희망이 없다고 본다.


그 존재는 결과적으로 회사에 해가 된다. Talent drain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나르시시스트 혹은 소시오패스가 도사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https://youtu.be/M_DfHqdrmro


또 하나의 fundamental한 문제가 있다. 다른 부서는 업무가 있고 이를 위해 부서가 생기고 팀장이 채워지고 팀원이 배치된다. 팀장이 바뀌어도 업무는 유지된다. 그러나 현재 부서는 팀장이 있고 팀장을 통해 업무가 생성(휴)되고 팀장을 통해서만 부서가 유지되는 구조다. 부서의 일이 필요한 일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솔직히 지금 부서는 한두사람만 있어도 되는 곳인데 일곱이나 있다. 한명 나가서 여섯인가.


이 부서에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일한 약 반년간 나는 조금씩 몸도 마음도 아파져왔다. 이곳에 계속 있는 건 스스로에게 못할 짓이다. Workplace hazard는 아마도 미끄러운 바닥 같은게 아니라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인 듯 하다. 더 적합한 표현도 없다.



아직 최종적으로 결정은 못했지만 지금 이곳은 유해하다. 그리고 나는 상처받을 이유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양귀자님의 모순을 삼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