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족도 아니고 의욕이 없어서도 아니라면?
ADHD 코칭을 통해 고객을 만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인 거 뻔히 알고, 제게 중요하고, 하고 싶은 마음도 분명 있는데 막상 닥치면 안 해요”
"그 이유가 무엇인 것 같나요?"
"ADHD 때문인가... 동기가 잘 안 생기는 것 같고 의욕도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생각과 행동이 잘 이어지지 않는 이유, 정말 동기부족 때문일까요?
실제로 제 경험에 의하면 우리는 오히려 동기가 정말 충만하다 못해 흘러넘칠 때가 많습니다.
다만 잘못된 방향으로 향해서 문제죠.
흔히 중요하다고 여길수록 동기도 함께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정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기도 합니다.
내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오늘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밤새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손에서 도저히 놓을 수 없었던 경험처럼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생각, 미래의 이익을 고려한 우선순위 만으로는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게 할 수 없습니다. 논리만으로는 행동의 동기를 유발할 수 없다는 거죠.
행동을 움직이는 강력한 동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감정'이에요.
신경해부학적으로 보면,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라는 뇌 영역은 뇌의 안쪽 가운데 자리 잡고 있으며, 행동, 동기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반면, 논리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은 뇌의 겉을 둘러싸고 있어,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 먼저 작동한 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니까 원래 인간은 생각->행동보다 감정->행동이 더 쉽도록 자동적으로 설계되어 있죠.
이때, 전두엽이 잘 기능하는 사람의 경우 감정이 생성되었을 때 잠시 멈춰서 상황의 중요성을 판단하고, 행동을 지속하거나 억제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즉 보안 검색대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거죠.
ADHD가 있는 사람의 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감정이 제대로 점검되지 않은 채 보안 게이트를 뚫고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평가되지도 않고, 계산되지도 않고, 억제되지도 않은 감정이 바로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쉽죠,
그렇다면 원하지 않는 감정이 올라올 때는 어떨까요? 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아주 강력한 동기가 생성되어 '회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은 '동기저하'가 아니라 ‘감정에 대한 저항’에 더 가깝습니다.
“오늘은 건강하게 먹어야지”
“운동하러 가야지”
논리적으로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각을 하면서 일어나지만 정신 차려보면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고 배달앱을 서칭하고 있는 경험 있죠?
우린 흔히 ‘아, 내가 의지가 약해서 그렇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순간, 우리가 회피하고 있는 건 행동이 아니라 불편한 감정입니다. 특히 ADHD가 있다면 불편한 감정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내가 적극적으로 도망가고 싶은 감정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회피행동을 하고 있거나 자신을 탓하고 있다면 일단 잠시 행동을 멈추고, 어떤 감정이 저항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난 어떤 감정을 피하고 싶은 걸까?'
‘어떤 감정이 실현될까 두려운 것일까?'
‘어떤 감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걸까?'
제가 코칭 세션에서 '동기저하'에 대해 다룰 때 시작점이 바로 '회피하고 싶은 감정 찾기'입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지루함, 귀찮음, 피곤함, 부담감부터 더 깊게 들어가 보면 좌절감, 수치심 등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감정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여기서부터가 정말 중요하고 시간이 걸리는데요.
내가 회피하고자 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면서 진짜 원하는 행동을 아주 잠시라도 해보는 시도와 연습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코칭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혼자서 ‘회피하고 싶은 감정’을 마주하고, 그 감정을 안고도 행동을 시작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년 동안 수련을 한 저도 아직도 혼자서는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거나, 금세 다른 회피 행동으로 빠져버리기 쉬워요. 그래서 코칭도 받았고 여전히 주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답니다.
ADHD 코칭에서는 이런 과정을 안전하게 시도하고, 점진적으로 연습하며 경험을 쌓을 수 있어요. 감정을 마주하고, 감정을 원하는 행동으로 연결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안고 행동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 과정을 함께하며 작은 성공 경험을 통해 자기효능감을 회복하는 과정을 함께 설계하기도 합니다.
자, 이제 이 글을 읽고 나서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까요?
여러분이 자주 회피하고자 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