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국은 악마의 꽃이래.”
수국을 보며 감탄하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수국이 활짝 피었을 때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시들 때의 모습은 마치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것 같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곳곳에 수국이 있다. 수국이 꽃을 피울 때가 아니면 그곳에 수국이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수국 철이 되면 제주도는 수국의 섬이 된다. 수국 군락지로 유명한 관광지에 사람들이 몰리지만, 굳이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산길을 운전하다 보면 길가에 나란히 피어 있는 수국들을 만날 수 있다. 웨딩드레스 입고 걸어가면 버진로드가 따로 없을 정도다.
나는 수국을 보면 솜사탕을 먹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몽글몽글한 모양과 파스텔톤의 색이 솜사탕 같아서, 입안에 단 것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연한 파스텔톤의 수국이 흔하지만, 가끔 진한 보라색이나 자주색, 빨간색의 수국도 볼 수 있는데, 이들 또한 매력 있다. 신이 지구에 수채화를 그린다면 이런 물감색이 나올 것만 같다.
커서 더욱 매력적인 수국인데, 그 크기 그대로 잎이 말라죽어가는 과정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잎이 말라 색이 누레졌을 때의 수국은 정말 악마가 생명을 빼앗아 간 것처럼 보인다. 큰 꽃들이 군락을 지어 있기에 더 아름답다는 장점이 단점이 되는 순간이다. 시든 커다란 꽃이 군락을 지어 있으니 흉측함이 배가 된다.
그들의 본질은 여전히 수국인데, 수국을 보는 나의 마음은 왜 달라지는 걸까?
이건 마치 까미의 털이 복슬복슬할 때와 털을 싹 밀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달랐던 것과 비슷하다. 까미는 부모님이 키우는 까만색의 토이푸들이다. 곱슬곱슬한 털이 많이 자라 얼굴을 뒤덮고 몸도 통통(?)해 보일 때와, 털을 싹 밀어 가냘프고 날렵한 몸과 얼굴이 드러났을 때가 다른 성격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까미의 행동은 그대로이고, 정작 까미는 본인의 외모가 그렇게 달라졌다는 걸 알기나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본인의 외모를 ‘평가’할 수 있다. 화장을 하거나 헤어스타일을 바꿨을 때, 혹은 성형수술을 했을 때 좀 더 마음에 드는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감정에도 변화가 생겨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수국이나 까미는 본인의 외모를 평가하지 않는다. 달라진 외모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내가 그들의 달라진 외모에 영향을 받는 건 사람이라서 그렇다.
나의 눈은 심각한 고도근시로, 라식이나 라섹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렌즈삽입술을 했다. 하지만 시력뿐만 아니라 각막의 세포 수가 줄고, 시신경이 죽는 등 눈이 점점 안 좋아져 결국 의사 선생님께서는 삽입했던 렌즈를 뺄 것을 권하셨다. 이 제안은 나를 크게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다시 두꺼운 안경을 쓰거나 렌즈를 끼고 생활해야 하는 불편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은 안경 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는 점이 더 큰 이유였다.
핑핑 돌아가는 안경을 썼을 때의 내 모습이 시든 수국처럼 여겨질 것 같은 불안함이다. 안경을 쓴다고 해서 내 성격이나 가치관이 달라지는 게 아닐 텐데, 더 별로인 사람으로 보일 것 같은 마음. 시든 수국을 싫어하지 않기로 하면서, 안경을 쓴 내 모습도 사랑하기로 했다. 안경을 썼다고 나를 다르게 평가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기로.
오늘 시든 수국을 보며 이 노래가 생각났다. 심규선의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줄 건가요>. 이 노래에 가장 어울리는 꽃은 수국이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