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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Yo Jan 23. 2018

프라하 여행기

#유럽#여행#프라하#친구#함께

추석이 되자 산란을 위해 먼 바다에서 다시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들처럼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졌던 고향친구들이 달콤한 연휴 기간을 이용해 하나 둘씩 고향으로 모여든다. 일 년 중 유일하게 다 같이 모이는 날이니 만큼 나 역시 오랜만에 고향 웬수들.. 아니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학생신분인 ‘성훈’, 내세울 거라곤 얄팍한 자동차 지식과 무식한 힘밖에 없는 정비사 ‘석호’, 머리 좀 다듬어달라 하면 진짜로 머리부터 자르려고 하는 헤어디자이너 ‘민우’까지. 고등학교 때 처음만나 지금까지 쭉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내 소중한 친구들이다. 어디보자, 연수로 따지면 올해로 거의 10년 차에 접어들었으니 이쯤 되면 죽마고우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하여튼 간만에 만난 반가움을 뒤로하고, 늘 그렇듯 우리의 아지트인 근처 곱창 집에서 소주와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우와..생각해 보니 우리 친구 된지 벌써 10년이나 된 거냐?”

“시간 진짜 빠르다, 무섭다 무서워.”

“20~30년 후에도 계속 볼 생각하니 벌써부터 끔찍하다야.” 

“진짜 소름이네, 소름이야.”

“소름은 네 얼굴을 말하는 거고.”    


등의 공격적인 이야기가 오가던 중, 갑자기 대화의 주제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야, 그러고 보니 우리 다 같이 어디로 간 적이 없네. 아싸리 이번 연말에 다 같이 어디 여행이라도 같이 갈까?”

“오, 여행 좋다. 그럼 부산 어떠냐? 먹방 고?”

“야 뭔 남자 새끼가 이렇게 포부가 없냐, 첫 여행인데 해외로 가야지, 연말에 일본 많이 가던데, 오사카 콜?”

“친구야, 너는 그릇이 정말 작은 아이구나. 이왕 가는 거 스펙타클 하게 서양 권 나라로 한 번 가보자.”    


그렇게 해서 아쉽게 직장 문제로 함께하지 못하게 된 민우를 제외하고, 우리 셋은 지금    


프라하에 왔다.     


동유럽을 대표하는 국가 체코의 수도이자 중심가가 유네스코에 등재될 만큼 뿌리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 그 유명한 세기적 미술가 알폰소 무하의 영혼이 잠들어있고, 천문학적인 기술로 지어진 ‘천문 시계탑’,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까를교’, 고딕 양식의 대표주자 ‘프라하 성’ 그 외에도 유럽의 동남아란 말답게 정말 착한 물가를 자랑하고 전 세계인에게 사랑 받고 있는 맥주 ‘코젤 다크’를 제대로 맛 볼 수 있는 도시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12월의 프라하는 영하권을 웃돌 만큼 굉장히 추운 날씨였다. 두꺼운 코트 안에다 뭐 이것저것 껴입었다고 해도 매서운 추위만큼은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입국 심사를 거쳐 공항을 빠져나오니 우리를 무사히 숙소까지 데려다 줄 픽업기사 ‘자르단’이 환영팻말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광택제를 한 뭉텅이 바른 것처럼 매끄럽고 반짝이는 민머리에 위트 있는 말투까지 상당히 친근한 느낌의 사람이라 생각했다.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던 중, 문득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 자주 사용하게 될 체코어를 배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자르단! ‘안녕하세요’가 체코어로 뭐예요?”

“체코어로 안녕하세요는 ‘도브리 덴’이라고 해.”

“오호라, 그럼 ‘감사합니다’는요?”

“그건 ‘데꾸이’.” 

“데꾸이? 발음이 뭔가 상당히 촌스러움. 체코어 재밌네. 킥킥”

“꼭 ‘됐구예’이러는 거 같지 않냐? 완전 사투리 같음. 캬캬캬”     


한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라고 말할 거다. 

