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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kEYo Sep 29. 2019

천국의 문앞에 선 두 남자, 영화 <노킹 온헤븐스 도어

영화, 배우, 관찰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난 머리에 테니스 공만한 종양이 있는데,
의사 말대론 운 좋아야 며칠 더 산다더군."
"나도야. 나 역시 너처럼 암에 걸렸는데, 불치병이라고 하더라."


매사에 부정적이지만 쾌활한 남자 '마티'와 차분하고도 온화한 미소가 매력적인 '루디'는 같은 날, 다른 이유로 같은 병실을 사용하게 된다. 여름과 겨울, 혹은 비와 눈처럼 극명한 온도차를 지닌 그들이지만, 실은 그들 사이엔 하나의 아픈 공통점이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라는 것. 마티는 머리에 종양이 생겨 당장에라도 쓰러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루디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현대 의학으론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 앞에 거의 다다른 환자였다. 그렇게 얼굴을 맞대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우연히 서로의 속사정을 알게 된 두 사람. 그들은 그 뒤로도 꽤나 오랜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둘은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친구가 된다.     

"나는 여태껏 바다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진담은 아니지?"

"정말이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어쩌면 우리는 지금 천국의 문 앞에서 데킬라를 마시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병실 서랍에서 발견한 데킬라를 훌쩍이다 그 흔한 바다 한 번 본적없다는 루디의 말에 마티는 꽤나 큰 충격을 받게 되고, 바다를 본적이 없는 루디를 위해서 마티는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기나긴 여행을 루디와 함께 떠나기로 결심한다. 몰래 병원 지하로 뛰쳐나와 여행을 위해 필요한 차를 탈취한 마티와 루디, 허나 그들이 훔친 차는 바로 현금다발로 가득 찬 돈 가방이 실린 거대한 갱단의 차였다. 이 사실은 전혀 모른 채, 그저 100억이 든 돈 가방을 발견하고 좋아라하는 그들은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자신들이 죽기전에 생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행해나가기로 한다. 수제 양복점에서 가장 비싼 양복 사 입기, 최고급 호텔에서 하루 숙박하기. 예쁜 여자들 껴안고 뜨거운 밤 보내기, 그리고 마티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인 그의 어머니에게 비싼 벤츠 선물하기까지. 그들은 바다를 향한 여정 이어나가며 동시에 생전에 꼭 이루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어디든 좋아."

"여태껏 들어본 적 없는 곳으로 떠나보자"


그들의 바람처럼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했다면 참 좋았을 테지만, 마티와 루디의 여행은 순탄함보다는 오히려 험난함 쪽에 훨씬 더 가까웠다. 우리는 곧 죽는다는 깡다구로 겁도 없이 은행을 털어 경찰로부터 지명수배를 받게 되고, 100억이 든 돈 가방을 되찾기 위해서 갱단은 총을 들고 호시탐탐 그들의 목숨을 노리며 쫓아온다. 그러나 마티와 루디는 오히려 이러한 긴박한 상황마저 자신들의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매 순간을 즐기고 있다. 하기야 어찌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죽음을 얼마 안 앞둔 그들에겐 무미건조한, 그저 불필요한 감정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침내 왔어. 이제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어."    

*1997년 독일에서 개봉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는 앞서 설명했듯이 죽음의 문턱에 선 두 남자의 바다를 향한 여행기를 담은 작품이다. 액션,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소 복합적인 장르를 포함하고 있음에도 이상하게 이 영화에 조잡함이라곤 단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갖가지 재료들이 냄비에 한데로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는 전골요리처럼, 영화 내적에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영화라는 틀 안에서 골고루 버무려져 꽤나 거대한 여운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유쾌한 두 남자 마티와 루디의 이야기는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우 긴박하고 흥민진진하게 관객들의 즐거움을 자아내고, 바다를 향해 이어지는 영화의 스토리는 굉장한 흡입력을 발휘하며 한시라도 영화에 눈을 뗄 수 없게 몰입감을 발휘한다. 그리고 적재적소의 순간마다 뜬금없이 등장해 잠시 잊혀졌던 웃음을 선사하는 허술한 갱단 콤비는 이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요소 중에 하나이다. 어찌보면 굉장히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죽음'에 관한것을 두 남자의 여행으로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은 세기가 바뀐 현시대적 관점에서 바라봤을때도 굉장히 신선하고 은은하게 퍼져오는 밥딜런의 노래와 함께 바다에 도착한 마티와 루디의 마지막 엔딩장면은 모든 관객들의 환호와 뜨거운 기립박수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가히 압도적이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


이 영화를 제작한 토마스 얀 감독은 마티와 루디라는 가공의 인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위와 같은 삶의 메시지를 뭉툭하게 전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 것이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사용하고 보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달콤한 초콜릿이나 떠오르기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의 짝사랑으로 기억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후회와 한탄으로 가득했던 아픈역사의 페이지로 남게될수도 있다. 현재를 즐기며 살으라는 '카르페디엠'의 굳건한 정의처럼 앞으로의 인생에 더 집중하고 소중하게 가꾸어나간다면 마티와 루디의 결말처럼 우리 역시 천국의 문앞에서 보드카를 마시게 될지도 모르니까. 이상 죽음에 관하여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되는 영화 <노킹 온 헤븐스 도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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