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ck Rhino Mar 30. 2018

부모님을 위한 대나무 숲은 없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며

오늘의 글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가 사춘기였을 적에 저는 친구가 가진 게 있다면 그것보다 더 예쁘고 가치 있는 걸 갖고 싶어 하는 이상한 허영심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새 신발을 산 친구의 자랑에 덩달아 저도 새 신발을 갖고 싶어서 엄마를 조르고 졸랐습니다. 마침내 시달리던 저희 엄마는 저를 데리고 지하상가의 신발 가게로 데려가 주셨어요. 맘에 드는 걸로 신어보고 결정하라고요. 저는 처음 이것저것 보다가 독특하게 생긴 부츠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신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보기완 달리 제 발에는 예쁘지 않더라고요. 저는 신어보고 생각보다 별로다 싶어서 '엄마 이제 다른데 둘러보자.' 하고 그 가게를 나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친절하게 대해 주시던 신발 가게 아저씨가 벌컥 화를 내시더니 다짜고짜 이 신발은 가게에 한 개뿐인데 지금 신고 나서 밑창이 더러워졌는데 어쩌냐 이 신발을 이제 누구한테 파냐며 가정교육을 잘 못 받은 탓이라고 구매하기 전까지 절대 나갈 수 없다는 말들로 엄마와 저희 일행에게 강매에 가까운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저희 엄마도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고 당황스러우셨는지 딸이 신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왜 이러시냐며 죄송하지만 그만 나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 신발 가게 아저씨는 그대로 더 언성을 높였고 비난의 투로 저희에게 인신공격도 망설임 없이 내리 쏟아 놓았습니다. 결국 저희 엄마는 그 신발을 사고 나왔고 견딜 수 없는 속상함을 감출 여력이 없었는지 눈물을 훔치는 게 보였습니다. 저희 엄마의 그 날 속상함은 어디 털어놓고 위로받을 수 조차 없었고 이렇게 세월 속에 잊혀 갔습니다.




제가 이 일화를 앞 머리에 꺼내 놓은 이유는 부모와 자식 사이처럼 가장 가까우면서 때로는 멀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속내를 어쩌면 큰 관심이 없거나 대강 보고 넘기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국 부모님도 자녀들에게 속사정을 시원하게 털어놓지를 못한다거나, 보다 깊은 대화를 자녀에게 하지 않는 점도 있을 것이고요. 물론 자녀인 저희가 부모님의 일상과 대화에 깊게 관여를 하지 않는 문제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웠습니다. 부모님도 속내를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요. 아니면 말하기 어려웠던 그동안의 속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자녀, 배우자, 혹은 기타 이해관계를 떠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오롯이 부모님을 위한 대나무 숲의 가상공간이 하나 없는 게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부모님 세대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카페도 있을 것이고 이미 소셜 미디어가 등장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우리처럼 대중적이지 못하고 부모님 세대의 대부분은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컴퓨터와 소셜 미디어를 어려워하는 점도 한 아쉬운 부분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국 소셜 미디어와 웹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 이상의 짜임새로 모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게 블로그, 웹 사이트, 카페, 혹은 포털 사이트가 생겨나서 자신의 얘기를 마음대로 꺼내놓고 풀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친구에게 말하는 것처럼 기능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는 의견을 나누고 생각을 댓글로 써서 포털 사이트 기사에 남긴다거나 다른 사람과의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공간이 소셜미디어 수만큼 다양해져서 누군가는 오늘 새로 산 신발에 대한 불만이나 점원의 태도를 페이스북에 토로해서 익명의 상대방과 의견을 교환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간대 빠른 피드백을 받기도 하고요. 앞 서 저희 엄마와 신발 가게 일화도 어쩌면 오늘날에 불만을 표시하는 도구로 소셜 미디어를 택했다면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반응을 하거나 공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전래 동화의 대나무 숲을 모티브로 한 오늘날의 소셜 매체의 공간 안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미투의 고발, 젊은이들의 사랑 고백, 혹은 이런저런 취업 고충과 성장 고민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표출돼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적어 보내면 공론화가 만들어지는 순기능을 가진 페이스북 대나무 숲 페이지들은 청년 세대가 만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건 좋은 도구가 있다는 것이고 자신의 무기로 사용할 수 도 있고 방패로 쓸 수 있다는 것을요.