꼭 그럴 거다.     


허점투성인 이 철부지들에게 교묘한 상술 한 번 부릴 법도 한데, 착한 자르단은 오히려 우리에게 무료로 프라하 시내를 관광시켜준다고 이야기했다. 여행지의 첫 인상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 된다던데, 자르단 덕분에 한동안 프라하는 친절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후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곳에 오기 전까지 전혀 생각도 안했던 한국 대사관에도 가보고, 유명한 맛 집도 미리 몇 군데 알아놨고, 밤이 되면 미녀누나들로 북적인다는 핫한 클럽의 위치까지 알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자르단. 정말 고맙습니다.     


“우와. 대박이다.”    


프라하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구시가지 광장에 도착했다. 안데르센의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예술적인 건물들이 탄탄하게 도시의 균형을 잡아주며, 그 건물의 주황색 지붕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한 편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내려다보면 전 세계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짠 것 같은 작품 같은 타일들이 쫙 깔려있었고, 그 위로는 각각의 특색을 지닌 여러 거리 예술가들과 다그닥 다그닥 소리를 내며 달려가는 몇 대의 마차가 저마다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꿈과 낭만을 더욱더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눈앞에 펼쳐진 말도 안 되는 장면을 바라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 것만이 전부였다.    


무엇보다 프라하는 이주 뒤에 있을 크리스마스 준비에 한창이었는데, 그건 마치 크리스마스 분위기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작은 도시가 크리스마스 그 자체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광장 한 가운데선 화려한 조명으로 무장한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하나가 아름답게 반짝이며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그 주위를 둘러싼 수많은 크리스마스 마켓들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캐럴이 한 편의 성탄 영화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우와, 진짜 유럽 크리스마스는 미친 것 같다.”

“완전 공감함. 근데 진짜로 여긴 말도 안 되게 예쁜 것 같다.”

“설마 이런 데를 너네랑 같이 오게 될 줄이야, 뭔가 뭉클하네.”    


예전에도 몇 번 여행을 하면서 지금처럼 혼자보기 아까울 정도의 장면들과 마주쳤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맘속으로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중에 꼭 함께 오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내겐 지금 이 격양된 감정을 함께 나누고 이야기할 소중한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 쑥스러운 마음에 미처 말하진 못 했지만, 그땐 정말 녀석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여행이 중반부에 접어들 무렵,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한인민박에 가기로 결정했다. 굳이 먼 유럽까지 와서 왜 굳이 돈까지 써가며 우리나라나 다름없는 숙소에 가는 거냐고 묻는다면, 먼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맛보는 그리운 고국의 음식, 그리고 생면부지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소중한 추억들이 얼마나 즐겁고 뜻깊은 것인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야 절대 모르실 거다. 라고 답하겠다.    


“얘들아, 우리 마지막 이틀은 한인민박에서 지내는 게 어때?”

“그 뭐나,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쓰는 숙소 말하는 거냐?”

“응, 거기서 사람들이랑 맥주도 마시면서 수다도 떨고, 무엇보다 네 놈들이 좋아하는 김치찌개랑 제육볶음도 실컷 먹을 수 있을 거임.”

“오, 콜콜! 야, 근데 거기 좀 비싸지 않을까?”

“생각보다 저렴해, 하루에 30정도?”

“30이라고?? 많이 비싼 것 같은데.. 음.. 생각해 보니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경험해보겠냐. 이참에 한 번 가보지 뭐. 그럼 지금 바로 60만원 계좌이체 시켜주면 되는 거지?”

“뭐라고? 저기 님, 혹시 바보 아니세요?”

“뭐가. 네가 방금 30이라며, 이틀 묵는 거까지 계산해서 총 60만원 맞잖아, 새끼야.”

“아니, 저기요. 하루에 30만원이 아니라 30유로라고요 새끼야.”    


