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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 Nov 30. 2018

선택은 피로해.

좌와 우, 나는 중간이면 좋겠어


"오 전 7 시 입 니 다. "


선택해야하는 피로감이 급습한다.

아침에 문을 연 순간에도 4층 계단을 걸어 내려갈지, 엘리베이터를 누를지 잠깐 고민에 빠진다.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는게 습관화되서 큰 고민없이 결정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음은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에 대한 고민이다. 버스는 한번에 갈 수 있지만 약 한시간 20분정도가 소요되고 도보로 15분가량을 걸어야한다. 지하철을 타면 도보 거리가 5분정도로 줄어들고 약 한시간이면 금새(?) 도착할 수 있지만 중간에 한번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내내 지옥철을 두 다리로 버텨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결론적으로 둘다 불편하긴 마찬가지고, 목적지는 회사라는 점은 변하지 않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정하는 것은 그날 하루를 그리 크게 좌지우지 하지 않는다. 결국 사무실에 앉게 되는 시간은 매한가지니까. 이 정도는 작은 피로다. 이런 피로까지도 줄이려면 '습관'과 '루틴', '계획'을 만들면 된다. 그런데 왜 아침에 뭘로 출근하는지도 매일 새로 선택하냐고? 그건 스스로도 해봐야 하는 질문이다. 지하철과 버스 모두 고통스럽고 둘 중 하나도 선택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여행을 다녀왔다. 3년전에 친구집에 지내면서 넉넉히 돌아본 삿포로라 가고싶은 곳도 없었고 무계획이었다.


아침마다 내게 던져지는 선택.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순 없다.


요즘은 선택의 옵션이 너무 많다. 메뉴판도 한장을 넘어가는 경우가 태반이고 ‘오늘뭐먹지’는 하나의 주제다. 운동화 하나를 사려고 검색하면 주어지는 수많은 브랜드와 상품들은 어쩜 모두 갖고싶다.


이런 수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사람들은 종종 ‘결정장애’ 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이게 다 선택에 대한 피로감 때문이다. 용어도 있다. decisive fatigue. 선택 피로. 정보가 넘쳐나면 걸리는 과부하를 말한다. 선택을 못하고 결정을 실패하는 것이다. 이 단어를 심하게 앓고나면 개인의 취향을 잃고 ‘아무거나 좋아’라는 말을 남발하게 된다.


선택의 스트레스는 계획으로, 혹은 무의식 속에 새겨넣은 습관으로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레 화장실로 가 이를 닦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선택 자체가 주는 뇌의 과부하를 줄이기 위해 평생의 옷을 하나로 통일해버렸다. 이세이미야케 검정 니트에 청바지, 뉴발란스 스니커즈. 그리고 주커버그는 회색 티셔츠와 후디다. 그의 옷차림이 모든 자리(특히 격식있는)에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아 스티브 잡스의 초이스가 더 편리해 보이지만.


그들은 항상 동일한 옷차림으로 고민할 시간, 쇼핑할 시간을 모두 줄이고 아침에 옷을 선택하고 입는 과정조차 계획>습관으로 통합시켜 버렸다. 대단하다. 물론 난 다양한 옷이 좋아 그들을 따라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라떼에 우유를 세종류나 선택할 수 있던 삿포로의 카페 바리스타트. 그냥 비싼게 최고야...가장 비싼거 하나랑 사랑하는 도시 하코다테 우유 라떼를 주문했다.


계획과 습관으로 도저히 해결 불가능한 선택도 있다. 이 선택들은 인생을 좌우한다.


선택의 피로가 가장 크게 몰아쳤던 건 대학 때였다. 대학 입학은 쉬웠다.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이라면 대부분 겪는 수능의 고통도 운좋게 스킵했고. 대학은 선택의 고통없이 자연스레 따라왔지만 문제는 전공이었다.


(아직도 정체를 모르겠는;)자율전공으로 입학한 나는 도무지 뭘 해야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미술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미대 포트폴리오를 준비했고, 합격했었다. 한국에 갔다올 생각으로 입학은 보류해 놨었지만 당연히 근미래에 미대에 진학하고 예술을 하게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떨결에 한국에 와서 입학한 학과는 경영과 경제, 법학(노동법 국제법 법철학!) 등 일평생 고려한 적 없던 것들을 가르쳤고, 그런것들은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2년이 지났다.


처음으로 인생을 흘러가는대로 둘 수 없겠다고 판단했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어딘가 새로운 과를 선택해야 했다. 미대로의 전과는 불가했다. 특히 순수 회화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말을 한국 사회에 온 순간부터 너무 많이 들은 후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책 편식가의 취향. 고전과 소설. 묘한 번역체를 좋아한다.


인생을 좌지우지할 결정은 이때 처음 찾아왔던 것 같다. 답은 없었다. 어떤 걸 하고싶은지, 어떤일에 내가 재능을 가졌는지 모든게 희뿌연 때였다.


“쉬운 거 해. 어려운거 하면 하기 싫어지고 못하게 돼. 쉬운걸 해서 잘하면 흥미를 느끼고 점점 더 잘하게 되고 좋아하게 될꺼야.”


쉬운걸 선택하라는 아빠의 말은 얼마나 달콤했던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같은 마법의 주문이었다. 책임의 힘을 빼고 선택의 무게를 줄여주는 마법의 주문. 주문에 걸린 상태로 선택한 건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있고 하루종일 글을 써도 좋은 영문학과였다.


그럼 나는 선택에 만족했을까? 수업은 모두 만족스러웠다. 공부가 공부같지 않고 지루하고 낡은 셰익스피어의 sonnet들을 하루종일 읽고 외우는게 즐거웠다. 마음껏 책에 빠져지낸 몇년의 대학생활... 그리고 남은건 “문송합니다”?


문학은 마케팅도 모르고 엑셀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고전들은 우리를 18세기로, 20세기 초의 생각들로 옮겨놓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과 헤밍웨이의 파리를 걷게 한다.


물론 그때로 돌아가도 난 100% 동일한 선택을 할꺼다.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재밌는 일이었으니까. 아, 그때의 내게 컴공이나 경영 정도는 다전공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긴 하지만..!


운좋게도 지금의 나는 여행과 이야기와 관련된 일을 하고있다. 앞으로 어떤일을 하게될지는 잘 모르지만 선택의 기로는 또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2017.12 대만. 다리가 아플때까지 때까지 걷고 밤엔 항상 발맛사지!


선택은 또 어렵다. 커리어와 관련된 문제, 그리고 인간관계와 관련된 문제는 삶에 너무나 크리티컬해서 중요도만큼 피로감도 커진다. 이 기로에서 스스로를 객관화해서 분석하고 단호하고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너무나 멋져보인다. 나는 그냥 좌와 우, 그 중간에 서있고만 싶은데.


더 지치기 전에 쉬어갈 벤치를 발견하고 싶다. 욕심인것 같기도 하지만 잠시 쉬었다가, 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책임감 있는 어른의 마음으로 오늘과 내일을 감당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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