그러나 이와 같이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스러운 것들이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이것들이 어렵고 혹은 이해불가이고 복잡하게 맞물려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표현하고 생각하는 대로 표출할 수 있는 한 사람이고, 피해와 불만의 심정을 토로할 장소와 공간이 필요한 한 사람일 수 있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거나 가까이 암 투병을 하고 계신 부모님일 수 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암투병 중입니다. 그 전엔 아무것도 몰랐었고 아버지가 큰 병에 걸리고 나서 덜컥 큰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18년간 성실히 납입해 온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고 있지 못하고 계신다는 것을요. 저는 저희 부모님 만큼 억울했습니다. 한 달의 보험료로 18년을 계산해 보니 보험금을 타야 하는 금액보다 우습게도 더 많더라고요. 어쨌거나 제가 부모님의 재정 상황은 세세하게 알지 못하지만, 부모님의 노후와, 그리고 아버지의 잠재적 암 재발 확률이나 모든 상황의 수를 받아들이고 곰곰이 생각해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온라인에 부모님 대신 나서서 글을 쓰는 이유도 제 부모님이 온라인에 어떻게 훌륭하게 이 억울함을 공론화로 만들 수 있겠는가에 대한 도구의 부재와 인터넷 사용의 부족함도 있겠지만, 제가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충분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후 저희 부모님과 비슷한 상황에 계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주 다양한 사유들로 보험금을 받고 있지 못하는 네이버 카페 모암두의 암투병 환우분들과 이 불편한 상황을 함께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이 부모님 세대와 비슷한 암투병 환우분들입니다. 인터넷과 온라인 사용이 우리보다 불편하신 분들입니다.


이 이야기를 앞서서 다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암투병 환우분들의 크나 큰 문제인 보험금 보상 문제에 있어서 한국 대기업 회사와 국가 기관이 관여하고 있다는 게, 그리고 그들이 이 문제를 불과 힘없는 소수 집단이라서 단순하고 경미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게 문제의 큰 핵심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들의 피해는 거듭 말씀 드릴 필요 없이, 보험금 부지급 문제의 고충과 불만사항, 그리고 관련 민원들이 어쨌든지 회사의 고객센터나 금융감독원의 민원으로 처분되면 내부적으로 처리가 되기 때문에 비공식적으로 수습되어 왔고, 이 문제가 외부로 크게 알려지기가 힘들었으며 이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처음에 한두 명의 소수의 문제로 불거져서 이제는 천 명이 넘는 분들이 암 보험비를 지급받지 못하고 있고 모두가 똑같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도리어 다음 세대인 우리가 우려의 목소리를 표현해야 할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보험금 부지급이 계속해서 관행으로 남는다면, 그리고 보험금 부지급 처리를 불법적이고 위법 행위로 처리했는데 국가 기관에서 아무런 제재가 없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 전달되어 올 것입니다.

오늘날의 암투병 환우분들이 받은 피해와 모든 마음고생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어디 아무 데도 보상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암투병 환우분들께서 스스로가 발돋움해 한국 보험회사의 부조리와 부정행위에 맞서서 집회를 벌이고 있는 사연도 비단 못 받은 보험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깊은 곳에서부터 뿌리내린 폐단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면서 이 피해가 너 나 우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적하며 주의를 시사하고 있습니다.


암투병 환우분들을 위한 대나무 숲이 있다면, 혹은 그에 상응하는 자리가 주어진다면, 이 크나 큰 적폐 앞에서 소비자 주권을 외치며 외롭게 싸우고 있다는 걸 응원하고 또 응원받을 수 있게 저는 지지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에 제 분수도 모르고 내실 없이 채워지지 않을 허영심을 부모님 앞에서 부렸던 부끄러움만큼, 그에 비해 받은 사랑은 셀 수 도 없이 큰 내리사랑을 받아 온 저는 암 보험금 부지급 피해자들의 유형무형을 막론하고 이것이 도리이기 때문에 저는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과 권리가 바로 설 때까지 암투병 환자분들의 #WeToo운동에 큰 박수와 성원을 보냅니다.



● 암투병 환자분들의 국민청원 20만 동의 서명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71019
● 이 캠페인은 네이버 카페 모암두와 함께합니다.
http://cafe.naver.com/dcare 






또한 김근아 선생님의 긴 보험회사와의 항쟁을 적은 블로그를 응원합니다.

https://blog.naver.com/kunakim1357


Facebookhttps://www.facebook.com/by.sickrhino

Instagramhttps://www.instagram.com/sick.rhino

카페 모암두http://cafe.naver.com/dcare


참고 자료

KBS1 3월 14일 방송 시청자 칼럼 우리 사는 세상http://www.kbs.co.kr/1tv/sisa/column/index.html

뉴스타파 기사 보험의 배신https://newstapa.org/43674

베타뉴스 전근홍 기자 짜고 치는 금감원과 보험회사http://news.joins.com/article/21841812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