3만 원짜리 한인 민박을 30만원에 버금가는 7성급 호텔로 착각하는 멍청한 놈들. 이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놈들인 줄 알았더라면, 그냥 30만원이라 하고 남은 돈은 내가 다 꿀꺽할 걸 그랬다.      


한인민박은 역시나 신의 한수와도 같은 선택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친절함이 배어있는 사장님께서 특별히 3인실 방을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주셨고, 더불어 요 며칠간 기름진 음식으로 지친 우리를 생각해서 아침·저녁으로 정갈하고 맛있는 한식까지 잔뜩 차려주셨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곳에 숙박하는 사람들과 테이블에 다 같이 모여앉아 여행 정보도 공유하고 서로의 여행기를 들려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여행 중에 또 다른 여행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이처럼 뜻깊은 순간에 내 친구들은 지금    


“다들 오늘 이렇게 다 같이 만난 것도 인연인데 오늘 한 번 끝까지 달려봅시다.”

“자 그럼 갑니다.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침까지 튀겨가며 저러고 있다. 한 시도 빠짐없이 창피한 모습을 보이는 통에 머리가 시큰 아파왔지만, 그래도 녀석들 덕분에 민박집 분위기는 한층 더 후끈 달아오른 듯 했다.     


어느덧 우리에게도 부정할 수 없는 마지막 밤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모든 일정을 끝마치고 늦게까지 민박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나서 이대로 잠들기에는 너무 아쉬워 마지막으로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러가기로 결정했다. 자정이라 그런지 수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광장에는 지나가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아 썰렁한 느낌만 맴돌았고, 그저 곳곳에 서있는 몇 개의 가로등 빛만이 거리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었다. 한산한 공기를 마셔가며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덧 프라하 성에 도착했고, 우리는 도시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난간에 걸터앉아 덤덤하게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무심결에 바라본 친구들의 얼굴에는 말 못할 아쉬움만이 가득했다. 마지막이란 항상 이렇다.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과는 별개로 수다스러운 사람들에게 묵직한 침묵을 안겨주고, 눈앞에 황홀한 장면이 펼쳐진다고 해도 그 벅찬 감격을 무미건조하게 바꿔버리는 야속한 녀석 같다. 내일이면 과거의 추억으로 남게 될 이 도시의 마지막 모습을 각자의 방법으로 기억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에휴, 그나저나 우리 내일 진짜 한국 가는 거 맞지?”

“응. 너도 어지간히 돌아가기 싫나보다.”

“너라면 다시 돌아가고 싶겠냐. 아 진짜 좋았는데.”    


그러다 아까부터 말이 없던 석호가 입을 열었다.     


“정말 끝내주게 재밌는 여행이었다. 나중에 꼭 다시 오자.” 


셋이서 함께 떠난 프라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단순히 여유 좀 찾겠다는 이유 하나로 틈만 나면 해외로 떠날 때마다 철 좀 들라며 타박하던 친구들의 입에서 먼저 다시 오자는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이번 여행은 굳이 세세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매우 성공적이었다 말하고 싶다. 지난 일주일동안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함께 거닐며 마주친 풍경들, 그리고 프라하라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함께했던 모든 추억들이 훗날에 회자될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시차 적응 실패로 새벽 4시에 일어나 맥주와 함께 심야 영화를 본 것도, 멋 좀 부려보겠다고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돌아다니다 셋 다 감기에 걸려 하루를 통째로 날려버린 것도, 잡상인의 화려한 혀 놀림에 속아 싸구려 우정 반지에 20만원을 투자한 것마저 쉽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일부가 되었다. 12월의 프라하 그리고 그곳에서 나와 함께 돈독한 우정을 쌓아올린 친구들이 있었기에 내 스물일곱의 대단원은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었다.     


때마침 양반은 절대 못 될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정말 수고 많았어. 네 덕분에 진짜 재밌는 여행이었다.”

“맞아, 정말 최고였어. 같이 가줘서 정말 고맙다.”      


곧바로 나 역시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고 답장을 보낸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또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함께해줘서 오히려 내가 더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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