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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두둑 Oct 20. 2024

달리는 ADHD 이야기

꾸준하지는 않지만 끈질긴 편입니다.

저는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단거리는 몰라도 장거리는 딱 질색입니다.


오래 달린다는 것은 일단 지루한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숨이 가빠지고, 심장이 타는 듯한 그 느낌은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불쾌합니다.


그래서 어릴 때 체육 시간에 오래달리기를 해야 하는 날이면, 온갖 핑계를 대며 벤치에 앉아 있거나 양호실로 피해 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달리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제가, 이제는 저만의 방식으로 달리기를 통해 ADHD를 관리하고 있네요. 오늘, 그 경험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인이 되어 ‘달리기를 해볼까?’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건 다른 사람들처럼 다이어트를 위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넘치는 의욕으로 무작정 1시간을 달리겠다고 결심했지만, 3일은커녕 이틀도 넘기지 못했죠.


'그래,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매일 30분만 달리자!'라고 다짐했지만, 그것조차 제게는 무리한 도전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뿌듯함은 있었지만, 달리는 동안 숨이 차고 다리가 뻐근해지는 불쾌한 감각은 여전했으니까요. 결국 또 실패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속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감정이 주체가 안되고, 머릿속은 어찌나 복잡하던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런 날이었죠. 아무래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잠시 걷고자 집 앞 공원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걷는 것 만으로는 감정이 도통 가라앉지 않아 무심코 뛰기 시작했습니다. 몸이 힘들면 복잡한 생각을 잠재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음악도 없이 오직 제 숨소리를 들으며 뛰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어쩌면 내가 달리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나에게 맞지 않는 목적과 방법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이후 체중을 조절하기 위한 운동이 아닌, 압도감이나 불안에 휩싸일 때 이를 해소하거나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이어트를 위한 달리기는 즉각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아 쉽게 동기가 사라지는 반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효과는 매번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뒤죽박죽 떠다니는 생각들도 달리다보면 어느새 나란히 정렬이 되어있고  좋은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같은 행동이라도 의도와 목적에 따라 실행 욕구가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참고로 달리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줄이고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 집중을 향상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ADHD로 인해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충동적일 때, 달리기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럼 보다 지속 가능한 달리기를 위해 제가 몸소 알아차린 것들을 소개할께요.


속도와 거리에 상관없이 딱 10분만!

1시간 달리기를 완료해야지! 5km를 뛰어야지!라는 마음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실패로 끝이 납니다. 저는 시작하는 것보다 끝맺는 것이 더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달리기의 속도나 거리는 상관없이, ‘딱 10분만 걷지 말고 뛰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10분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되거든요. 물론 막상 달리기 시작하고 10분이 지나면 ‘조금 더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주로 30분~40분을 달립니다. 어떤 날은 정말 10분만 뛰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여전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으니까요.


전속력 대신 70%의 심박수만!

전속력으로 달릴 때 심장이 타는 느낌은 여전히 불쾌한 경험입니다. 어차피 기록을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코로 호흡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뛰고 있습니다. 숨이 차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입으로 숨을 쉬게 되는데, 이럴 때 다시 코로 호흡이 편해지도록 속도를 줄입니다.


음악은 가사가 없는 잔잔한 비트로   

예전에는 억지로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강한 비트의 음악을 들었지만 이지 러닝(Easy Running)을 추구하는 제게는 빠른 비트는 맞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팟캐스트도 들어봤는데 생각보다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호흡도 꼬여서 이제는 듣지 않습니다. 처음 1km 정도는 음악 없이 제 호흡에만 집중하면서 뛰다가 그 다음부터는 천천히 뛰기 좋은 템포의 음악을 듣습니다.


달리기를 통해 그날의 컨디션 확인하기

달리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같은 속도와 거리를 뛰어도 제 몸이 경험하는 느낌이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월경주기에 따라 그 차이가 크게 느껴지는데, 요즘은 생리 전 황체기라 그런지 쉽게 지치고 다리를 들 때 더 무겁다는 느낌이 듭니다.


참고로, 프로게스테론 호르몬이 상승하는 황체기에는 에너지 수준이 떨어지면서 근육의 반응성과 지구력이 감소하게 됩니다. 반대로 생리가 끝난 난포기는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면서 체력과 에너지가 향상되고 근육 회복이 촉진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몸이 훨씬 가볍고, 러닝 후에도 덜 피곤한 걸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읽고 있는 책인 ‘달리기를 말할 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한 구절을 소개할까합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독립서점에서 산 책인데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에세이입니다. 자기 전 이 책을 읽으면 그 다음날 뛰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깁니다^^


나는 소설 쓰기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워왔다. 자연스럽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얼마만큼, 어디까지 나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이면 좋을 것인가? 얼만큼의 휴양이 정당하다고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휴식이 되는가? 어디까지가 타당한 일관성이고 어디서부터가 편협함이 되는가? 얼마만큼 외부의 풍경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얼마만큼 내부에 깊이 집중하면 좋은가? 얼마만큼 자신의 능력을 확신하고, 얼마만큼 자신을 의심하면 좋은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잠시 ‘적당함’에 대한 고찰을 했습니다. ADHD가 있으면 적당함을 유지하는 것이 참 힘들어요. 나를 너무 몰아붙이다가 방전되거나, 지나치게 해야할 일을 미루고, 지나치게 편협한 생각 때문에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 하죠. 때로는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고, 지나치게 자신의 역량을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디서부터가 지나친 것이고 부족한것인가에 대해 기준을 만들고 그 선을 넘기 전에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 요즘 달리면서 오늘 나에게 적당한 속도, 거리, 시간은 어느정도인가를 미리 생각해보고 막상 뛰면서 생각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확인한답니다. 그렇게 적당함을 몸으로 익히는 연습을 해봅니다.


오늘의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 닿기 바라며, 오늘도 ADHD의 완벽하지 않아도 온전한 하루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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